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합
다지마 도시유키 지음, 김영주 옮김 / 모모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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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 동갑내기 두 소년과 한 소녀의 순수한 우정과 사랑,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시대 두 여성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순수 문학과 미스터리 장르가 잘 어우러진 소설이다.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적 편견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순수한 아이들의 이야기와 비정한 어른들의 이야기가 절묘하게 대립하면서

소설을 읽는 재미를 한층 배가시킨다.

소설이 끝나고 이어진 옮긴이의 말에서 번역가는 작업용 원서에 '속을 확률 100%'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새겨진 붉은색 띠지가 둘러 있었다고 말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50%만 속았다. '모든 것이 복선이며 단서'라는 띠지 문구에 때문에

글자 하나하나 엄청 집중하며 읽었기 때문이다.

미스터리 소설을 이토록 정독한 적이 있었을까.

그럼에도 완벽하게 트릭을 잡아내지 못한 건 아쉽다.

몇 군데 걸리는 문장이 있었고, 통상적인 편견을 지우고 나니 조금씩 틈이 보였다.

소설이 끝났을 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라는 가정이 들어맞아서 시원했고

놓친 복선들은 아쉬웠다. 좀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하는 마음에 애꿎은 표지만 펼쳐든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그제야 작가가 숨겨놓은 트릭이 보인다.

처음 주고받는 대화, 인물들의 설정 등 보이지 않던 것들이 자세히 보이기 시작한다.

10여 년 만에 국내에 재출간된 이 소설은 평범한 청춘 소설로 보이는 이야기에

애달픈 어른들의 사정이 곁들어지면서 재미와 문학성을 동시에 만족시켜준다.

이 소설만큼은 다시 한번 읽어보려 한다.

복선을 알고 본다면 소설이 어떻게 다르게 느껴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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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프루프 - 당신의 미래를 보장해줄 9가지 법칙
케빈 루스 지음, 김미정 옮김 / 쌤앤파커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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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내가 하는 일이 미래에 사라질 직업 상위권에 오른 걸 본 적이 있다.

그땐 '에이 설마..' 하며 지나쳤지만 기술이 발달하는 속도를 보니 조금씩 두려워진다.

작가이자 기술 칼럼리스트인 저자는 누구도 보장해 주지 않은 미래에 살아남기 위해

각자가 할 수 있는 선택지를 건넨다. 특히 '고학력, 정규직, 지식노동자'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사람들에게 미래형 인재가 갖추어야 할 필수 조건을 알려준다.

인공지능의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점차 기계가 인간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기술 발전을 환영하지만 생존의 위협이 된다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실생활에서 점차 사람의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고 느꼈던 경험이 있다.

은행 대면 업무가 필요하여 영업장을 검색하는 중에 예전보다 그 수가 크게 줄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무인 ATM이 설치된 곳은 많지만 필요한 업무를 보기 위해서는

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일상의 작은 부분이지만 가까운 미래에 직업의 판도가 크게

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두렵게 느껴진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미래가 보장된 "퓨처프루프"형 인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대응력과 희소성을 갖추고

기계 시대에 인간다움을 갖추고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다소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저자는 전문적인 설명을 통해 각자가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고 더 많이 웃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앞으로 10년, 아니 단 5년 안에 내 자리가 사라진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지금의 일을 가능한 한 오래 하고 싶다는 바람이 점점 간절해진다.

그러므로 누구도 보장할 수 없는 미래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책에 실린 퓨처프루프형 인재가 되는

9가지 법칙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팬데믹은 기업들이 자동화하는 데 유례없이 큰 발전을 꾀하면서도 반발을 사지 않을 방패막이 되었다.

p. 18

사실 화이트칼라 노동자는 블루칼라 노동자보다 자동화로 인해 일자리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클 수도 있다.

p. 56

미래에도 끄떡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일자리를 지키는 일을 넘어 우리의 정신과 인간성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는 일이다.

p.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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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할 여자들 -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과학기술사 뒤집어 보기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김하현 옮김 / 부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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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과 차별이 난무했던 과학기술사를 돌아보고 미래를 구할 혁신과 창의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기술 발전을 가로막은 젠더 의식에 대해 보여주며

현재는 물론 미래에 예상되는 위기까지 골고루 다루며 여성성과 과학기술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깨고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는 캐리어가 탄생한 비화, 100년 전 이미 개발된 전기차, 여성 속옷 전문 재봉사들이

아폴로 우주복을 만들게 된 이유 등 발명과 기술 발전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뿐만 아니라,

기술 발달에서 젠더의 개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저자에 따르면 무거운 여행 가방에 바퀴가 달리기까지 5000년이 걸렸다고 한다.

'진정한 남자는 가방을 직접 든다'라던가 '무거운 가방은 남자가 든다'라는 유치한 생각 때문에

단순하면서도 실용적인 발명이 이루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오랜 시간 남성성에 대한 자의적인 개념이 고집스럽게 이어지면서 기술은 제자리를 맴돌았다.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남성 위주의 기술과 발명의 역사에서 점차 여성이 차지하는

자리가 넓어지면서 또 다른 가능성과 잠재력이 열릴 준비가 되어 있다.

