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 않는 뇌 - 최신 신경과학이 밝힌 평생 또렷한 정신으로 사는 방법
데일 브레드슨 지음, 제효영 옮김 / 심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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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나이에 들어서면서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걸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분명히 집 밖을 나서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어느새 까맣게 잊혀진 경험 또한 낯설지 않다. 그럴 때마다 '나이 들면 원래 다 그런 거겠지'라며 애써 합리화한다. 이러다 어느 날 갑자기 뇌의 인지 기능이 사라질까 두렵다. 


이러한 두려움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한 사람이 있다. 신경퇴행질환 연구의 세계적인 석학인 데일 브레드슨 박사는 스스로 노력한다면 뇌의 인지 기능을 지키고 더 나아가 뇌 수명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내 뇌를 보호하고 늙지 않게 할 수 있다면 어떤 변화든 기꺼이 해보고 싶다. 이 책은 뇌 건강에 대한 내 염려증을 제대로 건드렸다.


돌봄을 받던 나이에서 돌봄의 주체가 된 지금, 연로한 부모님의 건강은 가장 큰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특히 치매는 보호자로서 가장 두려운 질환이다. 내가 챙길 수 있는 건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시라는 잔소리와 양질의 식사다. 나를 포함하여 가족 구성원의 연령대가 고령을 향해 가는 시점에 <늙지 않는 뇌>는 뇌 노화를 비롯한 건강한 삶을 향한 실천적인 가이드였다. 


저자는 총 14장에 걸쳐 뇌 건강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현실에서 뇌를 늙게 만드는 것들에 대한 경고를 던지고 각자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여 뇌가 좋아하는 몸으로 바꾸는 과정을 보여준다. 뇌가 좋아하는 식생활, 운동, 휴식과 자극 등을 통해 늙지 않는 뇌를 만들고 인체의 노화를 되돌리는 재프로그래밍이라는 개념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낸다.


뇌 과학은 막연히 어렵게 느껴졌는데, 5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설명되어 있다. 나이가 들수록 몸이 노화하는 건 자연의 섭리다. 하지만 그 속도를 늦추고 젊고 건강한 시간을 누리는 건 사람마다 노력에 따라 달라진다. 노화를 두려운 질환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변화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늙지 않는 뇌>는 나이와 관계없이 어제보다 더 젊은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 읽어야 할 필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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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 - 경성에서 서울까지, 시간을 건너는 미술 여행
우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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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시대를 가로질러 감동과 위로를 전한다. 근대를 지나 현대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예술가들의 고뇌와 고민은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전해진다. 100여 년이라는 긴 시간의 간격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들의 열망은 작품으로 발산된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원인 저자는 근대와 현대, 전통과 모더니즘이 교차하는 예술 이야기를 담아낸다. 다양한 작품들의 도판과 작가들의 인터뷰를 함께 엮어 예술가들의 고민과 열정을 들려준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근현대 미술계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흥미롭게 이야기한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무대로, 시대 속 여성과 장애를 경계에서, 계절의 풍경을 색에 담아 탐구한다.


각각의 주제에 따라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근현대 미술사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억압과 탄압의 시간 속에서도 예술가는 작품을 통해 존재를 증명하고 현실을 견디기 위한 수단으로 예술을 선택했다. 이 책이 흥미로운 건 예술가들의 태도를 구체적인 흔적들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특히 서울이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의 예술가들이 마주한 시간이 작품에 어떻게 남는지 선명하게 드러낸다. 책을 읽다 보면 근현대 미술사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뚜렷하게 구분될 거란 생각과 달리 근대와 현대가 어떻게 이어졌는지, 각 시대의 작가들은 어떤 방식으로 시대 변화를 받아들였는지 그 흐름을 따라갈 수 있다.


저자는 미술을 이해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느린 호흡으로 읽어갈 수 있는 대상으로 보여준다.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작가들의 목소리와 시대상, 그리고 과거 경성이라 불렀던 서울의 풍경은 근현대 미술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우리 미술이 가진 결을 천천히 따라가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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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슨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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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의 일생을 따라가는 『레슨』은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광대한 역사의 흐름을 담고 있다. 전쟁, 냉전, 테러, 그리고 팬데믹이라는 역사 속에서 한 개인의 인생은 작은 점에 불과하다. 하지만 작은 점 안에는 무수한 개인의 역사와 시간이 담겨 있다. 허구와 현실이 뒤섞인 작가의 자전적 소설은 한 남자의 인생을 촘촘하게 그려낸다. 

육중한 뚜껑처럼 과거의 죽음을 슬그머니 덮었다. 우리는 삶에서 자신에게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을 잊는다. 그러니 일기를 써야 한다. 이제부터 일기를 쓰자. 과거는 빈칸으로 남고, 현재는, 이 감촉과 향기, 이 순간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곧 소멸할 것이다.

P. 458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롤런드 베인스로, 영국군 장교인 아버지를 따라 리비아에서 살다가 11살에 영국 기숙학교로 혼자 보내진다. 그곳에서 피아노 교사인 미리엄 코넬을 만나게 되고 그녀와의 만남은 소년의 인생을 통째로 흔들어 버린다. 


롤런드는 '미리엄이 자신을 이해해 주는 유일한 존재'라 믿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을 빙자한 성적 학대였을 뿐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이 관계는 사랑과 폭력, 선택과 학대 사이에서 모호하게 이어진다. 이 관계는 롤런드의 인생 전체를 비틀어 놓은 최초의 '레슨'이다. 


