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이라는 세계 (트윙클 에디션)
리니 지음 / 더퀘스트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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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는 무엇이든 흔적을 남기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책장에 꽂혀 있던 흔적을 발견했을 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특히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가득했던 일기장은 발견 즉시 파쇄기로 보내버렸다. 어른이 된 지금 기록은 내 경력의 증거다. 책장 한편에 꽂혀있는 지난 달력에는 그동안 맡아서 해온 일들이 가득 적혀 있다. 초심을 찾고 싶을 땐 항상 지나간 달력들을 넘겨본다. 그래서 기록을 단순한 습관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


<기록이라는 세계>는 기록을 기술이나 습관으로 좁혀 설명하지 않고 “나를 확장시키는 방식”으로 바라본다. 기록을 통해 한 사람이 어떤 세계를 만들고 유지하는지 기록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책에서 반복해서 강조되는 것은 기록의 ‘크기’가 아니라 ‘방향’이다. 한 줄 메모든, 여행지의 영수증이든, 실패를 적은 노트든 기록의 형태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기록을 통해 내가 무엇을 보고 지나쳤는지 다시 확인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기록을 단순히 효율이나 관리의 수단으로만 생각해왔던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본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기록이 축적보다 ‘관찰’과 가까운 행위라는 설명이다. 일상에서 흐려졌던 사소한 장면들이 정확한 형태를 갖추면서 내 삶의 결을 다시 잡아주는 효과가 있다. 꾸준함이 의지나 성과의 문제가 아니라 흔들려도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힘이라는 말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저자는 기록이 나만의 세계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도 짚는다. 타인의 일기, 오래된 가계부, 익명의 블로그 글처럼, 기록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연결을 만든다. 개인의 기록이 시간과 사람을 건너 전혀 다른 의미를 생성하면서 기록의 가치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저자는 이에 대한 설명을 담담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한다.


결국 이 책은 기록을 잘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 대신 기록이 삶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록은 정리의 기술이 아니라 나를 정확히 관찰하고 다시 꺼내보는 과정이라는 점을 차분하게 알려준다. 책을 덮으면 기록을 더 많이 하겠다는 의지보다 내가 무엇을 남기고 있는지 먼저 살펴보고 싶다는 마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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