저자는 그동안 지속된 남성을 위한 과학 기술이 탄소 사회라면 이제 여성성과 남성성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 혁신에 집중할 때라 말한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점차 고령화되는 지구에서 돌봄 노동의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날 것이다.

이를 위해 로봇 산업과 AI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고 있다. 여성의 주된 업무라 여겨졌던

돌봄 노동에 기술이 더해지면서 많은 나라들이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현실이다.

남성 위주의 과학계에서 그동안 멸시했던 여성적인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기술 분야의 중심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한 순간이다.

젠더에서 비롯된 잘못된 편견과 차별을 돌아보고 반성하여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앞으로 닥쳐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창의적인 해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우리가 여성을, 여성으로 상징하고자 한 것을 더 이상 무시하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과 경제, 이 세상에 대한 우리의 서사 전체가 달라진다. 

우리가 밟고 선 땅이 움직이고, 새로운 방식이 등장한다.

p. 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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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의 밤
블레이크 크라우치 지음, 이은주 옮김 / 푸른숲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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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의 한 대학에서 양자물리학을 가르치는 제이슨은 아내 다니엘라와 아들 찰리와 함께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부부는 간혹 생각한다. 결혼이 아니라 각자의 커리어를 계속

이어가며 성공한 인생을. 그러던 어느 날, 제이슨은 낯설지만 익숙한 남자에게 납치를 당한다.

그는 바로 제이슨 자신이었다.


다중우주를 소재로 한 SF 스릴러 소설로 또 다른 세계의 '나'가 이 세계에서 '나'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으려 나타난다. 다른 세계의 '나'는 하나가 아니다. 우리가 사는 공간이

하나라고 규정할 수 없기에 존재하는 만큼 수많은 '나'가 등장한다.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인생을 빼앗길 위기에 처해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다른 공간에 존재하면서 각각이 경험하게 되는 상황은 달라지게 된다. 하지만 내가 나라는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 공간에 두 명의 내가 존재할 수 없으니 나는 나를 죽일 수 있을까.

한 번쯤 다른 삶을 사는 나를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삶의 어느 순간 내 선택이 달라졌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그 삶을 사는 나는 행복할까 등 일어나지 않은 삶을

가정하며 힘겨운 현실을 잊고자 할 때가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사랑을 선택했다.

수많은 공간을 지나가며 아내와 아들이 있는 삶으로 돌아온다. 아내가 없는 삶도 아들이 없는 삶도

그의 선택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하는 인생을 선택했다.

저자는 SF와 스릴러를 절묘하게 조합하여 철학적이면서도 강렬한 소설을 보여줬다.

빠르게 전개되는 추격전은 스릴러 장르의 흥미를 배가시켰다.

양자 중첩과 다중우주라는 다소 어려운 주제와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주제가

이토록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놀라운 설정과 긴박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가 매력적인 소설이다.


또 다른 당신과 내가 비슷하거나 다르게 살아가는 연못이 백만 개 있다 한들 바로 여기, 지금 이 순간보다 좋은 건 없어.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해.

p.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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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사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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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표지와 방대한 분량은 소설을 읽기 전부터 분위기를 압도한다.

빛나는 청춘의 시간을 함께 했던 오랜 친구의 고백과 그 속에 숨겨진 어긋난 사랑과 우정을 

다룬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 빠져들 시간이다. 

작가가 이 소설을 20년 전에 썼다는 걸 감안하면 상당히 시대를 앞서 나간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시절 미식축구부의 실력 있는 쿼터백이었던 데쓰로는 동창회 날 팀의 여성 매니저였던 미쓰키와

오랜만에 재회한다. 10년 만에 만난 그녀는 데쓰로에게 자신의 신체는 여자지만 마음은 남성인

성정체성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거기에 더해 이미 결혼을 해서 아이까지

있지만 자신의 인생을 살고 싶어 바에서 일하고 있고 함께 일하던 호스티스의 스토커를 살해했다고

털어놓는다. 친구로서 미쓰키를 도우려 하지만 살인사건을 쫓는 기자 하야타와 대립하게 되고

미쓰키는 그들 앞에서 갑자기 모습을 감춘다. 미쓰키를 찾던 데쓰로는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성별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번 소설은 젠더 문제에 대해

깊은 고민을 안겨준다. 작가는 오랜 시간 우리 사회에 깊이 박혀 있던 남자와 여자의 사회적

기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인간 본질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마련해 준다.

특히 성의 기준이 엄격한 스포츠를 소재로 하여 외면과 내면의 차이에 대해 잘못된 편견을 인정하고

깨뜨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작가는 본질적으로 사랑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으면서 젠더라는

다소 민감하고 어려운 문제를 추리 소설 형식으로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차별과 이해를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소설이다. 압도적인 스케일과

심오한 주제를 공감할 수 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히가시노 게이고의 필력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뫼비우스 띠는 앞이라고 생각하고 나아가면 어느새 뒤가 나와요. 즉, 양쪽은 연결되어 있죠.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이 뫼비우스 띠 위에 있어요. 완전한 남자도, 완전한 여자도 없어요.

p.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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