겅클
스티븐 롤리 지음, 최정수 옮김 / 이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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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할리우드 스타이자 성소수자인 패트릭 오하라와 어린 두 조카의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들의 만남이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됐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즐겁고 훈훈했다. 초반에는 어처구니없는 대사들의 향연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만 어느 순간 적응하게 되더니 이 가족이 진심으로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까지 생겨났다. 


제목의 '겅클'이 무슨 뜻일까..라는 궁금증으로 시작된 소설 읽기는 성소수자 남성, 할리우드 문화, 육아, 상실의 치유 등을 맛있게 버무리며 훈훈한 감동을 끝맺는다. 남성 성소수자를 뜻하는 게이(gay)와 삼촌을 뜻하는 엉클(uncle)의 합성어라는 점부터 예사롭지 않다. 썰렁하고 이해할 수 없는 패트릭의 유머라는 커다란 장애물을 넘고 나면 사랑스러운 이야기에 한없이 빠져들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경험을 공유하며 서로의 아픔을 치유하는 삼촌과 조카들의 이야기는 유쾌하면서도 따뜻하다. 죽음으로 인한 상실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이토록 경쾌하게 다룰 수 있다는 점이 놀라울 뿐이다. 아직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아이 둘을 90일 동안 맡아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서서히 달라지는 패트릭의 모습을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준다. 아이와 어른이 모두 서로의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다독이면서 조금씩 성장해가는 과정이 따뜻하면서도 안쓰럽다. 엄마의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소원을 빌고 춤을 추는 모습에선 뭉클한 감정을 느꼈다. 인생을 포기했던 패트릭이 다시 무대 위에 서고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이며 성장해 가는 아이들이 오래도록 행복하길 바라본다.

그들은 볼과 볼을 맞댔고, 패트릭의 심장이 잠시 쿵쿵 뛰었다. 찰나의 순간 심장박동이 멈춘 느낌이었다. 패트릭은 날카롭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랬다. 그는 알지 못했다. 그런 달콤함을. 그렇기는 하지만 마음속 깊이 진심이었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뭔가를 느꼈고, 눈을 감았다.

사랑한다. 그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자기 자신에게. 아이들에게. 조에게. 세라에게. 아무나에게. 모두에게.

p.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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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들의 모국어
권여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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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선선해져서일까. 술과 음식에 관련한 이야기가 유독 눈길을 끈다. 자신의 입맛을 키운 건 팔 할이 소주라고 말하는 작가 권여선. 그녀가 전하는 먹고 마시는 이야기는 자꾸만 군침이 돌게 한다. 

술꾼이 딱 그렇다. 세상에 맛없는 음식은 많아도 맛없는 안주는 없다. 음식 뒤에 ‘안주’ 자만 붙으면 못 먹을 게 없다.

P. 7 

이 책에는 계절에 어울리는 다양한 음식들이 맛깔나게 등장한다. 그녀에게 음식은 갈등을 만들기도 하고 화해의 자리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또한 음식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도 한다. 그녀에게 술과 안주는 삶의 다양한 순간에 윤활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음식을 만들고 먹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땐 제법 술도 마시고 요리하는 것도 좋아했는데 언제부턴가 과정보다는 편리함에 익숙해졌다. 일종의 보상심리하고 해야 할까. 노동의 강도가 높아진 만큼 배달 음식에 대한 의존도도 높아져만 간다.

단식이 짧은 죽음이라면, 단식 후에 먹는 죽과 젓갈은 단연코 부활의 음식이다.

P. 69 

작가는 음식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위기를 만들기도 하고 위안을 받기도 한다. 음식에서 '간 맞추기'가 중요한 만큼 관계를 적당하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람들과 둘러앉아 술잔을 부딪히고 안주를 권했던 적이 언제였던가. 그녀의 글을 읽다 보니 문득 그런 시절이 그리워진다. 맛있는 음식을 두고 둘러앉아 먹기를 권하며 연대감을 느끼고 미각을 통해 공감하며 함께 하는 시간의 중요성을 새삼 떠올려 본다.

