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선인장 - 사랑에 빠졌을 때 1초는 10년보다 길다
원태연.아메바피쉬.이철원 지음 / 시루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서로를 첫 눈에 알아본 순간, 이미 하나가 되었다
-원태연, 『고양이와 선인장』을 읽고

 햇살 좋은 창가에 화분을 내어둔다. 가끔 물을 주고, 가끔 말을 걸고, 가끔 눈길을 준다. 가끔이지만 지속적인 관심. 그래서일까. 화분 속의 그것은 생기가 넘쳐 보인다. 매끈한 줄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싱싱한 탄력. 나와 같이 숨을 쉬고 하루를 살고 있다는 생각에 묘한 동질감마저 느껴진다. 생명을 지닌 것에서 뿜어져 나오는 삶의 의지. 강렬하고도 애틋하다. 누군가 자신을 바라봐주는 대상이 있을 때 그 에너지는 더 강해지는 법. 첫 눈에 서로를 알아본 고양이와 선인장처럼 말이다.

 오디오그래픽노블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인『고양이와 선인장』은 원태연 시인이 10년 만에 내놓은 에세이집이다. 오디오그래픽노블? 낯설지만 새롭고 신선한 느낌! 곧바로 음악을 다운로드 받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창가에 놓아둔 화분에서 아이비가 바람에 한들거린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고양이 외로워와 선인장 땡큐의 가슴 두근거리는 사랑이 더 싱그럽게 다가온다.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거울을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되고 괜스레 미소도 짓게 된다. 전보다 더 애정 어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것은 오로지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있을 때 가능한 일. 사랑은 사람을 새롭게 살게 한다. 어느 날 서로를 알아본 고양이와 선인장이 그랬다.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고양이와 선인장은 서로의 존재를 알아본 것만으로 이미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서로를 더 알고 싶은 호기심, 서로를 걱정하는 안부, 서로를 소유하고 싶은 질투,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관심……. 모든 사랑의 과정에 동반되는 이 복잡다단한 감정들이 고양이와 선인장의 마음에 투영되어 있는 책,『고양이와 선인장』은 빛처럼 맑고 투명하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삶은 고단하다. 괜스레 주눅이 들고 눈치를 보게 된다. 나도 불편하고 상대방도 불편해한다. 그쯤 되면 혼자일 때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삶, 나만의 공간 안에서 갇힌 듯 자유롭게 사는 법을 터득해간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일까. 소위 말해 사회부적응자. 고양이 외로워가 그랬고, 원태연 시인이 그랬다. 열일 곱, 처음 자신의 시가 남들에게 인정을 받았을 때부터 마흔 하나가 된 지금까지 원태연 시인은 시인도, 작사가도 영화감독도 아닌 인생을 살았다고 고백한다. 어느 곳에도 온전히 소속되지 못한 박탈감. 시인으로는 이례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지만 주목과 비난을 동시에 받아야 했던 인생은 녹록치 않았을 것이다. 그간의 마음고생이 고양이 외로워에 투영된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고양이와 선인장의 이야기는 비단 고양이와 선인장의 이야기만은 아니기에 공감이 간다.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을 떠나보내고 다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것. 살아있는 한 늘 반복되는 고질병과도 같은 것이 바로 ‘사랑’이다. 우리는 사랑 때문에 아파한다. 그러나 사랑으로 인해 충만해짐을 알기에 그 아픈 사랑을 자꾸만 되풀이하곤 한다. 반복되는 사랑, 그럼에도 어느 한 순간도 똑같지 않은 신비한 마법과도 같은 사랑. 때론 미.친.거.아.냐.라는 말을 들어도 좋을 만큼 사랑은 목숨을 걸게 만들기도 한다. 땡큐를 향해 온 몸이 부서질 듯 달려가는 외로워처럼.

 고양이와 선인장의 사랑이야기? 유치하지 않냐구요? 유치하지 않답니다. 가볍지 않냐구요? 글쎄요, 저에게는 가벼운 이야기만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원태연’이라는 이름이 만들어낸 선입견이 이 책을 유치하거나 혹은 가벼운 것이 아닐까 하는 근거 없는 추측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시인을 따라다니는 수많은 수식어. 결국은 대중이 만들어낸 이미지가 그를 평가절하 해온 게 일정부분 사실이니까요. 실은 제가 그랬답니다. ‘원태연 시인의 책이네. 고양이와 선인장이라고? 유치할 것 같은데. 왠지 가벼워 보여.’ 이건 순전히 제 생각이었습니다. 원태연 시인으로 인해 한 시절을 무사히 건너온 제가 세류에 휩쓸려 그를 평가절하 한 적이 있으니까요. 그런데요, 땡큐와 외로워의 이야기는요, 선인장과 고양이의 사랑이야기만은 아니기에 마음이 아프고 절절하고 애틋하답니다. 우리도 바로 그런 사랑을 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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