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정체는 국가 기밀, 모쪼록 비밀 문학동네 청소년 68
문이소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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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히치하이커」로 제4회 한낙원과학소설상을 수상한 문이소 작가가 그간 발표한 작품과 미발표작으로 꾸린 첫 SF 소설집이다. 작가의 기발한 발상으로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기다리게 만드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우리가 누구 때문에 굶고 사는데! 다 너희들 때문이잖아, 이 21세기 XX들아!!

p. 18

첫 번째 이야기인  「소녀 농부 깡지와 웜홀 라이더와 첫사랑 각성자」부터 시선을 잡아 끈다. 이 책에 실린 다섯 편의 단편 중 가장 인상 깊었고 읽고 난 후에도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었다. 특히나 지구촌 곳곳의 기후재난의 현실을 뉴스로 봤었기에 어쩌면 현실이 될지로 모른다는 생각에 유쾌한 이야기지만 씁쓸하게 다가왔다. 



비바람이 부는 어느 날 주인공 깡지네 버섯 종균 창고에 도둑이 든다. 그는 22세기 공무원으로 21세기 과거 인간들이 몰고 온 기후 재난으로 미래 식량난을 해결하라며 큰소리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편이 뜨끔하다. 현재를 살고 있는 21세기 인간으로서 무한한 책임감이 생겨났다. 낯선 이의 등장에 놀랄 만도 하지만 깡지는 자신을 할머니라 부르는 22세기 공무원에게 감자전과 부추 부침개, 갓 구운 식빵을 차려주고 자신이 가진 버섯 농사법을 전해준다. 과연 22세기 공무원은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무사히 자신의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 밖에도 인공지능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거액의 주문을 받은 무명 화가 젤리가 주인공인 「젤리의 경배」, 외딴 행성에서 200만 개가 넘는 유영 중 선대의 유산인 '유영의 촉감'을 찾아 나서는  「유영의 촉감」, 이루고 싶었던 꿈을 생애 마지막 순간에 선물하는 「이토록 좋은 날, 오늘의 주인공은」, 마지막으로 봉제산 외딴 집의 마녀가 납치한 아기 고양이를 구하기 위해 수리 기사로 위장한 토끼 로봇의 이야기를 담은  「봉지 기사와 대걸레 마녀의 황홀한 우울경」까지 인간과 비인간을 넘어 삶과 죽음,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전해준다.



​작가의 책을 읽고 주어진 미션을 생각하면서 과거로 추억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주변을 둘러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현실의 문제를 유쾌하면서도 진중하게 경각심을 심어주는 점이 좋았다. 또한 SF 소설이지만 난해하지 않고 타인에 대한 연민과 다정한 위로가 담겨 있다는 점 또한 이 소설집의 매력이다. 청소년 소설이라고 하지만 전 연령대가 두루 읽고 각자의 생각을 나누기에 좋은 책이다. 


내가 물려받은 기억은 촉감이다. 끈 하나에 의지해 거대한 공간과 아공간 사이를 누비는 '유영의 촉감'. 유영의 촉감은 부드럽고 따스하고 강력했다. 열아홉 번째 선대는 왜 이 기억을 유산으로 남겼을까.
p.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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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천 가족 2 - 2세의 귀환 유정천 가족 2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작가정신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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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지간 재미있게 살고 볼 일이다... 나는 현대 교토에 사는 너구리이지만, 일개 너구리라는 것을 긍지가 허하지 않아 먼발치에서 덴구를 동경하며 인간 흉내를 내는 것도 좋아해 마지않는다. 이 성가신 습성은 조상 대대로 면면히 전해 내려온 것이 틀림없다. 선친은 그것을 “바보의 피”라고 불렀다.
P. 11 


시모가모가의 너구리 사형제가 단합하며 적을 물리치고 가족의 힘을 보여주면서 1권에 이어 2권에서는 천상의 덴구계와 지상의 인간계, 땅 위의 너구리계 2세들의 대격돌이 펼쳐진다. 사랑하는 이를 지키려는 명예로운 싸움에 뒤어든 바보 사형제의 활약이 또 한 번 기대되는 순간이다.


이야기는 아카타마 선생의 아들이자 부자간 사랑의 쟁탈전을 치른 끝에 종적을 감춘 '2세'가 영국에서 귀국하면서 시작된다. 여전히 허무맹랑하면서도 평화로운 교토 원더랜드에 2세들이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치열한 다툼도 계략도 어느 순간 너구리 스타일로 수습되는 과정은 모리미 월드의 유쾌한 세계관을 반영한다. 


​작가는 너구리들의 스승인 아카다마 선생과 2세의 목숨을 건 대결부터 환술사 덴마야의 계략으로 너구리 삼남 야사부로가 금요클럽의 너구리전골이 될 위기까지 파란만장한 에피소드가 끊임없이 내보이며 정신을 빼놓는다. 눈치도 없고 재능도 없고 담력도 없지만 한층 더 성장한 형제들의 바보스러움은 자꾸만 다시 한번 가족애를 실감할 수 있게 해 준다.


