애초엔 우릴 매료시키는 물건들로부터 출발한다. 누군가가 가지고 있던 장난감, 우연히 고물상에서 접한 옛 물건, 헌책방에서 만난 한권의 멋진 고서적 등이 우리 내부의 수집가적 열망에 불을 붙인다. 그리곤 우린 매혹시켰던 그 물건들을 자신의 공간 속에 가져오려는 욕구로 밤잠을 설치기 시작한다.

수집가들은 물건들을 소유하고 가지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이 수집하고자 하는 물건이 저기, 저 곳에, 나아가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들은 박물관에 혹은 골동품 가게에 '만지지 마시오'라는 딱지와 함께 붙어있는 물건들을 멀찍이 구경하는 것만으론 성이 차지 않는다. 그들은 그 물건을 자신의 것으로, 자신의 공간 속으로 가져와 언제든지 꺼내 만져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수집가들은 발터 벤야민이 멋지게 표현했듯, 촉각적 본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1

자신이 수집하는 물건들을 언제라도 자신이 원할 때 자신에 앞에 현전하게 만드는 참된 방법은 그것들을 우리의 공간 속에 가져다 놓는 것이다.2  이 점에서 수집가들은 등산자나 산책가 혹은 박물관 방문자 들과는 다르다. 등산자나 산책자, 박물관 방문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물건들이 있는 공간에 자기 자신을 가져다 놓음으로써 그 물건들을 자신 앞에 현전하게 만든다. 등산가는 배낭을 메고 산에 오름으로써, 박물관 방문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이 전시되는 박물관을 방문함으로써 스스로를 만족시킨다. 그러나, 수집가들은 물건들을 자신의 공간 속으로 가져다 놓아야만, 언제든지 자신이 원할 때 그것들을 자신 앞에서 현전하게 만들 수 있도록 그 물건들을 아예 소유하고 가지고 있어야만 적성이 풀리는 인간 들이다.

일단 어떤 물건들을 수집하기 시작하면 이제 수집가는 또 다른 하나의 형이상학적 욕구에 의해 이끌린다. 총체성, 완전성에 대한 욕구가 그것이다. 물건들이, 그것이 어떤 물건이든 수집가에 의해 분류되고 범주화되면 그것은 하나의 완전한 체계적 총체성을 지향한다. 분류나 범주화는 곧 그를 통해 하나의 체계를 완성하려는 형이상학적인 총체성 욕구의 출발점이다.3

자신이 수집한 물건의 체계에 무엇인가가 빠져있다는 결핍감은 수집가로 하여금 그 빠져있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 채워넣으려는 욕구에 안달하게 한다. 연도별로 수집한 책들 중 빠져 있는 1949년 판과 유럽 모든 국가의 주화모음에서 비어있는 덴마크 주화의 자리는, 그를 바라보는 수집가의 가슴에 휑하니 비어있는 구멍을 만든다. 그리곤 어떻게 해서든 그를 채우고 나서야만 비로소 치유되는 완전성의 결핍이라는 병을 낳는다. 낯과 밤, 하늘과 바다, 나무와 풀, 해와 별, 물고기와 새, 온갖 들짐승들을 지은 신이 천지 창조의 여섯째 날 '자신의 모습을 닮은 인간'을 만듦으로써 창조를 완성했듯이, 수집가는 자신의 수집물에 빠져있는 공백을 채워넣음으로써만 일곱째 날의 안식을 맞이할 수 있다.