뭔가를 먹고 만족하기 위해서는 맛과 온도도 중요하지만, 원하는 스타일로 먹는 것도 중요하다. 밥 먹을 때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이 있는데, 그건 개도 자기가 원하는 스타일로 음식을 즐길 권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P. 124 

아침저녁 쌀쌀한 바람에 뜨끈한 국물이 당기는 계절이다. 재료가 품고 있는 단맛을 몸서리치게 탐닉한다는 작가의 말에 무를 넣고 조린 칼칼한 조림이 먹고 싶어졌다. 하얀 쌀밥에 매콤하고 달큼한 무 한 조각이면 금방 밥 한 공기 뚝딱 해치울 텐데.. 먹고 싶은 마음과 귀차니즘 중 누가 이길까. 판결은 오늘 저녁 밥상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봄에 싹텄던 것들은 여름에 왕성히 자라 마침내 가을이면 완숙에 이른다. 그런 의미에서 맛에 있어서만은 가을이 쇠락의 계절이 아니라 절정의 계절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 절정은 단맛으로 표현된다. 모든 먹을거리들은 가을에 가장 달콤해진다.

P.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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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묻고 미생물이 답하다 - 공생하고 공격하며 공진화해 온 인류와 미생물의 미래 묻고 답하다 6
고관수 지음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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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인류와 미생물의 공생해온 과정을 연대순으로 보여준다. 호모사피엔스의 진화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던 효모로부터 시작하여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해결하지 못한 질병을 치료하는 노력까지 미생물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볼 수 있다.


저자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미생물이라는 작은 존재가 바꿔놓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앞으로 바꿀 것들을 이야기하며 역사의 결정적 순간에 존재하는 미생물에 포커스를 맞춘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미생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시간이 흐른 미래에 오늘을 돌이켜 보면 어떤 신비한 미생물이 밝혀졌을지 궁금해진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고 면역력에 대한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특히나 장내 미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역사의 순간을 미생물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시도가 새로웠다. 질병뿐만 아니라 발효 음식과 같이 주변에 있는 미생물의 존재를 새삼 깨닫게 되는 것 또한 즐거웠다. 


미생물이라고 하면 유해하다는 인식이 더 만연한데 실제로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인류보다 먼저 존재했던 미생물의 영향력은 어디까지 미칠까? 한계를 알 수 없는 미생물 세계의 이모저모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과학 책이다. 


결국 사람에게 달렸다. 세균과 바이러스, 곰팡이와 같은 미생물은 저들의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지금도 그렇다. 그것들을 불러내어 수많은 사람이 죽은 것도, 그것을 이용해서 우리에게 유용한 것을 만들어낸 것도 우리가 한 일이다. 사람의 일, 결국 역사다.

P. 9 

결핵균은 현생 인류의 출현과 함께했으며, 함께 이동해왔다. 물론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혀왔다. 하지만 산업화 이전에는 어느 지역에서도 대규모로 발생했다는 증거가 없다. 결핵균은 산업혁명의 세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 104 

이제 다시 미래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다가오고 있다. 항생제 내성으로 기존의 항생제가 쓸모없어지는(이미 쓸모없어진 경우도 없지 않다) 상황이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메커니즘을 갖는 항생제 개발의 어려움, 비용과 수익성의 문제, 임상시험의 복잡성, 내성 문제 등으로 많은 제약회사가 항생제 개발에서 발을 빼는 실정이다. 어쩌면 우리는 흔한 세균 감염에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포스트 항생제 시대(Post-antibiotic era)’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P.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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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맛 멋
김혜나 지음, 김현종 감수 / 은행나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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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술잔을 들게 된 건 아빠와의 한 잔이었다. 술은 어른에게 배우는 거라는 말과 호기심에 한 모금 마셨고 도대체 이 쓴 걸 왜 마시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성인이 되어 마신 술은 젊은 날의 호기였다. 억눌러왔던 일탈을 한꺼번에 폭발시키며 부어라 마셔라 했었다. 그렇게 이어지던 술 한잔은 직장 생활을 하던 끝이 났다. 무조건 참석해야 하는 회식이 힘겨워 술을 못한다는 말로 거절의 뜻을 보인 이후로 10년이 넘게 술 한잔 입에 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혼술의 기분을 느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소설가가 쓴 술 리뷰라는 말에 궁금증이 일었다. 예전에 술을 마셨을 때도 그 맛을 잘 몰라기에 진짜 술 맛을 알고 싶었다. 속초에서 작업을 하던 작가는 문득 '속초의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에 지역 전통주인 '동해소주'로 술상을 차린다. 그렇게 시작된 작가의 우리 술 찾기는 우리 문학의 맛과 분위기를 곁들이며 새로운 세상을 알려준다.


