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약시대 - 과학으로 읽는 펜타닐의 탄생과 마약의 미래
백승만 지음 / 히포크라테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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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청정국이라 일컬어지던 우리나라에서 어느 날부터 마약 관련 뉴스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특히 작년 핼러윈 데이를 기점으로 유독 심해졌으며 최근에는 좋아하는 배우와 가수의 이름이 뉴스에 등장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미국 필라델피아 거리의 사진이었다. 처음에는 좀비 영화를 촬영하는 모습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진에 등장한 이들은 보통의 사람들이었고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에 중독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설명글이 이어졌다. 이제 마약은 영화에서처럼 어둠의 세계에서만 유통되는 것이 아니다. 남녀노소 평범한 사람이 타깃이 되고 있다. 이 책에서는 펜타닐의 진실과 마약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사실 펜타닐은 사람을 구하기 위한 약으로 발명되었다. 수십 년간 진통제이자 마취제로서 역할을 하던 펜타닐은 제약회사의 탐욕과 제도적 허점 등으로 인해 수많은 중독자를 양산하게 된다. 경미한 통증 환자에게도 모르핀의 2배 효과를 가진 약물을 무분별하게 처방하였고 죽음 아니면 중독자를 남기게 되었다. 이후 약물에 대한 규제가 시행되면서 패치형 제제를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처방받게 되었지만 이미 중독된 사람들은 급기야 패치를 씹어 먹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결국 펜타닐로 인한 오남용 사례는 점점 증가하게 되고 미국을 넘어 우리나라까지 영향권 안에 들어갔다. 


저자는 풍부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마약과 인간의 치열한 싸움의 역사를 보여준다. 1800년대 초보 부부에게 희망이었던 '윈슬로 부인의 진정 시럽'을 시작으로 마약류 화합물의 화학 구조, 펜타닐의 발명, 유럽을 뒤흔든 코카인, 2022년 우리나라에 등장한 보디 패커 등의 객관적 사실을 설명하고 마약이라는 늪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 등을 이야기한다. 


​인류가 마약류에 빠지게 되는 건 1차적으로 신체적 고통을 잊기 위해서일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쾌락을 목적으로 마약에 빠진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극심한 통증 질환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삶의 질을 현저하게 떨어뜨린다. 이들을 위해 개발된 진통제로서 펜타닐은 수십 년이 지난 현재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이미 우리 몸에는 자체적으로 통증을 이겨낼 수 있는 물질을 분비한다. 엔도르핀이라고 하는 물질인데, 모르핀과 같은 진통 효과를 가지고 있으며 신체를 단련하면 생성된다. 저자는 약물에 중독되지 않고 엔도르핀의 수치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한다. 우리가 쉽게 할 수 있는 건 적당한 햇빛 아래서 산책을 하는 것이다. 운동이 부담된다면 사람들과 함께 웃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대마약 시대에 꼭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마약청정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마약류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아는 것이 중요하다. 마약의 쓰임을 사람을 살리고 치료하는 용도로서 돌리기 위해 개인적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p. 195
지금 마약류 중독이 궁금한 분이라면 일단 밖으로 나가서 뛰길 권한다. 그리고 땀이 흥건히 차오를 때 중국집으로 들어가 짬뽕 한 그릇을 시키면 된다. 고춧가루를 더 넣어도 된다. 얼얼한 국물을 가득 들이켠 후 사람들과 수다 떨며 웃는 그 순간이 바로 마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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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50가지 거짓말 - 배신과 왜곡이 야기한 우리가 모르는 진짜 세계사
나타샤 티드 지음, 박선령 옮김 / 타인의사유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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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따라서 객관적이어야 할 역사는 편파적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거짓'을 주제로 세계사의 이모저모를 보여준다. 고대 세계부터 시작하여 중세와 근대를 거쳐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세계사를 바꾼 거짓말의 나비효과를 이야기한다.


