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의 달
나기라 유 지음, 정수윤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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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아홉 살 여자아이는 부모가 모두 사라진 후 살기 위해

열아홉 살 그 남자를 따라갔다. 지독하게 바른 삶에 갇혀 있던 열아홉 살 그 남자는

자유로운 여자아이의 모습에서 느슨한 삶의 즐거움을 느꼈다.

그래서 그들은 각자 살아온 지독한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안락한 생활을 꾸려나갔다.

하지만 세상의 시선은 두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았다.

납치범과 피해 아동이라는 굴레를 씌워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한번 새겨진 끔찍한 낙인은 평생토록 이들을 따라다녔다.

함께 밥을 먹고 게으른 주말을 즐기고 서로의 틀을 조금씩 깼을 뿐인데

사람들은 각자가 가진 편견에 사로잡혀 여자아이가 끔찍한 일을 당했을 거라 믿었다.

내가 느낀 두 사람은 롤리타 콤플렉스도 스톡홀름 증후군도 아니었다.

그저 진정으로 삶을 살고 싶어 하던 여린 영혼의 소유자들이었다.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안을 얻고 싶어 했을 뿐이다.

시간이 흘러 여자아이는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세상은 그녀를 피해자로 여겼다.

그 여자는 말한다.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고...

그리고 그 여자와 그 남자는 다시 만나게 되었다. 결핍된 영혼은 함께 있을 때 온전해진다.

그 여자가 그 남자와 함께 하려 했을 때 연인의 폭력과 사회 편견에 시달리게 된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 결혼이야말로 폭력이 아닐까.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때리고 밀치는 폭력성이 과연 한 번으로 끝날까.

그 여자는 선택했다.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날 순 없지만 과거 연인의 폭력으로부터는 벗어나

진정한 자아를 찾기로 했다. 중반부터 마음이 급해졌다.

결말을 먼저 알고 싶다는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았다.

지친 영혼들이 이제 겨우 안정을 찾았는데 더 이상이 시련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래서 이들이 마침내 서로를 구원할 수 있었을 때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가여운 두 사람이 비틀어진 세상의 시선에 지지 말고 자신들이 만든 안락한 세계를 오래도록

지켜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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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나를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하라
무옌거 지음, 최인애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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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는 거절을 못 하는 아이였다. 모두에게 칭찬을 받고 싶었고

무엇이든 완벽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거절을 하며 나쁜 아이가

되는 것만 같았고 마음이 계속 불편했다. 그러다 보면 원치 않은 부탁도 들어줘야 했고

내 일보다 부탁받은 일을 우선시해야만 했다. 이런 성격은 스무 살이 지나서야 달라졌다.

학창 시절 절친이었던 친구들에게 받은 상처를 계기로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무엇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바보같이 물렁물렁한 성격이었던 나는 남들이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공감가는 저자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진심으로 계속된 호의를 당연시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저절로 마음을 닫게 될 수밖에 없다.

어떤 이는 저자의 이런 단호한 마음을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마음 아픈 경험들을 돌이켜보면 저자의 단호하고 똑 부러지는 메시지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마음이 불편해서 거절하지 못했을 때 받게 되는 피로감을 생각해 보자.

저자의 조언대로 원칙을 정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불만을 표현하고

자신을 먼저 생각할 수 있도록 시도해 보자. 하루아침에 바꾸길 바라는 건 욕심이다.

적어도 하루에 하나씩 연습해 본다면 스스로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부드럽지만 강단 있게 착하지만 단호하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p. 37

단지 미안해서 거절하지 못한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짓이 어디 있겠는가. 거절한 뒤 잠깐 마음의 불편함을 느끼는 편이 내 인생을 희생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다. 이 사실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


p. 53

거절하는 방식보다 거절할 수 있는 '용기'가 훨씬 더 중요하다. 제대로 거절하는 법을 배우려면 그저 부단히 연습하고 시도해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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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터링 - 집을 온전히 누리는 법,
애나 맥거번 지음, 샬럿 에이저 그림, 김은영 옮김 / 유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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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여유로운 삶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가만히 있는 것이 진정한 휴식이 아니라

생각하기에 조금 더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방구석 생활 가이드에 눈길이 갔다.

