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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망각 - 문학과 문화학의 교차점
최문규 외 지음 / 책세상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첫문장에서 지적하고 있듯 1990년대 중반부터 소위 '문화학적 전환'이라는 새로운 학문적 경향들은 기존의 인문학들의 내용과 방법론, 나아가 그 체계와 편제에 이르기까지 심각하게 다시 반성하게 했다. 그 과정 속에서 태어난 '문화학'이란 학문은 그로인해 아직까지도 한편으로는 기존의 다른 인문학들과 미묘한 긴장관계를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기존 인문학들의 구태의연한 관념론적 방법론들을 비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7,80년대 이후 광범위하게 모든 인문학들에 받아들여졌던 구조주의적, 지식 고고학적, 미시적, 비판이론적 방법론들을 자신의 방법론으로 수용하고 있는 문화학이 과연 어떤 점에서 독자적인 학문적 지위를 요구할 수 있는지 많은 사람들에 의해 문제시되어왔던 것이다. 다른한편, 기존의 인문학들의 입장에서는 소위 '인문학의 위기'라는 담론 속에서 등장한 이러한 '문화학'이 사실상, 사회의 상품과 자본논리에 따라 대학내의 학문들이 재편성되는 소위 '인문학 죽이기'의 대표주자로 받아들여지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새로이 등장한 문화학의 문제의식과 그것과 기존의 문예학, 작게는 문학과의 관계, 나아갈 방향등을 고민하고 있는 이 책은, 그만큼 변화하는 세계와 학문의 문제의식을 한국의 상황 속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선진학자들의 역량을 짐작하게 해 주는 척도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책, 구체적으로 여기에 실린 '최문규'의 글을 읽고 든 느낌은, 그가 문화학과 문화학적 문제의식을 통해 생겨난 문학, 문예학 내부의 위기의식을, 문화학의 등장을 통해 분명해진 변화된 학문적 조건들을 적극적으로 문예학적 내부에 수용함으로써 돌파하려고 한다기 보다는, 저 문화학을, 한국 사회의 특수한 조건일 뿐인, '인문학 죽이기'의 전범으로 보고, 그를 아직 '정리되어 있지 않고, 방향과 방법도 없으며, 자기 모순적인 학문'으로 폄하함으로써 회피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우선, 그가 자신의 글에서 인용하고 있는 뵈메의 글 (본 책 46 쪽)이 그 번역상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 "Man wird zwischen produktiven Dilettantismus und Expertenwissen hin und her geworfen, man findet keinen festen Boden, man vermisst Perspektive und Orientierung" 을 그는 "문화학은 생산적인 아마추어리듬과 전문적 지식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면서 어떤 확고한 토대도 찾지 못하고 관점이나 방향성도 없다"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이는 원문의 주어인 Man을 '문화학'이라고 '오역'함으로써 현재 문화학이 처한 문제가 마치 '문화학' 자체의 구조적 문제인 것 처럼 이해되게 한다. - 그를 원문의 맥락과는 동떨어지게 인용함으로써 엉뚱하게 이해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경향은 그 이후의 문장 "실제로 문화학, 문화연구, 문화비평이라는 이름으로 생산되고 있는 다양한 글들을 살펴보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입증보다는 자의적인 사유나 주관적 상상력에 의존하고 있으며, 글쓰기 방식도 다분히 주관적인 어조와 문체를 띠고 있음을 알수 있다" (47 쪽) 에서는, 그가 '오해'한 문화학과 현재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새로운 글쓰기의 실험들을 동일시 한채 다잡아 비판하고 있다. 이를통해 그의 글은 현재 한국에서 인기를 얻고있는, "'푸코, 부르디외' 등의 개념을 "구체화한다고 하면서, 대부분...표피적이고 감성적인 자신의 고유한 수사에 도취된 분석에 그치는"는 글들이 마치 유럽에선 이미 학과로서 존재하고 있는 '문화학'의 내적 구조로부터 나온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서술방식은 안그래도, 문화학을, 기존의 인문학들에 "무슨 무슨 문화학"이란 접미사만 붙임으로써, 인문학을 대학의 상품화의 과정에서 교양수업만을 제공하는 '서비스 학과'로 전락시키고 있는 한국 대학들의 상황 속에서는 더더욱 '문화학'에 대한 오해와 무지에 근거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많다.
그러나 이 책이 지닌 이러한 문제점들과 오해의 소지에 유의한다면, 이 책은 아직 한국에 아직 잘 소개되지 않았던 매체로서의 '문자'에 대한 논의를 호메로스를 매개로 설명한 고규진의 글이나, "기억과 망각"이라는 주요한 테마를 민요나 드라마, 나아가 한국사의 문제들 - 정신대 할머니, 일제시대 등 - 과 연결시켜 고민하고자 한 다른 저자들의 참신한 시도들을 통해 넓은 의미에서의 '문화학적 테마'의 새로운 가능성들에 대해 제시해 주고 있다.
최문규의 글 중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오역에 대해.
37쪽 주에서 발터 벤야민의 파사지 베르크를 인용하고 있는 대목에서, "상부계급이 하부계급에 다시 영향을 끼침으로써 다음과 같은 점이 입증된다."는 문장은 "Indem er Ueberbau auf den Unterbau zurueckwirkt, ergibt sich"를 번(오)역한 것이다. 곧, "상부계급"과 "하부계급"이 아니라 소위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