어른이 된 롤런드는 아내 알리사로 인해 또 한 번 삶이 흔들리게 된다. 그녀는 글을 쓰기 위해 남편과 어린아이를 두고 떠난다. 롤런드는 그녀를 원망하면서도 끝내 놓지 못하고 사랑과 상처 사이에서 인생을 뒤흔든 두 번째 '레슨'을 마주한다.


거듭되는 실패 속에 조금씩 늙어가는 롤런드의 삶은 시종일관 답답하게 느껴진다. 자신의 인생에 조금 더 능동적으로 대처했으면 한다는 안타까움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롤런드의 삶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건 그가 아버지로서 살아가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롤런드의 인생에는 극적인 결말도 화려한 성취도 없다. 끝까지 버티며 하루하루 살아낸 한 인간의 궤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실패와 후회로 가득할지라도 그만의 선택과 책임, 그리고 사랑이 있다. 이처럼 인생의 의미는 버티며 살아낸 날들에 더 가까이 있다. 

사랑이 과거로 사라질 때 모두가 잊어버리는 본질이 있었다. 함께했던 순간, 시간, 나날 속에서 느끼고 맛보았던 것. 당연시되었던 모든 것이 버려지고, 그것이 어떻게 끝났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덮이고, 그후에는 부끄러울 정도로 불완전한 기억에 의해 다시 덮이기 전의 그 모든 것. 천국이든 지옥이든, 많은 기억이 남진 않는다. 오래전에 끝난 연애와 결혼은 과거에서 온 엽서와도 같다.

P. 650 

인생의 무게는 화려한 순간이 아니라 잊혀진 시간들 속에 있다. 『레슨』은 그 시간들이 모여 한 인간을 만들어가는 역사를 잔잔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도서제공 #도서리뷰 #서평 #레슨 #이언매큐언 #문학동네 #해외문학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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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라는 세계 (트윙클 에디션)
리니 지음 / 더퀘스트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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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는 무엇이든 흔적을 남기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책장에 꽂혀 있던 흔적을 발견했을 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특히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가득했던 일기장은 발견 즉시 파쇄기로 보내버렸다. 어른이 된 지금 기록은 내 경력의 증거다. 책장 한편에 꽂혀있는 지난 달력에는 그동안 맡아서 해온 일들이 가득 적혀 있다. 초심을 찾고 싶을 땐 항상 지나간 달력들을 넘겨본다. 그래서 기록을 단순한 습관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


<기록이라는 세계>는 기록을 기술이나 습관으로 좁혀 설명하지 않고 “나를 확장시키는 방식”으로 바라본다. 기록을 통해 한 사람이 어떤 세계를 만들고 유지하는지 기록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책에서 반복해서 강조되는 것은 기록의 ‘크기’가 아니라 ‘방향’이다. 한 줄 메모든, 여행지의 영수증이든, 실패를 적은 노트든 기록의 형태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기록을 통해 내가 무엇을 보고 지나쳤는지 다시 확인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기록을 단순히 효율이나 관리의 수단으로만 생각해왔던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본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기록이 축적보다 ‘관찰’과 가까운 행위라는 설명이다. 일상에서 흐려졌던 사소한 장면들이 정확한 형태를 갖추면서 내 삶의 결을 다시 잡아주는 효과가 있다. 꾸준함이 의지나 성과의 문제가 아니라 흔들려도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힘이라는 말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저자는 기록이 나만의 세계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도 짚는다. 타인의 일기, 오래된 가계부, 익명의 블로그 글처럼, 기록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연결을 만든다. 개인의 기록이 시간과 사람을 건너 전혀 다른 의미를 생성하면서 기록의 가치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저자는 이에 대한 설명을 담담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한다.


결국 이 책은 기록을 잘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 대신 기록이 삶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록은 정리의 기술이 아니라 나를 정확히 관찰하고 다시 꺼내보는 과정이라는 점을 차분하게 알려준다. 책을 덮으면 기록을 더 많이 하겠다는 의지보다 내가 무엇을 남기고 있는지 먼저 살펴보고 싶다는 마음이 남는다.


#기록이라는세계 #리니 #더퀘스트 #오퀘스트라2기 #도서리뷰 #서평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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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팬덤과 극단의 시대에 꼭 필요한 정치 교양
이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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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 그날의 기억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처음 '계엄'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과거의 사건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날을 기점으로 정치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그리고 좋은 정치란 과연 무엇인지 이 나라에서도 나타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썰전>을 통해 익숙한 저자는 한국 정치의 위기를 여실하게 드러낸다. 12·3 불법 계엄, 두 번째 대통력 탄핵과 6·3 대선, 이재명 정부의 탄생과 정상화되고 있는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양극화는 뚜렷해졌고 팬덤 정치라는 현상까지 생겨났다.


저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알아야 할 정치 현안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준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극우 세력이 커지는 현상과 한국의 내란 척결이 지지부진한 지금 꼭 필요한 상식을 들려주고 정치적 시야를 넓혀준다. 


지난 3년 동안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솔직히 회복 불가능할 거라는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이 사라졌고 타인에 대한 관심과 미래에 대한 기대도 사라졌다. 그러다 갑자기 불법 계엄을 선언하고 내란을 일으키고 자멸의 길로 들어선 순간 희망이 생겨났다.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고 국민의 삶을 돌보는 새로운 정부를 꿈꿀 수 있었다.


저자는 보통 사람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이재명 정부가 더 잘하고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저자가 제시한 몇 가지 제언을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 인정하고 존중할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 정치가 어디로 가야 할지 가늠하게 한다. 팬덤이든 중도든 방식은 다르지만 정치가 향해야 하는 지점은 결국 하나다. 이 책은 그 공통의 방향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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