​세계사의 수많은 사건 중 흥미를 끄는 몇 가지가 있다. 먼저 중세 시대 귀족 출신의 여자 해적 선장이 있었다는데... 그녀는 프랑스의 전형적인 귀족인 잔드 클리송이다. 사랑하는 남편이 처형되자 피의 복수를 시작했고 그녀를 처리하기 위해 프랑스 군대까지 파견될 정도였다. 흥미롭게도 그녀의 복수는 새로운 사랑으로 인해 멈출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이와 같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사건은 토끼를 낳은 여인에 대한 이야기다. 상식적으로 인간이 어떻게 토끼를 낳을 수 있을까.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믿는 사람들이 존재했던 걸까. 놀라운 이야기는 1700년대 영국 신문에 보도되었다. 인간이 토끼를 낳는다면 이건 의학적으로도 엄청난 사건일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사기극이었으며 의료계 역시 조롱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 밖에도 노스트라다무스의 유언, 마리 앙투아네트를 죽음으로 몰고 간 다이아몬드 목걸이, 가짜 뉴스를 즐겨 쓴 추리소설의 거장 에드가 앨런 포,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인 체르노빌 은폐 사건까지 참혹한 거짓말의 역사를 담고 있다. 이런 거짓말은 개인의 이익뿐만 아니라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도 행해졌다. 진실을 왜곡하고 은폐하려는 수많은 시도가 켜켜이 쌓여 현재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슬프게도 이러한 거짓말은 현재진행형이다. 일본은 식민지 시대의 만행을 부정하며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숨기기에 급급하다. 중국은 우리의 문화를 자신들의 것이라 우기며 떼를 쓰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갑작스럽게 홍범도 장군을 두고 벌어지는 트집 잡기는 민망할 지경이다. 먼 훗날 이 책의 후속편이 나왔을 때 우리나라의 역사가 많을 부분을 차지하게 될까 두렵다. 


흥미진진한 진짜 세계사를 읽으며 역사에서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부끄러운 역사일지라도 진실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곡되고 위조된 역사들을 바로 보고 현재의 삶에 끼친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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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인간 선언 - 기후위기를 넘는 ‘새로운 우리’의 발명
김한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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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은 여름처럼 더웠고 겨울처럼 추웠다. 한창 늦가을의 정취에 물씬 취해야 할 때 역대급 기후 변화를 경험하고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할 수 있었다. 환경운동가인 저자는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기후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공생 방법을 고민한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위기의 실상을 보여주고 이를 초래한 인간중심적인 가치와 관습들을 비판하며 우리의 책임과 변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솔직히 최근 들어 기후위기에 관심이 생긴 것이지 내 생활과 크게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들쑥날쑥한 기상과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여러 기후 변화를 뉴스로 접하며 생각보다 우리의 현실에 훨씬 가깝게 다가오고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 모든 위기는 인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분별한 성장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가 급증하고 이로 인해 대기와 해양 등 각종 오염이 심해졌다. 인류가 초래한 문제는 이제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숙제를 떠안겼다.


​이에 저자는 탈인간중심주의를 선언하며 책임질 줄 아는 인간으로의 전환을 선포한다. 그러면서 신공항 건설을 중지하고 포획 금지 구역을 설정하는 등 인간이 실제로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변화를 이야기하고 공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한 사람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저자의 주장에 따라 각자가 할 수 있는 변화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함으로써 전 인류가 하나가 되어 기후위기를 타개해야 한다. 


​저자가 제안한 여러 방향 전환 중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건 역시나 나를 바꾸는 것이다. 완전한 비거니즘이 되기는 힘들겠지만 육식 위주의 식습관을 서서히 바꾸고 기후정치 시민행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 변화는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후위기라는 커다란 숙제 앞에서 나로부터 시작하여 서서히 변화를 범위를 넓혀 함께 연대하고 공생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는 책이다.

P. 9 
탈인간은 먼저 탈인간중심주의의 준말로, 말 그대로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그것이 몸부림인 이유는,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그 벗어남을 완벽히 성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세의 비극을 탄생시킨 인간에 대한 반성과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는 목표로 삼을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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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루스
예브게니 보돌라스킨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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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세니는 중세 러시아의 시골 마을에서 의술로 사람들을 치료해 주지만 사랑하는 연인과 아이의 죽음은 막지 못했다. 그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아르세니는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우스틴, 암브로시우스, 라우루스 등의 이름으로 여러 나라와 도시를 떠돌며 속죄와 박애의 길을 떠난다. 



