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쓰기 일기
서윤후 지음 / 샘터사 / 2024년 3월
평점 :
쓰기 일기
작가_ 서윤후
출판 _ 샘터사
쓰는 일에
골몰한 순간이 두드러진
2017년부터
2023년까지의 일기 아카이브
서윤후 시인의 쓰기 일기
행간의 의미가 깊어
하나의 문장에 오래 서성이게 되는 책
내밀하고 농밀한
사색의 시간을 안겨주는 책
온기가 단념하지 않도록
뜨겁게 품어 주고 싶은 책
문득 한 사람의 생애를 시간 순으로 나열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합니다.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쓴 시인의 일기는 이런 시간의 흐름을 거스릅니다. 2019년이었다가 2023년이 되고, 2022년인가 하면 2017년으로 되돌아가 있기도 합니다.
시인은 어쩌면 시간보다 계절의 흐름에 순응하며 혹은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유추해 봅니다. <쓰는 일기>는 1월부터 12월의 흐름에 따라 글을 모아둔 일기 아카이브입니다. '쓰기'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요, 연도는 자유롭게 오갑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분명 순차적인 흐름에 따르는 것 같지만 어쩌면 처음부터 어긋나버린 흥미로운 편집 방식에서 저는 계절을 읽습니다. 문장의 주체가 계절은 아니지만, 미세한 계절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계절에 따라 변화하고 무르익어가는 혹은 상실하고 와해되어가는 시인의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같은 우리나라 말인데
시인이 품은 언어는 다른 걸까요?
특별할 것 없는 단어들이
하나의 문장 속에 어우러져
절묘하게 빛이 납니다
최근에 알베르 카뮈와
에밀 시오랑의 글들을 읽고 있다.
호흡이 짧지만 던지는 맥락이 깊어
고요한 웅덩이를 깨트릴 책들이다.
《쓰기 일기》 p.22
질투, 나잖아요. 이런 문장들!
어쩌면 시인의 말처럼
'홀로 자신의 가장 깊숙한 곳에
다녀오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서(36)'
문장 하나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나 봅니다.
사색을 더한 문장들은
단단하게 압축되어
숙성의 시간을 지나
내밀함과 농밀함을 발합니다.
일기, 일기인데 말이지요.
일기가 이리도 근사할 일인가요!
온기가 무엇인데?
라고 묻는다면
글쎄,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마지막 능력이라고 생각해.
라고 대답할 것이다.
닿을 듯 끝끝내 닿지 못한
문장들이 있습니다.
마음을 두드려
쉬이 벗어날 수 없는 문장도 있고요.
그 어디쯤에서
자꾸 서성이게 되는 건
행간의 맥락을
그 이면의 깊이를
오롯이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일기 쓰기란
현상의 나열이 아닙니다.
사유를 확장해나가며
홀로 깊어지는 시간이란 걸
《쓰기 읽기》를 통해 가늠해 봅니다.
서윤후 시인의 일기를 보며
바삐 살아오는 동안 놓쳐버렸던
머물지 못하고 급히 떠나보냈던
지난 시간 속의 저를 반추해 봅니다.
부디 이 책을
고요한 시간에 읽어 주세요.
오래 머무를 수 있도록!
뜨겁게 품어주고 싶은 책을 만났습니다.
소란스럽지 않은 곳에서
소란스럽지 않은 마음일 때
다시 꺼내 읽겠습니다.
나의 은밀한 것을 들키고 싶다는 마음보다도, 쓰기에 몰두했던 나날들에 대한 기록이 누군가의 쓰고 읽는 일에 닿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쓰는 시간에 오롯이 혼자가 되는 일은 자신을 다 잃어버릴 각오를 하고 자신에게로 다가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비밀을 들켜서라도 닿는 순간이 되고 싶었다.
《쓰기 일기》 들어가며 중에서
작아서 거의 보이지 않는, 읽지 않아도 있으리라 짐작하는 마음으로 작게 적혀 있는 것들을 지나치는 걸 참지 못했다. 내 시도 그런 일이면 좋겠다고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막상 없으면 찾게 되는 것들이면서 동시에, 커다란 구성들 사이에서 작은 힘으로 주춧돌이 되는 작은 글씨의 시들.
《쓰기 일기》 p.18
그래서 사람들이 잘 지내는지 궁금하다. 안부와 소식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으로서의 궁금함.
《쓰기 읽기》 p.39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도 피곤하기에 모든 것을 용서한 사람처럼 친절하게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잠시 고통과 바늘로 꿰맨 공을 차고 놀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을 너무 쉽게 혐오했고, 나는 또 너무 쉽게 사랑을 받았으므로, 넘어지게 된다. 불을 꺼둔 채로 작은 난로 하나만 켜두니 꼭 불을 지핀 듯한 느낌이 든다. 어둠 속에 가만히 앉아 보고 듣고 만나며 느낀 것들을 땔감으로 쓴다. 나의 땔감은 자주 젖어 있어서, 그것들을 말리는 시간만 한 계절이 필요하다. 그토록 어렵게 불을 질러놓고, 멀리서는 따뜻해 보이지만 가까이선 기침에 중독되어 들썩이는 나는 이 풍경 속에서 무엇을 기록하고 있을까?
《쓰기 일기》 180~181
샘터 출판사 서포터즈 물방울 서평단. 협찬 도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