빈둥거림을 뜻하는 단어 포터링(pottering)을 이 책에서는 즐겁게 자유롭게 몰두하는 것이라고

재해석했다. 어렵지 않다. 키우는 식물의 잎사귀를 쓱쓱 닦아주거나 주전자에 찻물을 올리거나

물건의 위치를 바꾸는 등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행동을 하면 된다.

다만 포터링에는 기본 원칙이 있다. 있는 것을 활용하기. 너무 애쓰지 않기, 조금만 움직이기,

동네 즐기기, 그리고 디지털기기를 멀리하기.

이 기본 원칙을 지키면서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면 된다.

집안에서 언제 어느 곳에서도 원하는 시간만큼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

온전히 내가 좋아서 하는 일에 의미를 둔다. 그러면서 각자에게 소중한 행복인 무엇인지

떠올리게 만든다. 매일이 지겹다고 느껴지거나 재미가 없다고 느껴진다면

각자가 있는 공간에서 포터링을 해볼 수 있다. 나를 위해 찻물을 끓이는 것부터가

행복의 시작임을 느낄 수 있다면 진정한 포터링을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정해진 계획이나 목적 없이 즐겁게 몰두하는 일이라 말하지만

나는 포터링을 즐기기 위해 벽지를 미리 주문했다. 눈에 거슬리는 거실 한쪽 벽면을

새하얀 벽지로 깨끗하게 붙이고 싶어졌다. 날이 추워지면서 몸이 자꾸만 움츠려들기에

날짜를 정하진 않았다. 다만 재료가 있다면 언제든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주문부터 하기로 했다. 만약 언제 얼마큼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면

분명히 하지 않을 핑계를 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내 마음이 내키는 순간 잠깐 몸을 움직여 해보려 한다.

우아한 빈둥거림이 때로는 필요한 순간이 있다. 빡빡하게 짜인 삶에서

잠시나마 이런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쉬는 법을 모르는 나 같은 사람에게 휴식의 즐거움과 여유를 알려준 책이다.

p. 52

포터링은 뭔가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거랍니다. 그래서 움직이되 디지털기기를 멀리하는 것이 중요하죠. 또 한 가지 기억할 것은 포터링은 좋아서 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p. 160-161

포터링은 어디서든 할 수 있어요. 원하는 만큼, 시간이 되는 대로 하면 돼요. 하고 안 하고는 당신 마음이에요. ... 생각을 바꾸는 건 하루 중 잠깐이면 돼요. 어디서든 할 수 있고 자신의 행동이 포터링인지조차 모를 거예요. ... 소소한 포터링은 언제나 즉흥적으로 일어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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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공간 - 나를 이루는 작은 세계
유주얼 지음 / 허밍버드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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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중반에서 마흔을 향해 가는 평범한 보통 사람의 자기 고백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고단한 하루의 끝에서 온전히 쉴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평범한 일상을 다정하게 풀어 낸다.

자신이 고른 행복들로 공간을 가득 채우면서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준비한다.

이런 시간들이 하나둘씩 모여 인생의 한 페이지를 채운다.

그녀가 살아가는 공간을 엿보는 일은 즐거웠다. 내 공간과 비교하면서 서로의 인생을

살펴보게 되었다. 그녀는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집 안을 정리하고 청소를 한다.

하지만 퇴근 후 하는 일은 꽤 힘겹다. 이미 지친 몸과 마음으로 집까지 정리하고 나면

어느새 하루가 훌쩍 지나가게 된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스스로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였고 집안일이 끝나면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녀에게 공간은 무조건 내 편이 되어 보듬어 주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가만히 내가 있는 공간을 둘러보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동생이 독립하면서

자연스레 작업실이 생겼다. 불필요한 것들은 죄다 버리고 책상을 정리하고 필요한 장비를

마련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가구 위치를 바꾸며 틈틈이 나를 위한 공간으로 바꿔 나갔다.

