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여우눈 에디션) - 박완서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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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으로 오래도록 남고 싶다는 작가 박완서.

그녀가 쓴 산문 중 35편이 담겨 있는 책이다.

그녀의 글이 이토록 마음에 오래도록 남게 될 줄은 몰랐다.

어릴 적 읽었던 그녀의 글과 나이가 들어서 읽게 된 그녀의 글은 느낌이 달랐다.

포근하고 정겨운 일상을 떠올리게 하는 그녀의 글이 참 좋았다.

40대의 비 오는 날에는 가끔씩 서글픈 감정에 빠지게 되고

어린 시절 살던 집 앞을 지날 때 느끼는 센티한 감정은 아직은 꿈을 꿀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잘못 배달된 택배 때문에 스스로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질문을 던지고

새해가 되면 귀엽게 늙고 싶다는 소망을 건넨다.

그녀의 글은 지쳐있는 나를 보듬고 세상은 살만하다는 긍정의 믿음을 전해준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풍경과 사람들을 향한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유독 마음이 추웠던 올해 겨울,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위로를 받고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때로는 귀여운 할머니의 모습에 미소를 짓기도 했고

모자랄 것 없는 현재의 삶에서 넉넉함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단순히 중년 여자의 허기증으로 작가가 되었다는 그녀의 고백을 들으며

내가 힘들어하는 이유도 나이에 따른 허기증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내가 들여다본 작가의 일상은 따뜻하고 묵직해 보였다.

그 온기는 고스란히 내게 살아갈 힘을 준다.


우리가 아직은 악보다는 선을 믿고, 우리를 싣고 가는 역사의 흐름이 결국은 옳은 방향으로 흐를 것을 믿을 수 있는 것도 이 세상 악을 한꺼번에 처치할 것 같은 소리 높은 목청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소리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선, 무의식적인 믿음의 교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p. 26

시간이 나를 치유해 준 것이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소중한 체험이 있다면 그건 시간이 해결 못할 악운도 재앙도 없다는 것이다.

p.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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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다정한 우주로부터 오늘의 젊은 문학 4
이경희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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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땐 짧은 호흡보다는 긴 호흡으로 읽는 걸 좋아하고

특히 소설의 경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세계관 내에서 즐겨 있는다.

고로 이 책은 내 기준에서는 결코 반갑지 않은 장르다.

약간의 불편함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지만 내 편견은 처음부터 와장창 깨졌다.

첫 단편인 <살아있는 조상님들의 밤>을 읽으면서 수없이 피식거렸고

<신체강탈자의 침과 입>에 도달해서는 큰 소리로 웃게 되었다.

그동안 SF라는 장르를 우주와 미래로 한정했던 것 같다.

시대 관습부터 직장인의 현실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SF의 세계관이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만큼의 세계관이라면, 그리고 이토록 유쾌한 소설이라면 장르적 한계를 뛰어넘어

SF라는 장르 그리고 단편 소설과 친숙해질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죽은 조상들이 살아 돌아오면서 끝없는 잔소리를 시전하고

우주에서는 사측의 민영화를 반대하며 노동자들의 파업이 시작되었으며

지구 멸망을 핑계로 '순수'라는 행성으로 이주하기 위해서 신도들을 포섭하는

사이비 종교까지 등장한다.

6편의 이야기는 현실적인 소재를 작가의 유쾌한 글로 풀어가며 SF의 장르적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다음을 향해 나아간다.

처음엔 혼자였지만 앞으로 나아갈수록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함께 한다.

인간관계에 서툴고 그저 지금에 만족하며 현재만을 살아가는 나는

앞으로 다가올 세계가 어쩌면 핑크빛일지도 모르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미래를 기다려본다.

"사람들이 욕망하는 게 다들 다르니까. 현실이 한 가지 형태로 고정되지 못하고 계속 일그러지는 거예요. 중심 빌딩들은 항상 이런 식이죠. 쳐다보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욕망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거예요."

p.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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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 돋는 수학의 재미 : 상편 - 공부 욕심이 절로 생기는 기발한 수학 이야기 소름 돋는 수학의 재미
천융밍 지음, 김지혜 옮김 / 미디어숲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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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세계는 참으로 오묘하다. 금방 친해질 것 같으면서도 어느새 저 멀리 달아나 있다.

학창 시절 이과생이었지만 수학은 늘 멀게만 느껴졌고 친해지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썼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친해질 수 없었던 수학이 인생에 딱 하루,

수능시험 날에는 기적처럼 가까워졌다. 덕분에 원하는 점수를 얻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수학은 어렵고 미묘하고 복잡하고 난해한 학문이라는 인식이 머릿속에 박혀 있다.

이 책에서는 동서양의 수학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수학적 사고방식을 할 수 있는

팁을 알려 준다. 피타고라스 정의나 피보나치수열처럼 수학과 관련하여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는 공식부터 페리 수열, 페르마의 대정리, 펠 방정식 등

다양한 이론을 폭넓게 소개한다.

