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갗 아래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에 관한 에세이
토머스 린치 외 지음, 김소정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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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토록 우리 몸의 장기 하나하나에 대해 진심 어린 이야기를 한 책은 보지 못했다.

피부나 피에 대해서는 어쩌다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다 하겠지만

살면서 갑상샘이든, 담낭이든, 맹장이든 이 기관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이 책은 나를 구성하는 단 하나의 장기에 대해 아름다운 헌사를 보내고 있다.

영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열다섯 명의 작가들은 몸속 기관을 하나씩 선택해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더불어 사회, 문화, 역사적 지식들을 적절하게 소개하며장기가 가진 신비로움과 의미를 진솔하게 전해준다.

내 몸에 흐르는 피에 대해, 내 뱃속을 둘러싸고 있는 창자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내 몸속의 구성요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고 믿는다.

성인의 12~20 퍼센트가 HIV를 보유하고 있는 잠비아 출신의 작가는

자신의 피 속에 흐를지도 모르는 수치심 가득한 바이러스 때문에 두려움에 떨었다.

천식으로 고생하는 오백만 영국인 중 한 사람인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숨을 쉬는 행위에 대해 극도의 불안감을 안고 살아왔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 몸속 장기를 하나하나 짚어본다.

그리고 내게로 와서 그 쓸모를 다하고 있는 소중한 장기를 의식하며 가만히 만져본다.

몸속 장기를 주제로 한 독특한 이 책을 읽으면서 쓸모없다 여겼던 맹장이

우리 면역계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고,

병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있는 장기를 사전에 제거하는 개인의 선택에 대해 깊은 고민을 안게 되었다.

내 몸속 고유한 기관들이 각자의 쓰임을 다하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나라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이 놀라운 현상을 머릿속에 담아본다.

나를 있게 해주는 이들의 역할이 결코 헛되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새로운 책임감이 생겼다.

각자가 가진 장기들이 담고 있는 소중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그리고 그동안 너무 방치했고 함부로 대했던 내 장기들이 건강하게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최선의 방법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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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회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6
이케이도 준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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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 압박으로 회의 내내 긴장으로 가득한 소닉의 자회사 '도쿄겐덴' 영업부 회의실.

그 곳의 살벌한 풍경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직장인의 현실을 가감 없이 반영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실적 위주로 인해 품질은 등한시하는 잘못된 판단,

주주 이익을 위해 강요되는 직원들의 희생, 퇴직과 창업, 사내 정치 등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담고 있다.

"회사는 어디나 똑같아.", "그만두면 대신할 사람이 나와요. 조직은 그런 거 아닙니까."

"진심으로 네가 하는 일이 옳다고 생각해?", "모르고 있을 권리 말이야. 모르는 게 약이거든."

등 뼈를 때리는 대사는 현실을 가만히 곱씹어 보게 만들다.

이렇게 치열하고 전쟁터 같은 직장 생활을 경험하진 못했지만

회사라는 테두리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인의 삶을 다루는 이 책에서는 권선징악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부당하지만 참고 견뎌야만 하는 우리네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때로는 생존을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현실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작은 인간들의 모습을 보며

직장인에게 삶이란, 정의란 무엇인지 고민할 여지를 남겨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과거 직장 생활에서 힘들었던 경험이 겹쳐지면서 씁쓸한 기억이 떠올랐지만

일이란 무엇인지, 살아남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직장인들의 희로애락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는 조직 생활 중에 만날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누가 옳고 그른지 명확한 판단을 내리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고 그 상황에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한 이들을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씁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작가의 이야기를 마주하면서

현명한 해답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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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은 왜 가난한가 - 불평등에 분노하는 밀레니얼, 사회주의에 열광하다
헬렌 레이저 지음, 강은지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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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회주의'는 무서운 것이라 생각했다.

언제부터인지, 누구에게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단어를 말하는 것부터 꽤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현지 서구에서는 사회주의에 열광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자유주의를 지지하던 나라의 젊은이들은 왜 사회주의를 지지할까.

나는 지금까지 사회주의를 오해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아주 작은 단편을 전체라 여기며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밀레니얼 세대로서 서구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사회주의에 대해 제대로 이해해 보고 싶어졌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선택한 건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인 헬렌 레이저는 거친 표현과 소위 힙한 말투로 사회주의란 무엇인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준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이 유력하다고 믿고 있었기에 전 세계적으로 파장이 크게 일어났다. 트럼프를 선택한 미국인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엄청난 반전 드라마를 찍을 수 있었을까.

저자는 충격적인 역사의 순간과 당시 미국 내 상황을 설명하면서 사회주의란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가난과 정치, 노동자와 부자로 극명하게 나누어진 상황, 청년 일자리 부족 문제,

남성보다 적은 여성들의 임금 문제 등 전 세계적으로 우리가 처한 현실을 가감 없이 이야기한다.

불평등과 가난에 지친 이들이 그래도 살아가고자 사회주의에 열광하고 있다는 현실이 슬프기만 하다.

깊은 빡침으로 얻은 깨달음(woke)라는 말처럼 내가 처한 현실을 제대로 알게 되면서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되었다.