문을 열고 나가면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지만

이 방에서만큼은 나름대로 옷도 차려입고 일도 하고 책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온전히 나를 위한 세계를 구축하며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오랜만에 마음이 편해지는 책을 읽었다. 솔직한 자기 고백에 찡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모두에게 서툰 처음은 나의 처음을 떠올리게 했다. 20대와 30대의 친구란 어떤 존재인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이기적인 다짐도 해본다. 모두가 자기만의 공간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p. 116

혼자 사는 사람의 삶에선 출세와 승진 말고 어떤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좋은 일이 일어나길 기다리는 대신 나는 좋은 일을 하고 싶다... 결혼과 출산을 건너뛰어도 된다면, 아이를 기르는 육아(育兒) 대신 나 자신을 기르는 육아(育我)를 하며 지낼 것이다. 나 하나 들여앉힐 자리도 빠듯한 깜냥이 이제는 조금 더 넉넉했으면 싶어서다.


p. 150

내가 결정한 삶의 목표는 그 용기와 경험들을 축적하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도 하면서 즐겁게 사는 것이다. 매일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건네는 격려 속에 그들이 병과 상관없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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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게 범죄 - 트레버 노아의 블랙 코미디 인생
트레버 노아 지음, 김준수 옮김 / 부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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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미국 스탠드 업 코미디언 트레버 노아의 웃픈 삶을 다루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의 낯선 제제 하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현실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가족과 웃음을 잃지 않은 한 사람의 유쾌한 이야기가 동시에 펼쳐진다.

이 책에 소개된 열여덟 가지 에피소드가 한 사람이 겪은 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그의 이야기는 웃기면서도 슬프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서는 인종 간에 성관계를 할 수 없고 범죄형에 처한다.

트레버 노아는 흑인 어머니와 스위스인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 책의 제목이 왜 <태어난 게 범죄>인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아이를 원하는 어머니의 의지에 따라 태어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함께 살지 못했지만 그의 삶에는 어머니라는 커다란 울타리가 늘 함께했다.

어쩌면 그의 코미디언의 끼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그녀가 있었기에 지금의 트레버 노아도 존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폭동이 일어나도 그의 어머니는 숨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당시 흑인 여자는 공장을 다니거나 하녀 일을 해야 했지만 그녀는 비서 일을 했고

미니버스에서 운전기사와 말다툼을 하다 목숨의 위협을 느끼자 달리는 버스에서 두 아이와 함께

뛰어내리기도 하며 때로는 혼이 나다 도망가는 아들을 향해 도둑이야라고 외치기도 했지만

어머니의 존재는 트레버가 웃으며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온전한 흑인이 아니었기에 흑인 가족들 사이에서 그의 존재는 다소 낯설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그를 백인처럼 대했고 잘못을 해도 때리지 못하고 마스터라 부르며

그를 주인 모시듯 했다. 오로지 엄마만이 절대 권력이 가족들 사이에서 영리한 트레버는

피부색이 달라 받게 되는 특별 대우를 말없이 받아들였다.

악동은 어릴적부터 현실을 유리하게 살아가는 법을 깨우쳤다.

이제 제법 자리를 잡고 코미디언으로 승승장구하던 트레버는 어느 날

동생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어머니가 계부가 쏜 총에 맞았다는 끔찍한 소식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도 아들에게 농담을 건네며 기적처럼

회복하여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날의 기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신이 있다면 그에게 그동안의 힘겨웠던 삶에 대한 보상을 준 것이라 믿고 싶다.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악동의 면모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에피소드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가난과 폭력이 난무하는 어린 시절을 지나 미국을 대표하는 코미디언으로

인생을 역전시킨 트레버 노아의 삶에서 희망과 기적을 볼 수 있었다. 웃음을 잃지않고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면 언젠가 내 인생에도 희망과 기적이 동시에 나타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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