우리나라에 이토록 많은 전통주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술이 품고 있는 문학의 향기 또한 짙게 배어났다. 문장과 풍경, 계절로 빚은 우리 술 이야기는 고단한 삶에 위로와 평안을 준다.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안 마음만큼은 기분 좋게 취한 것 같았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 술에 푹 빠진 작가와 고생하면서도 행복하게 우리 술을 빚는 장인들의 이야기는 진정한 행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가끔 술 한잔 생각날 때가 있다. 연말이 다가오면 그 분위기에 와인 한잔해볼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 입에 대지 않은 알코올이 나이가 든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라 망설이게 된다. 그래도 언젠가는 마음 맞는 사람들과 맛있는 술 한 잔을 곁들이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다. 

 

오로지 홀로 이어가는 글쓰기의 순간에 마시는 한 잔 술은 작가에게 가히 노동주이자 소울메이트라 칭할 법했다.

p. 14

강렬하면서 맑고, 맑으면서 독하고, 독하면서 쓰고, 쓰면서 달고, 달면서 짜고, 짜면서 구수하다. 단 한 방울만으로 깊고 풍부하게 입안에 차올랐다가 뜨거운 기운으로 목울대와 가슴을 쓸고 내려가는 삼해소주는 나라 잃은 시인의 눈물방울을 닮은 듯하다. 그토록 그리던 나라를 되찾았음에도 마냥 기뻐할 수만 없는 시인의 눈물, 그렇다고 현실을 그저 증오하고 절망할 수만도 없는 시인의 얼룩진 눈물이 바로 이런 맛이지 않을까?

 p. 108

※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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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플라이트
줄리 클라크 지음, 김지선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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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는 푸에르토리코로 출장을 떠나게 되어 있었고, 이바는 집이 있는 버클리로 돌아가려고 오클랜드행 항공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두 여자에게는 커다란 공통점이 있다. 현재의 위태로운 처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길 갈망한다는 것이다. 클레어는 가스라이팅과 폭력을 일삼는 남편, 이바는 마약 조직으로부터 탈출을 모색한다. 서로의 존재도 모르던 두 여자는 존 F. 케네디 공항에서 만나 각자 지니고 있던 항공권을 바꿔치기한다.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푸에르토리코를 향하던 비행기가 추락하기 전까지...

소설은 클레어와 이바의 상황을 교차로 보여주며 두 여성이 자신들이 처한 절망을 어떻게 극복해 가는지 보여준다. 재미있는 건 두 여성의 시점이 반대로 보인다는 것이다. 클레어의 경우 추락 이후의 상황을 보여주지만 이바의 경우는 추락 전 과거부터 이어진다. 두 여성 중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진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나려는 클레어의 상황이 유독 신경 쓰였다.


친구의 도움으로 가짜 여권과 신분증까지 마련했지만 이조차 남편의 손에 들어간 상황에서 그녀는 어떻게 자신의 삶을 찾을 수 있을까. 타고 가려던 비행기가 추락까지 하면서 그녀의 도주가 성공할 수 있을지 빨리 결말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클레어에게 마음이 기운 건 현실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바의 경우는 운명의 굴레를 끊고 싶다는 바람이 마약 조직이라는 상황과 만나면서 거리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작가는 가슴 시린 두 여성의 삶을 속도감 있게 그려내며 희망을 품고 삶을 바꾸려 한 절박함을 표현한다. 작가는 유약한 여성일지라도 서로 연대하여 힘을 합친다면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권력의 벽을 부수기 위해 언론과 여론의 힘을 빌려 타개할 방안을 모색함으로써 가정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라는 용기를 북돋아 준다. 잃어버린 온전한 삶을 되찾으려는 두 여성의 이야기가 매력적인 작품이다.


※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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