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메론 프로젝트 - 팬데믹 시대를 건너는 29개의 이야기
빅터 라발 외 지음, 정해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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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보이지 않는 팬데믹에 과거의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은 점차 사라지고

오히려 죽음의 공포에 두려워하는 삶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백신이 개발되고 점차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에 맞설 무기를 갖게 되었지만

진화하는 변이 바이러스에 인간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뉴욕타임스 편집자들은 글이 가진 선한 힘을 모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삶에 대한 긍정의 메시지를 전하고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고자 하는

일명 데카메론 프로젝트.

과거 유럽에 흑사병이 만행하던 시절 보카치오가 쓴 소설 데카메론에서 영감을 얻었다.

세계 최고의 작가 29명은 기꺼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이들이 건넨 짧은 이야기는 험난한 시기를 함께 이겨내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야기가 가진 힘은 실로 위대하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초현실적인 현재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상상력을 펼친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무한 긍정 에너지를 마음껏 발휘한다.

격리가 일상이 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우리는 살아야 할 운명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작가들은 각자의 개성을 담고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

격리 중인 지구인을 구하러 온 외계인 이야기,

봉쇄된 삶에서 담담하게 일상을 유지하는 소설가 이야기,

엄마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방아쇠를 당긴 소녀 이야기,

이승과 저승 사이에 갇혀버린 버스 이야기 등을 통해

환상의 세계에서 잠시나마 고통의 시간을 잊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고립된 시간과 제한된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에 몰입하다 보면

힘든 한 해를 무사히 보냈고 계속되는 위협 속에서도 열심히 살고 있구나라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어려운 시기를 혼자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이겨내려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이야기가 전하는 힘을 다시 한번 느껴본다.

어려운 시기에 소설을 읽는 것은 그 시기를 이해하는 방식이자 그 시기를 끈기 있게 버텨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p.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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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기 위해 쓴다 - 분노는 유쾌하게 글은 치밀하게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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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형 글쓰기를 강조하는 저널리스트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35년간 기고했던

칼럼을 이 책 한 권에 모았다. 6가지 주제로 나누어 그녀가 생생하게 경험했던

삶의 현장의 모습을 가감 없이 날카롭게 엮었다.

그녀가 쓴 글은 소외된 자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섭고 예리하다.

또 한편으로는 읽을수록 빠져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몸소 경험하고 그 안에서 저널리스로서

날카로운 시선으로 부조리와 부당함을 고발한다.

힘이 있는 글이란 이런 글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현장에서의 글쓰기는 공간적 제한이 없다.

노동, 빈곤, 페미니즘, 복지, 계층, 양극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해 있는 문제를 실질적으로 파고든다.

그녀는 자신의 암 진단 경험을 공유하며 긍정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공생 관계를

이야기하고, 1990년대 후반 빈곤을 주제로 실제 노동시장의 생태를 취재하며

가난하기에 돈이 더 많이 필요하고 그래서 더 일해야 하는 슬픈 빈곤의 현실을 낱낱이

파헤쳤다.

물론 고달픈 현실에 대해서만 이야기한 건 아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일이 적절한 태도인지,

2010년대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던 마음챙김 유행에 대해서도 비판 어린 시선을 제기한다.

그녀는 사회의 밑바닥을 지탱해 주는 이들의 부조리한 삶에 분노하고

지금의 사회적 위치가 영원하지 않으며 누구도 경제적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며 자신의 말과 행동을 끊임없이 되돌아보려 노력한다.

분명 오래전 그녀가 쓴 글이지만 현재에도 묘하게 닮은 부분을 찾아볼 수 있다.

급격하게 벌어진 경제적 양극화나 인종 차별과 갈등 등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은

이미 과거부터 이어져 온 것들이다. 이런 문제들이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씁쓸함을 느끼며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다시 한번 대입해 볼 수 있다.

'현실에 지지 않기 위해 쓰겠다'라는 그녀의 다짐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도화선이 된다.

가려진 진실을 세상에 드러낸 그녀의 글을 통해 글쓰기에 담긴 선한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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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풍 요리사의 서정
박상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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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김밥 집 아들 이원식이 전설의 요리사 조반니 펠리치아노가 숨겨놓은

레시피를 찾기 위해 삼탈리아에 밀입국하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비문들로 이루어진 낯설지만 익숙한 대화문부터

가끔은 엉뚱한 행동에 웃음부터 나는 등장인물들까지

독특한 세계관이 소설에 집중하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고마워서 담배를 끊고 싶습니다."라는 말이 삼탈리아의 최상급 감사 표현이라고 하니

과연 내가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이원식은 이탈리아에서 독립한 이오니아해의 작은 섬나라인 삼탈리아에 가기 위해

그리스 갱의 밀입국 도우미 서비스를 받는다. 화물칸 짐칸에 억지로 구겨져서

널빤지 하나에 의존해 해류에 몸을 맡겨 도착한 삼탈리아.

그곳에서 자칭 천재 아티스트라 칭하는 엽색가 조반니를 찾으려는

주인공의 모험은 황당한 일의 연속이다.

그러면서 시(), 특히나 한국 시인의 시가 화폐가 되기도 하고

사회 전반적으로 주류 문화를 이끌고 있는 설정은 신선하다.

이원식은 시인이 되고 싶어 했다. 그의 시를 읽은 교수는 오히려 원식의 요리 재능을

칭찬하며 단호하게 "요리를 하라"라고 말한다.