수집가에게 있어 물건들은 다만 그 물건 자체의 가치로서 의미를 갖지 않는다. 수집가에게 그 수집품들은 그 물건들의 과거, 물건들의 역사를 통해 말을 건다. 수집가에게 자신의 수집품들은 그것이 얼마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얼마나 희귀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디에서 생산되었고, 어떤 진귀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등의 그 물건 자체의 기원과 역사뿐 아니라, 그 물건과 수집가와의 관계의 역사, 곧 그 물건을 자신이 어디에서 발견하였으며, 그것을 처음 보았을때의 감격은 어느 정도였는지, 그리고 어떤 힘들고 아슬아슬한 과정을 거쳐 자신의 손에 넣게 되었는지 등의 역사를 통해 더 큰 의미를 갖는다. 그는 보관해둔 자신의 수집품 하나 하나를 다시 꺼내 볼 때마다 그 물건과 자신 사이에 일어났던 과거를 회상하며, 마치 뮤즈 신에 의해 영감에 빠져들듯 그 물건과 자신 사이의 과거가 주는 아우라4에 빠져든다. 그 물건을 구하는 과정에 얽힌 우여곡절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물건이 수집가에게 갖는 아우라는 더 크고 오래 지속될 것이다. 그 물건들을 통해 영감을 받은 수집가가 자신의 물건을 꺼내 바라볼때 '그는 마치 그 물건들을 통해 물건들의 저편을 바라 보고 있는 마법사와도 같다.'5

저 책의 이전 소유자, 애초의 구입가격, 경매장에서의 긴장감, 그리고 처음 그 책을 손에 잡았을 때의 환희 등이 저 책이라는 물건과 더불어 수집가의 진열장에 꽂혀져있다. 책장에서 그 책을 뽑아든 수집가에게 그 책은 자신의 과거들을, 자신의 역사성을 수집가에게 펼쳐보임으로써 수집가를 마법사와 같은 도취에 빠지게 한다. 수집가에게 자신의 수집품들이 갖는 아우라는 그 물건들이 수집가에게 펼쳐보이는 물건들의 역사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관상학자가 사람들의 얼굴 모습만을 보고 그의 과거와 그의 운명을 읽어내듯이 우리의 수집가들은 자신의 수집물을 보면서 그 물건의 과거와 그것의 숙명을 읽어낸다. 그러한 점에서 그들은 벤야민이 말하듯 '물건의 관상학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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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alter Benjamin, Das Passagen-Werk,Shurkamp 1982, Erster Band, S.274

2Walter benjamin, O.g. S.273

3개별적인 것들이 주어져 있을 때 그로부터 존재하지 않는 보편자를 추출해내는 능력인 칸트의 '반성적 판단력'은 현상계에서는 사실상 그에 대해 알 수 없는 가상적 완전성을 이성 이념으로 상정하게 한다. 이미 보편이 알려져 있을 때 개별적인 것들을 그 보편아래 포섭시키는 '규정적 판단력'이 그러한 점에서 존재하는 사물들로 구성되는 하나의 체계를 지향하지만, 우리의 경험을 통해 사실상 인식할수 없는 그 체계의 완전성의 이념은 반성적 판단력을 통해서 요청되는 것이다.

4발터 벤야민의이 말하는 '아우라'가 이처럼 대상이 갖는 역사성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말하는 '복제가 아닌 진품이 갖는 아우라'를 통해서도 설명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진품 모나리자가 우리에게 주는 아우라는, 저 그림 속에 다빈치의 손길과 숨길이 직접 닿았었다는 역사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복제품은 그 그림의 '내용'을 전달해줄 수는 있지만, 그 진품이 갖는 물질적 역사성을 전해주지는 못하며, 그런 점에서 진품이 갖는 아우라를 갖고있지 못하다.

