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우루스
예브게니 보돌라스킨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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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세니는 중세 러시아의 시골 마을에서 의술로 사람들을 치료해 주지만 사랑하는 연인과 아이의 죽음은 막지 못했다. 그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아르세니는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우스틴, 암브로시우스, 라우루스 등의 이름으로 여러 나라와 도시를 떠돌며 속죄와 박애의 길을 떠난다. 



이 소설은 페스트가 창궐했던 중세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사람의 일대기를 보여준다. 의사로서 수많은 환자를 치유하고 순례자로서 그리고 수도자로서 삶의 신성함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삶의 신비와 순수한 선에 대해 이야기한다. 종교적 색채가 짙게 느껴지며 한 한 번의 완독으로는 소설의 의미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인상 깊었던 건 한 사람이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삶의 다양한 순간들이었다.


아르세니는 뛰어난 치유 능력으로 명예를 얻게 되지만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으로 인해 상실의 고통을 경험한다. 때로는 아름답지만 때로는 처절한 한 남자의 인생을 통해 각자의 인생을 투영하며 삶과 죽음, 존재의 가치 등에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신론자이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 아르세니를 신에 가까운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가 보여주는 모든 능력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초월적인 존재를 투영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삶은 신성하다. 구원을 찾아 떠나는 한 남자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신앙과 사랑의 힘을 느끼고 기꺼이 운명 앞에 당당해질 수 있다. 삶은 늘 위기의 연속이다. 그 순간을 어떻게 이겨내고 회복할 수 있을지 답을 찾는 과정은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 이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 미숙한 지금의 삶에서는 찾지 못했던 답을 그때는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p. 495
라우루스, 조약돌 하나하나에는 무언가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이것은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을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조약돌을 한꺼번에 쥘 수 있는 사람을 만나려는 것입니다. 바로 그가 조약돌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라우루스, 형제님의 삶도 그러하답니다. 삶의 단일성을 깨고 자신의 이름을 부정하고 자기 자신을 부정했습니다. 하지만 모자이크 같은 형제님의 삶에는 삶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분께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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