좌절감과 패배감을 경험한 그는 요리에서 시에 준하는 맛을 내기로 결심한다.

그는 '시 같은 요리를!' 외치며 궁극의 레시피를 찾아 삼탈리아로 떠나게 된다.

작가는 꾸준히 남아 있는 그 무언가를 빈티지라고 표현했다.

그것이 원식이 바라는 궁극의 레시피이자 시였다.

내 감성으로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세계관과 유머 코드가 곳곳에 펼쳐져 있지만

낡고 촌스럽더라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쌓인 멋스러운 복고풍의 서정은

각자의 삶에서 자신만의 예술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우스꽝스럽고 이해하기 힘든 상황들이 계속되지만

작가는 이를 통해 코로나로 우울한 시대에 허무한 지적 유희를 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복잡한 생각 없이 읽기의 재미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난 한국 시집을 좋아하오. 싸구려 해적판 번역본으로 읽어도 좋은 맛을 내는 시들이지. 특히 빈티지 시집들은 스코틀랜드 친구들이 만든 누리끼리한 술만큼이나 훌륭하오. 그렇고말고. 하지만 원문으로 읽는다면 더 좋을 것 같아 꽤 비싼 한국어 패치를 머리에 심었다오. 요즘 여기서 한국 시는 유행을 탔거든!

p.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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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의 기억 1
윤이나 지음 / 팩토리나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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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기억을 들여다보고 삭제하거나 이식할 수 있는 기술을 소재로

살인자를 추적해 나가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주인공 한정우는 천재 뇌과학자로 사람의 기억을 이식하거나 삭제할 수 있는

기술로 논문을 발표하며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가 최고의 자리에 오른

바로 그날, 한정우는 괴한이 휘두른 둔기에 머리를 맞고 의식을 잃어버린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아내는 살해되었고 목격자인 어린 딸은 말을 잃은 상태였다.

한정우는 자신이 개발한 기술로 어린 딸의 끔찍한 기억을 지우고

직접 살인범을 잡기로 결심한다. 죽은 아내를 친누나처럼 여겼던 경찰 인욱과 함께

용의자를 추적하고 정우는 용의자의 기억을 자신의 기억으로 이식한다.

이들은 기억을 단서로 살인범을 추적하면서 아내 말고도 희생자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지운 자신의 기억 파일을 찾으면서

아내가 죽은 날의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자신의 기억을 지운다.

대부분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그들은 그 기억을 지우고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소설 속 기억 삭제 이식술이 현실에서도 필요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져 본다. 소설은 어느 순간 범인을 드러낸다.

그리고 주인공이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을 속도감 있게 전개한다.

범인이 완전히 드러나기 전까지 나는 다른 인물이 범인일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범인은 예상치 못한 인물이었다. 존재감조차 없던 인물이

사실은 연쇄 살인범이라는 설정이 꽤 흥미로웠고 평범하게 마주하는 사람에게

무서운 비밀이 있을 것이라는 공포감이 신선했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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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 내 마음대로 고립되고 연결되고 싶은 실내형 인간의 세계
하현 지음 / 비에이블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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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일상이 내 일상과 이토록 비슷할 줄은 몰랐다.

공감 가는 제목의 책을 펼쳐 든 순간 내 마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작가의 글을 읽으며 알 수 없는 기분에 빠져든다.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한 속마음을 전부 꺼내 놓은 것만 같다.

타인의 평범한 삶에서 내 삶의 작은 조각들을 마주하는 이 순간이 참 좋았다.

나만큼이나 실내형 인간을 자처하는 작가의 이야기는

일상 속에서 특별한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 재미를 깨닫게 해 준다.

너무 평범해서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 없던 시간 속에서도

삶을 자극할만한 무언가를 찾아내고 그로 인해 살아가는 의미를 조금이라도

발견할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 역시 취소된 약속에 서운함보다는 안도감을 느낄 때가 있다.

그 홀가분한 기분을 이해하고 함께 느끼는 이가 있다는 건 위로가 된다.

작가는 조금 더 안전한 삶을 위해 가상의 인물을 만들고

자신을 위해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호텔방에서 '순금 한 돈어치의 고요'를 즐기고

이전 같지 않은 몸에 두려움을 느끼며 운동을 시작했으며

원치 않은 대화를 피하고자 조용한 미용실을 찾아다니고

어른이 되면서 삶에는 체면 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나는 그 솔직함이 참 좋았다. 세상의 눈의 의식하며 감춰야만 했던 내 일상이

조금은 특별하게 느껴졌다. 공감 가는 글에서 위로를 받고 평범한 삶이지만

열심히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은

무채색이었던 내 삶에 조금씩 다채로운 색이 스며들기를 기대해 본다.

나는 언제까지 건강한 몸으로 살 수 있을까? 아마도 평생 누군가와 경제 공동체를 이루지 못할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내가 아플 때 내 삶은 어떻게 되는 걸까? 무서운 병에 걸린 미래의 나를 상상하는 일은 쉬웠지만 어떤 장기도 고장 나지 않은 건강하고 튼튼한 할머니가 된 내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p. 71

나이를 먹으면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던 일들이 아직도 큰일 같고 별일 같을 때면 왠지 억울한 마음이 든다. 이번에도 보기 좋게 삶에 속은 것 같아서.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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