저자는 수학이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또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호기심 가득한 흥미로운 학문이라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일상에 숨어 있는 수학 개념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QR 코드가 만들어진 원리와 항공권 번호에 숨겨진 비밀이 담겨 있고 소비 관념의 차이를 수학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방식과 배우자를 찾을 수 있도록

사랑을 수치로 표현할 수 있는 공식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수학이 적용되는 사례를 볼 수 있다. 인류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공식들이 호기심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사실은

단순히 공식을 외우고 대입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수학이 재미있는 학문이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 이 책을 통해 숫자와 관련한 호기심을 자극하여 수학의 매력을 발견하고 한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가끔 문제를 해결할 때 구체적인 문제에 집중하여 해결을 더 복잡하게 만들어버린다. 사실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볼 때 답을 찾을 수 있고 더 간단한 문제가 되기도 한다.

p.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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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살인 2 - 내 안의 살인 파트너
카르스텐 두세 지음, 전은경 옮김 / 세계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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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과 살인의 신선한 조합으로 충격을 안겨 주었던 소설이 계속되는 이야기로 돌아왔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했던 <명상 살인> 이후의 이야기는 '내 안의 살인 파트너'와 함께 진행된다.

과연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로 명상이라는 소재를 뛰어넘어 파격을 안겨줄지 궁금했다.

뜻하지 않게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변호사 비요른은 이제는 더 이상 살인은 없다고

다짐한다. 그 다짐 때문에 거의 완벽했던 알프스의 가족 여행에서 여행을 망친 종업원에게는

귀여운 복수를 하기로 했다. 그저 가벼운 장난이라는 내면의 순수한 목소리에 동조하면서..

하지만 장난의 결과로 종업원의 다리가 부러졌다는 소식을 듣자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거라는

걱정이 일었고 목까지 부러졌다는 걸 알았을 땐 자신이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짓을 후회했다.

그래서 다시 명상 선생을 찾아간다. 그리고 내면아이를 만나게 된다.

작가는 내면아이라는 대상을 통해 어릴 적 상처를 치유하면서 인간의 내면적인 문제를 다룬다.

또한 현실의 사회 문제를 블랙코미디 방식으로 유쾌하게 풀어낸다.

평화로운 일상을 꿈꾸며 명상을 시작했지만 비요른의 일상은 여전히 해결할 것들이 가득하다.

유치원의 지하실에는 마피아 두목이 갇혀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협박이 이어지고 있으며

아내와 유치원 학부모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이중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유치원 학부모회는 유치원이 기후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한 학부모는 아이들의 단체 사진에서 자신의 아이는 보호하고 싶지만

아이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고 싶다는 이중적인 요구를 주장한다.

변호사 비요른과 유치원 원장 사샤, 그리고 내면아이는 이 모든 문제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해결해 나간다. 이들을 둘러싼 현실은 여전히 피가 튀고 살인이 이어지고

협박이 난무하지만 오늘도 유치원은 평화롭다.

역시나 작가는 전작의 기대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면서

천진난만한 살인 파트너와 함께 벌이는 기묘하고 유쾌한 명상 살인자의 기묘한 공조를 따라가며

인간의 원초적 욕구에 대해 고민해 본다. 내 안에는 어떤 내면아이가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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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 - 박서련 일기
박서련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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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넘겨 읽기 시작하면서 자꾸만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한 사람의 너무나도 개인적인 기록을 읽어도 되나.

책을 두르고 있는 띠지에는 분명 작가의 '첫 산문집'이라 표기되어 있었다.

다시 표지로 돌아가니 그제서야 보인다. <박서련 일기>라는 글자가..

이 책은 소설가 박서련의 어제와 오늘을 담은 사적인 기록으로 가득한 책이다.

개인의 사생활을 엿보는 것만 같아 조심스러운 마음과 살짝 불편한 마음으로 읽던 중

어느 문장에 이르러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게 되면서 편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덧붙여 "그런데 오늘은 순순히 남은 거 가져가신다

함은...... 지금은...... 없이...... 살고 계시하는......" 하고 조심스레 물으니

다 그렇죠 하는 류의 맥없는 대답을 하며 하하 웃었다.

p. 49-50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하구나. 뭔가 안심이 된다.

당당하면서도 유쾌한 그녀의 글을 읽으며 나도 덩달아 기분 좋음을 느낀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들을 다양한 형식으로 풀어낸 그녀의 글을 읽으며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작가는 타인의 희로애락을 함께 느끼며 공감할 수 있는 독특한 시간을 갖게 해 준다.

꽤 오래전에는 나도 제법 일기를 썼었다.

어느 날 이삿짐을 정리하다 한창 예민한 나이에 썼던 일기장을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다시 읽어본 후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며

다시는 일기 따위는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누군가는 추억의 기록이니 소중히 간직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지만

과거의 일을 다시 읽는 그 순간의 부끄러움은 온전히 내 몫이 된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오글거림과 당황스러움을 또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

그런 경험 때문에 타인의 일기를 읽는 것이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일기란 대체로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글로 가득하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이 쓴 글 중 일기가 가장 재미있다'면서 세상에 내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 글을 읽으며 잠시나마 소설가 친구가 생긴 것 같다는 유쾌한 착각에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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