2권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1권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야사부로의 약혼녀 '가이세이'의 비밀이었다. 왜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험한 말만 할까 궁금했는데 드디어 궁금증이 풀렸다. 이런 걸 두고 천생연분이라고 하는 걸까. 개성 강한 등장인물들과 이들이 펼치는 폭소 만발한 사건들, 그리고 러브 스토리를 읽고 나면 '인생은 역시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라는 모리미 세계관에 조금 더 빠져들게 된다. 


복잡한 현실에서 벗어나 너구리가 주연이고 인간이 조연인 거대한 스케일의 판타스틱한 청춘 판타지 소설을 통해 잠시 웃음의 세계에 들어가 보는 건 어떨까. 사랑과 우정, 의리와 자부심을 모두 만날 수 있는 유쾌한 소설이다. 

나는 천하태평을 사랑하는 너구리이지만 ‘그것만으로는 곤란하다’고 바보의 피가 속삭였다. 언제든지 풍파를 일으켜요. 팍팍 일으켜요. 언제든지 평화를 어지럽혀요. 팍팍 어지럽혀요.
P. 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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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민카 식당에 눈이 내리면
조수필 지음 / 마음연결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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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순간을 살아갈 뿐이다.

p. 144

이국적인 도시 프라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잔잔한 치유와 위로의 이야기이다.

겨울 프라하의 풍경이 그려지면서 각자의 이유로 한국을 떠난 

4명의 청춘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내 버킷 리스트에 담긴 도시 중 하나인 프라하. 
그곳에 한식당이 문을 열었다. 
해국이 오픈한 한식당 '마민카'에서 만나게 된 수빈, 지호, 단비, 그리고 해국이 

보여주는 일상의 이야기는 사람을 위로하는 건 결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겨울을 닮은 표지부터 이 작은 책은 마음에 평온함을 안겨 준다. 

자극적인 사건이나 사고 없이 평범하게 흘러가는 일상을 바라보며 

정신없던 연초의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는 걸 느낀다. 

프라하라는 낯선 땅에서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이들은 서로가 가진 슬픔을 

하나씩 꺼내 보이고 서로에게 다정한 손을 내민다.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면서 내 청춘의 시절 또한 떠올릴 수 있었다.  

오랜만에 잔잔한 단편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기분이 든다. 

흑백으로 시작하여 점점 다채로운 색을 보여주는 듯한 소설이 참 좋다.


“밤의 성질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잖아. 어둡고 차가운 거. 캄캄하고 시린 거. 억지로 빛을 들이대서 밝힌다는 게... 그게 다 인간들이 좋자고, 편하자고 그러는 건데 밤의 정령도 그걸 원할까 해서.”
p. 41
.

낯선 이와 단둘이 길을 걷다 보면 새삼스레 알게 된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한다는 게, 적정하게 보폭을 맞추면서 서로의 말소리에 집중한다는 게, 얼마나 까다롭고도 유의미한 일인지를 깨닫는다. 
P.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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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컬렉터 - 집과 예술, 소통하는 아트 컬렉션
김지은 지음 / 아트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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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드디어 인생의 목표였던 뉴욕에 도착했다. 롱아일랜드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에서 일주일간의 학회가 끝나자 기차를 타고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터미널을 나와 눈앞에 펼쳐진 노란 택시들의 행렬과 TV에서만 보던 도시의 풍경을 직접 마주했을 때 느꼈던 설렘과 흥분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이 책을 펼쳤을 때 그때와 비슷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MBC 아나운서이자 이 책의 저자인 김지은 아나운서는 코로나19로 인한 고립감과 우울감에서 벗어나고 세계 각지에 있는 친구들의 안부를 물으며 각자의 컬렉션을 공유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예술로 연결하기'라는 프로젝트는 일상 속 예술의 가치와 영향력을 보여준다. 즉, 우리가 사랑하는 작품들이 던지는 질문과 우리가 받은 위안을 공유하며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도록 도와준다.



​총 21명의 컬렉터가 각자의 컬렉터를 공유하며 보낸 수많은 이미지는 김지은 아나운서의 깊이 있는 설명이 더해져 현대미술이 세상에 끼친 영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준다. 현대미술에 관심이 있었던지라 이 책이 무척이나 반가우면서도 고마웠다.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사진부터 훑어봤다. 다양한 컬렉터를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행복해지고 마음에 기쁨이 충만했다. 낯선 작가들의 작품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컬렉터들의 집과 그 안에 담긴 작품을 보는 시간은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시선을 한층 더 넓혀주었다.