5Walter Benjamin,O.g.S.274/275

6walter benjamin, S.273

7Walter Benjamin,S.274

8Walter Benjamin,S.274/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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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게다가 이렇게 친절한 리뷰까지 달아주신 것에 대해 번역자로써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비록 번역자의 입장이지만, 누군가 그를 읽어주고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마음을 뿌듯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말씀하신 Physiognomie의 번역어에 대해선, 그러나 저는 '관상학'보다는 여전히 '인상학'이란 단어를 고집하고 싶습니다. 그건 한국어 '관상학'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좁은 내포 때문에 그렇습니다. '관상'이란 단어는 '수상' 혹은 '족상' 등과 관련해서 좁은 의미로 주로 '얼굴' 과 관련되어 사용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동아 새국어 사전>에서 "관상"은 "사람의 얼굴 등을 보고 그 사람의 재수나 운명 등을 판단하는 일"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Physiognomie는 말씀하셨던 것처럼 동양에서의 이러한 '관상학'과도 관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미 그 출발부터 그 대상을 '얼굴'로 제한하고 있지지 않았습니다. 철학 역사사전 (historisches Wörterbuch der Philosophie)의 Physiognomie 항목에서는 이 단어가 이미 고대부터 "생물 - 특히 사람에게 있어 그 외적인 지표나 특징들 (얼굴, 표정, 머리형태, 골격, 태도나 제스쳐 등)로부터 영혼의 성격 (능력과 소질, 감정, 기질과 성격, 병과 운명)을 유추해내는 이론"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유럽의 근대 Physiognomie를 확립한 인물인 Johann Caspar Lavater의 주저 Physiognomiesche Fragmente 에서도 Physiognomie는 "한 인간의 외면을 통해 그의 내면을 인식하는 기술" (Stuttgart  1999, 21쪽)로 정의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Physiognomie의 대상은 따라서 단지 인간의 "얼굴"에로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직접적인 외양들. 모든 생김새, 윤곽, 모든 수동적이고 능동적인 운동들, 인간 육체의 모든 상태와 자세들 ;  alle unmittelbare Äußerungen des Menschen. Alle Züge, Umrisse, alle passive und active Bewegungen, alle Lagen und Stellungen des menschlichen Körpers" ( 위의 책 22 쪽) 를 포괄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지요.

'외적으로 드러나 보이는 특징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내적인 특성들을 유추해내는' 방법으로써 이러한 Physiognomie에 대한 이해는 발터 벤야민에게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파사지 베르크에서 벤야민이 수집가를 '사물 세계의 Physiognomiker'라고 말할때(Passagen Werk H 2, 7), 수집가가 자신이 수집한 대상물들을 보면서 겉으로는 드러나보이지 않는 그 물건의 '운명'을 마치 "그 물건을 통해 그것의 미래 Ferne를 꿰뚫어보는 마법사처럼" 들여다본다고 말할 때에도 역시 Physiognomie는 위에서 말한 넓은 의미로 이해되고 있다고 봅니다.

Physiognomie가 이처럼 눈에 드러나 보이는 외적인 모습을 통해 보여지 않는 내적인 무엇인가를 간파해내는 기술 (혹은 방법)이라고 한다면, 제 생각에 이는 "관상학"이라는 좁은 의미보다는 사람과 사물, 나아가 도시와 풍경 들이 주는 전체적인 외적 인상을 1차적인 대상으로 갖는다는 점에서 "인상학"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관상학"이라는 단어를 단지 '얼굴'에만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대상의 인상 전체와 관련하는 의미로 이해해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관상학'이라는 단어가 갖는 기존의 의미 연상이 아직 너무 강하다는 느낌을 버릴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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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jami

 

 

벤야민, 하이데거, 카프카.

 

이름만으로도 우리에게 유명한 이 세 명의 독일인들이 한 때 동일한 시간, 동일한 공간 속에서 살았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어떤 신비로운 감정을 느끼게한다. 마치 플라톤과 비트겐스타인이 우연히 동네 비디오 방에서 만나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면 갖게 될 그런 감정이다. 그런데, 알고보면 한 명 한 명의 이름과 그들의 저작만으로도 충분히 우릴 주눅들게 하는 저 세 명의 철학자와 문학자들은 같은 시대를 공유했던 동시대인들이었다. 이들은 서로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했지만, 이 세 명의 삶의 괘적은 마치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에서처럼 이곳 저곳에서 서로 엇갈리며 교차하고 있었다.

1892년 베를린에서 태어나 1940년 스페인 국경에서 자살한 발터 벤야민과 1889년 태어나 1976년 프라이부르크에서 사망한 마틴 하이데거 사이에는 삼년의 나이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1912년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철학 공부를 시작한 벤야민은 그 해 여름학기 철학과에서 개설된 리케르트 Rickert 교수의 „인식론과 형이상학 입문“ 강의를 수강한다. 벤야민 보다 조금 먼저 같은 대학 철학과에서 공부하던 마틴 하이데거 역시 같은 학기 리케르트 교수의 이 강좌를 수강하였다. 말하자면 발터 벤야민과 마틴 하이데거는 1912년 여름학기 같은 강의실에 앉아 수업을 들었었다는 말이다. 이제 막 철학공부를 시작한 벤야민과 아직 박사과정 중이던 하이데거가 서로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구나 그 강좌의 수강생은 100명이 넘었다. (Autenthalte und Passagen, Leben und Werk Walter Benjamins, Willem van Reijen und Herman van Doorn, 2001, 25 쪽)