이 소설은 페스트가 창궐했던 중세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사람의 일대기를 보여준다. 의사로서 수많은 환자를 치유하고 순례자로서 그리고 수도자로서 삶의 신성함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삶의 신비와 순수한 선에 대해 이야기한다. 종교적 색채가 짙게 느껴지며 한 한 번의 완독으로는 소설의 의미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인상 깊었던 건 한 사람이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삶의 다양한 순간들이었다.


아르세니는 뛰어난 치유 능력으로 명예를 얻게 되지만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으로 인해 상실의 고통을 경험한다. 때로는 아름답지만 때로는 처절한 한 남자의 인생을 통해 각자의 인생을 투영하며 삶과 죽음, 존재의 가치 등에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신론자이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 아르세니를 신에 가까운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가 보여주는 모든 능력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초월적인 존재를 투영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삶은 신성하다. 구원을 찾아 떠나는 한 남자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신앙과 사랑의 힘을 느끼고 기꺼이 운명 앞에 당당해질 수 있다. 삶은 늘 위기의 연속이다. 그 순간을 어떻게 이겨내고 회복할 수 있을지 답을 찾는 과정은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 이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 미숙한 지금의 삶에서는 찾지 못했던 답을 그때는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p. 495
라우루스, 조약돌 하나하나에는 무언가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이것은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을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조약돌을 한꺼번에 쥘 수 있는 사람을 만나려는 것입니다. 바로 그가 조약돌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라우루스, 형제님의 삶도 그러하답니다. 삶의 단일성을 깨고 자신의 이름을 부정하고 자기 자신을 부정했습니다. 하지만 모자이크 같은 형제님의 삶에는 삶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분께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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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은유가 찾아왔다 - 교유서가 소설
박이강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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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을 무엇일까. 나는 신뢰라고 생각한다. 이 신뢰는 타인에 대한 믿음에 기반하여 형성되는 데 우리는 믿음으로 포장된 관계 속에서 표현할 수 없는 안정감을 느끼곤 한다. 박이강의 소설은 바로 이 믿음에 대한 단상을 보여준다. 믿음을 주제로 한 9편의 단편을 읽으며 잊고 있던, 아니 잊고 싶은 경험들을 다시 떠올려 본다.


​단편을 즐겨 읽지 않지만 박이강의 단편에는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마치 내 이야기를, 내가 목격한 타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 같았기에 몰두할 수 있었다. 오피스를 배경으로 한 각각의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 낯설지 않았다. 견디는 삶에 익숙해져 한순간의 충동에도 희열을 느끼던 시간들이 문득 생각난다.


​카드 명세서와 퇴사 결심을 반복하는 10년 차 직장인의 미소, 상사에게는 비굴한 선의를 보이지만 스스로에게만은 비겁하지 않으려 하는 세영, 전 직장 상사에 대한 상처로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계약직 지수, 불안한 미래에 휴가지에서 히스테리를 부리는 희수 등 일과 삶의 굴레에서 방황하는 이들의 모습이 측은하면서도 공감이 간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올 거라는 헛된 믿음을 맹목적으로 믿으며 현재를 견뎌낸다. 소설 속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은 그런 나의 헌신을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것만 같다. <어느 날 은유가 찾아왔다>는 살기 위해 오늘 하루를 무사히 견뎌낸 모든 이들에게 다정한 위로를 건네는 소설이다.

​p. 13-14
내 마음은 변화를 갈구하는 만큼 변화에 저항했다. 부장을 참을 수 없어 하면서도 10년째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고, 늘 자책하면서도 여전히 습관처럼 공과금 연체료를 내며. 하물며 전 남자친구와는 그만 만날 결심을 하면서 몇 년을 더 만나지 않았던가. 어쩌면 변화에 대한 저항이야말로 지금의 삶을 지탱하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p. 233
오늘 하루가 지났다.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오늘이 어제와 비슷했듯이 내일도 오늘과 비슷하겠지. 따지고 보면 다 거기서 거기인 날들일 뿐이다. 무탈해 보인다고 무탈한 건 아님을 모르지 않지만, 나는 그렇게 보이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시간을 통과하고 있을 뿐이다. 삶이 무탈하기를 바라는 건 누군가의 순정한 얼굴만을 보길 기대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임을 알고 있으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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