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매혹적인 아랍이라니 - 올드 사나에서 바그다드까지 18년 5개국 6570일의 사막 일기
손원호 지음 / 부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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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히잡이 떠오른다.

물보다 석유가 더 싸며 전쟁과 테러가 끊이지 않는 곳.

그리하여 결코 여행으로 갈 수 없는 곳이란 이미지가 강하다.

실제 가본 적이 없으니 미디어를 통해 접하게 되는 아랍은 무서운 곳이라 생각했다.

이 책은 저자가 18년 동안 5개 사막 나라에서 아랍인들과 함께 한 경험을 담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얼마나 아랍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저자가 아랍 5개국에서 경험한 일들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예멘 공항에서는 공항 직원의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던가,

문제가 생겼을 땐 담당자가 아닌 가장 높은 사람을 찾아야 한다던가,

이라크에서 근무할 당시 외출 때마다 경호원과 함께 해야 하며

어디에서든 테러가 일어나는 현장의 모습은 스펙터클한 한 편의 영화를 본 것만 같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함께 아랍의 역사와 문화를 전해준다.

비록 현대사는 폭탄과 피로 얼룩져 있지만 과거 문명의 발상지이며

에덴동산과 바벨탑이 있던 화려한 시절을 들려준다.

이 땅에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면 과거 번영도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해 본다.

우연한 기회는 한 사람의 인생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꿔놓았다.

그리고 그 사람이 전해준 다양한 이야기는 오랜 시간 내 안에 있던 편견을 깨뜨렸다.

아랍 국가가 전부 이슬람만 믿는 것은 아니며 이란은 아랍이 아니다.

보수적인 사우디는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면서 조금씩 변하고 있으며

삭막했던 사막 도시에는 현대식의 화려한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저자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니 아랍 세계가 색다르게 느껴졌다.

그가 만들어가는 아랍 세계의 큰 퍼즐이 언제쯤 완성될지 궁금하다.

언젠가 그가 만든 퍼즐의 즐거움을 직접 느껴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사람과의 관계가 기적을 만들어 내는 곳, 이곳이 바로 아랍 세계다.

p.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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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 ‘외곽주의자’ 검사가 바라본 진실 너머의 풍경들
정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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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차 검사지만 출세하고 싶지 않은 현직 검사가 전해주는 직업인으로서

검사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뉴스에 나오는 검사들을 보면 더 이상 사법권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떠들썩한 검사들은 전체 검사의 10% 정도이며 나머지 검사들은 '회사원'으로서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는 범죄 조직을 일망타진하고 거대한 비리 세력과 맞서 싸우는

환상 속의 검사가 아니라 야근도 많고 재판 도중에 울기도 하는 직업이 검사인 보통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의 인생 스토리를 읽으며 세상에는 정말 온갖 사람들이 다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판 도중 사라진 피고인이나, 본처랑도 살고 자기랑도 살게 해달라는 민원인이나,

사랑싸움에 부를 지른 커플 등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그동안 궁금했던 검사들의 보자기나, 일하는 엄마의 고충, 오래된 꿈까지 지극히 현실적인 일상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검사라 출세지향적이며 성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오해는 말끔히 사라졌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밥벌이를 하는

고단한 직장인의 비해가 잘 느껴진다. 그리고 형사 법정이야말로 그 어느 곳보다

인간 세상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기소보다는 불기소를 잘하는 검사가 되었다. 그리고 민원인들과 부딪히면서

자신도 위로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불기소를 잘하는 검사라는 평가가

검사라는 위치에서는 불리하지만 힘없고 외로운 보통 사람들에게는 삶에 대한 희망의

기회를 줄 것이다.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진실에 다가가려 고군분투하는 보통의 직업인으로서 검사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나의 민원인들은 끊임없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제기하며 나와 함께했다. 어떤 날은 화를 내고 어떤 날은 그들을 달래면서 실은 나도 위로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세상의 모든 요구에 답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답이 아니라 다만 관계로서만 존재하는 요구도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 우리는 서로 답답하고 복장 터지는 관계였지만 어쩌면 그 시절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유일한 벗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15년쯤 지난 어느 날 해보는 것이다.

p.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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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 - 손으로 만든 표정의 말들 딴딴 시리즈 1
이미화 지음 / 인디고(글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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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우연히 본 수어가 어른이 되어 취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관심은 어느새 농어인들의 삶과 문화까지 넓게 퍼지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어렵고 힘든 수어에 입문하면서 깨닫게 되는 일상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수어는 단순히 손으로 대화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걸

이 책을 읽고 알 수 있었다. 손동작은 물론 얼굴 표정까지 온 근육을 사용해야 한다니

급기야 시각적이면서도 입체적인 이 언어를 처음 만든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졌다.

수많은 글자와 숫자를 손과 표정으로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을지,

손 모양, 표정, 몸짓으로 대화하여 농인과 청인을 연결하는 낯선 언어의 매력은 무엇일지

그들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저자는 수어 또한 외국어를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낯설고 서툴지만 배우는 시간과 노력만큼 보고 듣고 읽을 수 있게 된다.

영화 에세이스트인 저자는 실제로 배우면서 느낀 감정을 진솔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면서

농인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함께 소개하고 있다.

장애인의 언어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좋아서 하는 일의 기쁨을 전해준다.

수어의 매력은 그 어떤 언어보다 솔직하고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거짓말과 독한 말들로 어지러운 세상에서 솔직한 수어의 매력에 조금씩 물들어 간다.