 


hrd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각자의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게 될 두 명의 철학자가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한 채 1912년 여름 같은 강의실에 앉아 함께 수업을 들었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어쩌면 하이데거는 그 수업 중 당시 형이상학 이론의 대가였던 리케르트 교수에게 날카로운 철학적 질문을 던졌을 것이고, 그 질문은 이제 막 철학 공부를 시작했던 그 강의실의 수강생 벤야민의 철학적 사유에 자극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당시 이미 프라이브르크 대학에서 '청년운동'에 연계되어 있었던 벤야민이 저명한 철학교수에게 대학개혁에 관한 비판적 문제제기를 했을 것이고, 이것이 학구적 철학도 하이데거의 눈에 거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둘은 어쩌면 서로를 알지 못한 채 바로 옆자리에 앉아 눈인사를 나누었을지도 모른다.

 


 

1883년 태어난 프란츠 카프카는 1924년 비인의 요양소에서 사망하기 불과 몇달 전까지, 그러니까 1923년 9월부터 1924년 3월까지 그의 여자 친구인 도k라 디아만트 Dora Diamant 와 함께 베를린에 살았다. 벤야민은 1915년 카프카의 작품을 처음 접했고 이후 그의 작품을 통해 받은 깊은 인상을 1934년 그가 죽은지 10주기를 기해 카프카에 대한 글을 써 남기기도 했다. 프란츠 카프카가 베를린에 살았던 이 기간 동안, 프랑크프르트에서 다시 베를린으로 올라온 발터 벤야민은 1923년 11월부터 1924년 4월 카프리로 여행을 떠날때 까지 계속 베를린에 머무른다. (Autenthalte und Passagen, Leben und Werk Walter Benjamins, Willem van Reijen und Herman van Doorn, 2001, 86/87쪽)

 당시 카프카가 여자 친구와 함께 살던 미쿠엘 가 8번지와 벤야민이 머물렀었던 그의 아버지 집 델브뤽 가 23번지는 걸어서 8분 정도 거리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Bucklicht Männlein und Engel der Geschichte : Walter Benjamin. Theoretiker der Moderne, Ausstellung des Werkbund-Archivs im Martin-Gropius-Bau in Berlin, 28.Dezember 1990 bis 28.April 1991, 1990)

어쩌면 그 사이 벤야민은 집에 오가는 도중 폐렴에 걸린 가슴을 움켜잡고 쿨럭거리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던 한 명의 수척하고 창백한 병자를 목격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카프카는 어느날 산책길에서 삼층짜리 저택으로 들어가던, 말끔한 복장의 한 부르조아 지식인을,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늘 우수에 어려있는 그의 눈동자를 마주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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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5-04-02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글입니다!!

김남시 2005-04-02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글이 멋지다기 보다는, 이 글을 낳게했던 저 세명의 삶의 좌표들이 그렇지요. 감사합니다.
 

니체가 과거를 머리 속에 쑤셔넣고 사는 자신의 시대를 향해 '잊어버릴 수 있는 힘'을 갖도록 권고했다면, 그리하여 소화불량을 일으키고 있는 과거에 대한 병적인 기억에, 현재에서 새로운 것을 보는 대신에 과거의 되풀이만을 보는 저 늙어버린 정신에게 '망각'과 잊어버림의 미덕을, 그를통해 낡은 것 대신에 새로운 것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외쳤다면, 벤야민은 역사와 진보의 몰아쳐오는 바람 속에서 잊혀져버리고 있는 과거에 대해 '기억'하기를 요청한다.