​현대미술은 난해하고 어렵다는 편견이 있지만 저자는 '지금 친구네 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보이는 벽에 걸린 그림이나 커피 테이블 위의 조각이 곧 현대미술'이라고 말한다. 현재를 담고 있는 예술이 곧 현대미술이며 컬렉팅을 통해 하나의 세계를 자신의 안으로 들여옴으로써 각자의 세계를 성장시키고 확장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2년 전 아트페어에서 처음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을 샀을 때 알 수 없는 뿌듯함을 느끼면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자극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의 경험은 현대미술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사실 컬렉팅이라고 하면 돈이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이전까지 그림을 산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좋아하는 작품을 소유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덕분에 조각 투자로 소유권을 가진 작품도 여럿이고 컬렉팅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금전적 가치를 넘어 경험을 확장한다는 의미에서 이 책에 소개된 다양한 컬렉터들의 삶은 큰 자극이 되었다. 현대미술에 대한 시각을 한층 더 확장시켜주고 컬렉팅의 재미를 알 수 있게 해 준 멋진 책이다. 

아트 디렉터로서 25년을 살다 보니 나와 인연을 맺은 작품을 평생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투자라는 개념은 머릿속에 아예 없고요. 그러다 보니 작품이 스스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낼 때까지 참을성 있게 지켜보다가 이때다 싶을 때 설치를 하는 편입니다.
P. 331

.

나는 처음부터 돈이 되든 안 되든, 남들이 걸작이라 부르든 말든 오직 내가 좋아하는 작품만을 모아왔어. 딱 한 가지, ‘첫눈에 반함’이라는 원칙만 지켜왔고 후회는 없어. 관심이 생기면 공부했고 스스로 터득했어. 마침 미술시장이 호황이었고 결국은 아주 좋은 투자가 되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컬렉팅의 제1조건은 나의 직관이야.
P. 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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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었어도 외로움에 익숙해지진 않아 - 휘둘리지도 상처받지도 않으며 깊고 단단한 관계를 만드는 법
마리사 프랑코 지음, 이종민 옮김 / 21세기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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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사귄다는 건
또 하나의 인생을 갖는 것이다
p.6


삶의 위기가 찾아오거나 흔들리는 순간, 가족에게도 차마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마음껏 털어놓은 적이 있다.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은 가장 가까이 있다 여겼기 때문인지 내 속에 숨겨 두었던 이야기까지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런 친구들이 있기에 지금까지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이러한 우정을 강조한다. 사실 어른이 되어 친구를 사귄다는 건 어린 시절의 경험과는 다르다. 훨씬 복잡하고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생각만큼 쉽지 않다. 지금까지의 관계 맺기를 돌아보고 어른의 우정 쌓기를 통해 삶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해 보았다. 이 책에서는 힘겨운 삶을 지탱해 주는 건 로맨스가 아니라 우정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각자의 인생에 든든한 벗을 찾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또한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는 법부터 깊은 우정을 주고받는 법까지 친구 사귐의 기술을 이야기한다. 


우정은 가장 진실하고 친절하며 풍요로운 자아를 발견하는 수단이다. 우정은 타인과 연결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가르쳐 주는, 관계에 관한 현장 수업이다. 우정은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또 다른 우정을 맞을 준비를 갖추게 해준다.
p. 60


지금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친구들은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회사 생활을 하며 만났거나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하며 만나게 된 친구들이라 그런지 유독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다. 서로의 상황을 알고 있고 같은 취향으로 인해 비슷한 점이 많이 있기 때문인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바로 어제 만난 친구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 온전히 내 편이 되어 줄 이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용기가 생긴다.


심리학 박사인 저자는 삶을 확장하고 영혼의 성장을 위해 우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또한 이 책의 3장에서는 휘둘리지도 상처받지도 않으면서 더 깊은 관계를 맺게 도와주는 6가지 우정 공식을 소개한다. 내가 가장 주의 깊게 읽은 부분도 '주도성을 발휘하여 낯선 사람을 친구로 만드는 법'이다. 


여기 간단하지만 때로는 놀라운 진리가 있다. 어른이 돼 친구를 사귀려면 주도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먼저 마음을 열고 노력해야 한다. 이는 몇 번이고 거듭해서 다가가는 과정이다.
p. 107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은 구체적이면서도 실천 가능한 것들이다. 예를 들면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건네고 회사에서 동료에게 커피 한잔하자고 제안하고 관심 있는 강습에 등록하는 등 끊임없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환경에 스스로를 노출시킨다. 이러한 작은 행동은 주도적으로 관계를 맺으려는 노력의 시작이 된다. 이 밖에도 관계를 단단하게 다지고 진짜 친구를 가리는 방법을 배우고 갈등을 해결하고 깊은 우정을 주고받는 방법까지 터득할 수 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속마음을 털어좋을 수 있는 친구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 자신한다. 나 역시 내 친구들에게 그런 존재였으면 좋겠다. 그저 옆에 있기만 해도 힘이 되어 주는 그런 관계를 오래도록 지속해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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