역사상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첫 번째 세대라는 밀레니얼 세대.

부모 세대만 해도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면 통장 잔고도 늘어가고 집도 장만할 수 있었다.

그런 부모님을 바라보면서 나도 어른이 되면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면서 살아야겠구나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다짐은 점차 빛을 잃어가고 있다.

열심히 일을 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늘 제자리일 수밖에 없고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상위 몇%를

절대 이길 수 없다는 현실이 그저 막막하고 답답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살아갈 수밖에.

그저 내 잘못이 아니라 이 사회가 그렇게 생겨먹었다는 사실로 부당한 삶을 위로할 뿐이다.

"기성세대는 패배했다.

이제 여러분들, 다시 말해 밀레니얼 세대가 움직여야 한다. 내가 속한 기성세대에 대한 꾸밈없고 진심 어린 존경을 담아, 여러분과 나는 기성세대가 끝났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중략) 정치경제와 동시에 싸우지 않는 한 우리는 평등, 다양성, 포용 등 많은 이름이 부텅 있는 가치를 위한 문화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다.(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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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주든 말든 - 나는 본질을 본다
소노 아야코 지음, 오유리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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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나오면 신난다. 기다리던 글을 만날 수 있으니깐.

어두웠던 과거만큼이나 글에서 시크함을 느낄 수 있는 소노 아야코의 책.

세상이 마냥 핑크빛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전해주는 글을 통해

늘 그녀의 글을 기다려왔다. 이번 책은 정말 제목부터 마음에 든다. <알아주든 말든>.

이 책에서 그녀는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해 아등바등 대는 현실이지만

결코 헛되지 않은 시간이었음을 말한다.

남이 알아주든 말든 묵묵히 살아가는 내 삶에 조금은 자신감이 생긴다.

긍정적인 것보다는 실패나 단념 등 부정적인 상황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통해

그 속에 담긴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해준다.

시간이 흐르는 대로 살다 보면 행복의 기준이란 타인이 하는 평가가 아니라

스스로 느끼는 것이라는 본질을 사실을 종종 잊고 살아간다.

그래서 당연한 진리를 다시 깨닫게 해주는 그녀의 글이 기다려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를 잃지 않고 스스로 지켜낼 수 있는 힘을 주는 짧은 글에서 오히려 희망을 본다.

곁에 있는 이의 소중함을 모를 때, 사랑이 떠났을 때, 타인을 자신이 만든 기준으로 판단할 때 등

평범한 일상 속에서 놓치고 지나가는 사소한 감정과 한마디에서 삶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불안하고 흔들리는 현실에서 나 자신을 다시 다잡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행복은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당연한 인간관계란 없다

이 세상에 당연한 인간관계란 없다. 어떠한 관계라도 일방적으로 잘라내 버릴 수가 있다.

다시 말해서 누구나 기존 관계에서 간단히 떨려 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만약 좋은 처우를 받고 있다면, 어쩌다 예외적으로 내게 주어진 복이라 생각해야 된다.(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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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너를 생각해 아르테 미스터리 2
후지마루 지음, 김수지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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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녀다. 헤이세이 시대의 마지막 마녀다.

p.9

평범한 대학생 소녀 시즈쿠. 어느 날 갑자기 어릴 적 헤어졌던 친구 소타가 눈앞에 나타났다.

오래전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타난 소타는 마녀의 사명을 돕겠다며 시즈쿠에게 다가왔다.

그때부터 시즈쿠는 막무가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친구와 함께 대대로 물려받은 마도구를 사용하여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해준다.

두 사람의 활약을 지켜보면서 내내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시즈쿠는 마녀지만 그녀의 힘은 다른 사람을 도울 때만 사용할 수 있다.

이런 마녀라면 얼마든지 이 세상에 존재해도 괜찮지 않을까.

사람을 향한 따스한 마음을 담고 있는 두 사람의 활약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어쩌면 사람을 믿지 못하는 마녀와 기억을 잃은 소년의 만남 자체가 특별한 마법이 아닐까.

10년 전 갑자기 사라진 소년의 비밀과 정체가 밝혀지면서

소중한 사람들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새겨보게 된다.

철저히 혼자 고립되고자 했던 마음을 벽을 허물고 세상에 좀 더 가까워진 마지막 마녀 시즈쿠.

그녀가 진정한 행복을 찾고 한층 더 성숙해지는 과정이 내게는 힐링 그 자체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에 늘 고민하며 스스로 벽을 세우는 나에게도

진정한 관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누군가가 진심으로 내민 손을 기꺼이 잡을 수 있는 그 순간이 언젠가 올 거라 믿는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그렇게 손을 내어주고 싶다.

시즈쿠는 훌륭한 마녀가 될 거야. 다른 사람의 아픔을 알게 되는 만큼 많은 행복을 배달할 수 있단다. 할미한테는 보여. 시즈쿠가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모습이.

p.44~45

후회할지도 모르지. 그래도 좋아하는 마음은 억누를 수 없어.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바에야 할 수 있는 건 한 다음에 후회하고 싶어.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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