과거는 지금 우리의 현재와 마찬가지로 고통으로 가득차 있던, 아직 구원되지 못한 고통의 시간이었다. 고통의 시간을 살고있는 우리가 언젠가 도래할 구원을 갈구하며 살아가고 있듯이, 지나가버린 과거의 시간 또한 구원의 도래를 갈구하며 지나갔던 현재 시간이었다. 지금 현재에, 저 과거에 살았던 이들이 갈구했던 그 미래의 시간을, 여전히 도래하지 않고있는 구원과 해방을 갈구하며 살고있는 우리에겐 저 과거의 시간을 기억하고 상기해야할 책임이 떠맡겨져있다. 해방된, 구원된 시간에 살아갈 후손을 꿈꾸었던 저 과거의 사람들에게 우리들, 바로 그들의 후손인 우리들은 그들의 바램과 갈구를 실현했어야 할 „이 땅에 기다려졌던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소위 진보를 향해 뒤돌아보지 않고 나아가는 역사는 우리 자신이 바로 이 과거의 외침과 고통스러운 갈구로부터 나온 존재라는 것을 보지않게 만든다. 기억되지 않고 상기되지 않는 과거는 우리 눈 앞에서 폐허로 무너져내리고 우리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진보라고 하는 미래를 향해 떠밀려 간다. 과거의 한순간 한순간이 도래하지 않은 메시아를 갈구하던, 구원을 바라던 고통의 시간이었던 한, 그 모든 한순간 한순간은 우리에 의해 기억되고 상기되어야 할 요구를 가지고 있다. 바로 그것이 „과거의 사람들과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저 비밀스런 묵계“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로 하여금 기억되기를 갈구하고 있던 저 과거는 도대체 우리에 의해 어떻게 기억되어야 하는가? 벤야민에 의하면 과거가 한때 우리에게 요청했었던 '기억되고자 하는 요구'는 그 과거가 '본래 어떠했던가'를 그 과거의 한순간 한순간들의 모습을 그대로 기록하고 기억하고자 함으로써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역사주의의 방식을 채택해 과거를 역사의 진보라고 하는 목적론 하에서 현재의 상태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채택해서도 안된다. 그것은 지배자들이 자신의 현재를 과거의 목표로써 정당화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 속에서 과거는 현재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선 필요 불가결했던 이전 단계로 수단화된다. 이러한 역사주의는 역사를 '이야기'로 만듦으로써 역사에 인과적 사슬을 부여하고, 후대에 일어난 사건들을 이전의 사건들과 목적론적으로 연결시킨다. 이러한 역사주의는 결국 그 역사 서술에 있어서 현재의 승리자의 입장을 취한다. 곧, 현재의 시간, 승리자의 시간의 현재를 과거로부터 일관적이고 연속적인 결과로써 이해하고 서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과거는 어떻게 기억되어야 하는가?

그에대한 벤야민의 대답을 우리는 그의 8번째 역사철학 테제에서 엿들을 수 있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지금의 시간이 과거 역사의 연속성 속에 있는 그것과의 일관성 속에 있는 시간이 아니라 그 역사적 연속성으로부터 벗어난 '예외적 상태'라는 것을 이야기 해주는 역사 개념에 도달해야만 한다. 그것은 역사를 진보의 연속성으로 보는 역사주의로부터 탈피하는 것을 의미한다. 저 진보라는 역사적 규범은 파시즘과 좌파가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를 하나의 연속적인 것으로, 곧 과거의 것이 현재의 것의 밑거름이 되고 현재는 그 과거보다 더 '진보적'이라고 하는 역사에 대한 표상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과거의 진정한 상에, 곧 과거에 대한 진정한 기억에 도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역사에 대한 이러한 표상 속에서 과거는 다만 현재를 위한 발판으로 수단시되기 때문이다. 진정한 과거에 대한 상은 어느 순간 섬광처럼 우리에게 스쳐 지나가는 순간적인 그림으로 기억된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던 우리에게 어느 순간, 저 과거의 한 장면의 의미가 비로소 분명해지는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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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역사를 직접적 생의 발양을 가로막고 현존하는 것을 정당화시키는 이데올로기로 보았다. 소위 교양의 이름으로 강요되던 넘쳐나는 과거역사에 대한 지식과, 현존하는 것을 역사적 필연성이라는 목적론을 통해 정당화시키던 헤겔식의 목적론적 역사관은 니체에겐 현존하는 권력에 대한 냉소적 긍정으로 이어지는 숙명론을 낳는 시대의 질병이었다. 19 세기를 지배하던 역사의 진보와 목적에 대한 믿음은 현재의 사건과 삶들을 저 목적실현을 위한 수단이자 과정으로 격하시켜 버리고, 현재에 대한 비판을 무력화시킨다. 과거에 대한 강요된 기억으로서의 역사적 지식은 생의 직접성을 가로막고, 새로운 것과 창조적인 것을 .어차피 과거에 이미 있었던 것’이라는 냉소주의를 통해 부정하게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필요한 것은 이제 직접적 생에로의 진전을 가로막는 역사와 기억이 아니라, 삶에의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며 우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비 역사와 망각이다. 망각하지 못하는, 그래서 철두철미 역사적이기만 한 인간은 마치 .잠을 자지 않도록 강요된 사람“이나, .되새김질을 통해서만 계속해서 되새김질을 통해서만 살아야 하는 짐승“ 과 같다. 역사는 삶에 기여해야지 삶이 역사의 제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지나친 역사는 오히려 삶을 해친다. 기억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짐승들이 보여주듯 아무런 기억없이 행복하게 사는 것은 가능하지만 망각이 없이 산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러한 점에서 니체는 망각을 우리의 에너지를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삶에로 집중하게 하는 적극적 능력이자 힘이라고 말한다. 