다양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언어를 배우기 위해 모인 수어학원에서 수어를 배우면서

실패를 거듭했지만 수업이 끝나면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저자의 뒷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낯선 언어와 그 언어가 펼쳐지는 새로운 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살고 있는 좁은 세상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내 안에 있는 편견을 깨고 불편함이 가진 긍정의 힘을 생각할 수 있게 해준 책이다.

농인은 표정을 보고 진심인지 아닌지 구별해낼 수 있기 때문에 수어로는 감정을 숨길 수 없다고, 선생님은 말했다. 솔직하고 직접적인 표현이 농인의 문화이니 수어로 이야기할 때는 좋은지, 싫은지, 고마운지, 별로 안 고마운지 느낀 그대로 표현해야 한다고 말이다.

p. 30

우리는 자신의 사전에 포함시킬 단어를 수집하고 용례를 적어 내려가며 내가 속한 세상을 정의할 수 있다. 차별과 편견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면, 배려와 공감, 이해와 인정의 말을 우리 곁에 두면 된다.

p.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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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주파수를 찾습니다, 매일 -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보낸 단짠단짠 16년 일하는 사람 2
차현나 지음 / 문학수첩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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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내 옆에는 늘 라디오가 있었다.

특히 늦은 밤에 듣는 라디오 소리는 감성이 예민한 시기에 필수품이었다.

그러다 보니 잠시나마 라디오 DJ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가끔은 일상에서 멀어진 라디오가 그립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라디오 피디의 세계를 이야기한다.

대부분이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스펙터클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지휘하는 피디의

파란만장한 직업 이야기는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면서 그들이 사는 세상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경력도, 전공도 모두 무시하고 모든 분야의 전문가에 가까워야 하는 프로의 세계는

삶에 대한 활기찬 동기부여를 건네준다.

이 책의 저자는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 중에서도 시사방송의 피디이다.

뉴스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시사 피디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일상이 흥미진진하다.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나는 시사 프로그램의 특성상 게스트 모시기의 고충을

털어놓고 구독자와 후원을 위해 독한 말들을 내뱉는 유튜브, 팟캐스트와의 경쟁에서

객관성과 중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청취자들을 사로잡아야 하는 고민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급작스럽게 변화는 상황에서도 한정된 시간 안에서 공통의 아이템을 선정하고

동시에 차별화를 추구해야 하는 그들의 노력과 고민에 깊이 공감할 수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선택과 결정을 내려야 하고 오늘의 방송이 끝나면 내일의 방송을 준비해야 하는 일상이 이어지지만 저자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면서 직업적 특성을 이해함으로써 100% 성공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라디오 피디는 밥벌이의 수단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나는 작가의 이야기에 매료될 수 있었다.

대안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라디오는 사라질 것이라 했지만 여전히 우리의 일상을 함께 하고 있다.

아날로그 감성을 디지털 기술로 전해주는 라디오 피디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방송이란 정말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나는 일인 것 같다. 경험으로부터 얻은 노하우와 기술이 필요하지만, 그것들을 모두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을 알아야 하기에,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하기에, 하면 할수록 방송이 어려운 이유도 바로 그래서인가 보다.

p. 60

하지만 우리 인생처럼, 라디오엔 내일이 있다. 생방송을 좀 망친다 한들 어떤가, 오늘 잘못하면 내일 만회할 방송이 있다. 생방송이 마음처럼 잘되지 않은 날은 퇴근길 발걸음이 아주 찝찝하다. ‘그때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 왜 그 실수를 막지 못했을까.’ 그럴 때 해결의 주문은 딱 하나다. “하루만 방송하고 끝낼 건 아니잖아.” 인생도 그렇듯이 말이다.

p.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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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음 - 타인의 역사, 나의 산문
박민정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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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다양한 여성 혐오를 글로 짚어냈던 작가의 첫 산문집에는

어떤 글들이 담겨 있을까.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책을 펼쳤다.

비슷한 시기를 살아냈고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작가의 글에서

익숙한 삶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작가는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의 자리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자리를 떠올린다.

때로는 진정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의 가치를 증명하려 한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혐오를 비판하고

여러 소설 작품을 작가만의 해설을 덧붙여 소개하며

자신의 소설을 쓸 때 하게 되는 의문과 고민을 고백한다.

결코 가볍지 않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묵직하게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전하지 않으면 잊힐지 모르는, 잊혀서는 안되는 기억들이 기록으로 남는다는 건

근사한 일이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는 여성으로서 겪어야 하는 아픔과

그럼에도 용기 내서 살아가려는 다짐이 공존하고 있다.

사회의 아픔을 신중하게 관찰하고 정교하게 써 내려가려는

그녀의 노력과 진심을 마음속에 새겨본다.

작가가 전하는 '현실을 살아내게 하는 것들'에 대해 천천히 읽어가면서

지난 내 삶을 떠올려본다. 내가 살아온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잘 할 수 있는, 잘 해내고 싶은 일들을 찾기 위해 쉼 없이 달려온 시간들을 돌이켜 본다.

오늘이 지옥 같고 고통스러워도 내일이 오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면 오늘은 어제가 되고 내일은 오늘이 되면서 잘 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든다.

반복되는 아픔과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하는 동기를 기어코 찾아낸다.

내 역사, 내 기록은 그렇게 계속될 것이다.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의 자리. 언뜻 생각하면 매력적인 말이다. 그러나 재고하면 무서운 말이다. 한 사람의 자리가 영영 대체되지 않는다니. 어떤 경우에서는 단 한 사람만 고정되어 앉을 수 있는 자리보다는 언제든 일어서 다른 사람에게 내주는 쪽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p.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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