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롤런드 베인스로, 영국군 장교인 아버지를 따라 리비아에서 살다가 11살에 영국 기숙학교로 혼자 보내진다. 그곳에서 피아노 교사인 미리엄 코넬을 만나게 되고 그녀와의 만남은 소년의 인생을 통째로 흔들어 버린다.
롤런드는 '미리엄이 자신을 이해해 주는 유일한 존재'라 믿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을 빙자한 성적 학대였을 뿐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이 관계는 사랑과 폭력, 선택과 학대 사이에서 모호하게 이어진다. 이 관계는 롤런드의 인생 전체를 비틀어 놓은 최초의 '레슨'이다.
어른이 된 롤런드는 아내 알리사로 인해 또 한 번 삶이 흔들리게 된다. 그녀는 글을 쓰기 위해 남편과 어린아이를 두고 떠난다. 롤런드는 그녀를 원망하면서도 끝내 놓지 못하고 사랑과 상처 사이에서 인생을 뒤흔든 두 번째 '레슨'을 마주한다.
거듭되는 실패 속에 조금씩 늙어가는 롤런드의 삶은 시종일관 답답하게 느껴진다. 자신의 인생에 조금 더 능동적으로 대처했으면 한다는 안타까움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롤런드의 삶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건 그가 아버지로서 살아가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롤런드의 인생에는 극적인 결말도 화려한 성취도 없다. 끝까지 버티며 하루하루 살아낸 한 인간의 궤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실패와 후회로 가득할지라도 그만의 선택과 책임, 그리고 사랑이 있다. 이처럼 인생의 의미는 버티며 살아낸 날들에 더 가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