 

영화 <올드보이>의 오대수는 이러한 기억의 소화불량으로 고통받지 않는 건강한 망각의 인간이었다. 그에겐 술을 먹고 경찰서에 가고,행패와 패악을 부려도 그를 잊고, 다시 삶에 매진하게 하는 망각의 힘이 있었다. 그는 기억을 되새김질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다른 많은 사람들에겐 결핍되어 있는 저 망각의 능력을 통해 늘 현재에, 삶에 충실할 수 있는 그런 인간이었다.

 

 이 망각의 힘은 그러나, 이유를 알지 못하던 고통스 15 년의 감금생활을 통해 점점 쇠퇴해간다. 그는 점점 이전의 망각의 힘을 잃고 기억의 노예로 변한다. 그는 자신의 과거의 삶들을 하나 하나 떠올리면서 누가 자신을 이렇게 증오했었는지 기억하기를 강요받는다. 그래도 떠오르지 않는 과거로 인해 그는 점점 자신의 과거에 대한, 자신의 기억에 대한 막연한 복수를 꿈꾸는 과거의 노예가 된다. 감금방에서 풀려난 후에도 오대수는 여전히 자신의 과거를, 자신의 기억을 쫓도록 강요된다. 15년간 먹었던 만두에 대한 기억을 통해, 그리고 치밀한 계획에 따라 그에게 주어지는 작은 실마리들을 통해 그는 자신의 과거를 하나,하나 쫓아다녀야 한다. 망각의 힘을 잃고 과거에 묶인 그는 이제 더 이상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괴물이 되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이진우의 복수의 핵심이 있었다.

 

이진우에겐 오대수가 가지고 있던 망각의 힘이 없다. 그는 과거를 망각하지 못하고, 의 삶 전체는 과거의 기억으로, 그 과거에 대한 복수를 향해있다. 그의 현재는 다만, 저 과거를 위한, 기억의 복수를 위해서만 존재한다. 그리고 그 복수는 오대수가 가지고 있던, 그래서 그를 더욱 분노케하는 망각의 힘을 파괴시키고 그로 하여금 과거의 기억을 쫓, 나아가 그 기억으로 인해 스스로를 파괴시키도록 하는데 있었다. 오대수를 자신과 같은 기억의 노예가 되게 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복수는 성공한다. 아니, 지나치게 승리해 버린다. 이미 고통스런 감금을 통해 기억과 복수의 괴물이 된 오대수에겐 또 하나의 기억, 그의 마지막 남은 복수에의 의지 그리고 이는 그나마 살아 남아있는 삶에의 의지이기도 한데 - 마저 파괴시키는 결정적인 기억이 부과된다. 자신의 딸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기억. 이제 오대수는 최면술로 그 기억을 지워버리고서야 살아나갈 수 있는 폐인이 되고, 철저하게 자신의 복수를 완수한 이진우는, 자신의 현재를 지탱시켜 주던 과거와 기억을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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