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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음 - 타인의 역사, 나의 산문
박민정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8월
평점 :
한국 사회의 다양한 여성 혐오를 글로 짚어냈던 작가의 첫 산문집에는
어떤 글들이 담겨 있을까.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책을 펼쳤다.
비슷한 시기를 살아냈고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작가의 글에서
익숙한 삶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작가는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의 자리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자리를 떠올린다.
때로는 진정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의 가치를 증명하려 한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혐오를 비판하고
여러 소설 작품을 작가만의 해설을 덧붙여 소개하며
자신의 소설을 쓸 때 하게 되는 의문과 고민을 고백한다.
결코 가볍지 않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묵직하게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전하지 않으면 잊힐지 모르는, 잊혀서는 안되는 기억들이 기록으로 남는다는 건
근사한 일이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는 여성으로서 겪어야 하는 아픔과
그럼에도 용기 내서 살아가려는 다짐이 공존하고 있다.
사회의 아픔을 신중하게 관찰하고 정교하게 써 내려가려는
그녀의 노력과 진심을 마음속에 새겨본다.
작가가 전하는 '현실을 살아내게 하는 것들'에 대해 천천히 읽어가면서
지난 내 삶을 떠올려본다. 내가 살아온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잘 할 수 있는, 잘 해내고 싶은 일들을 찾기 위해 쉼 없이 달려온 시간들을 돌이켜 본다.
오늘이 지옥 같고 고통스러워도 내일이 오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면 오늘은 어제가 되고 내일은 오늘이 되면서 잘 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든다.
반복되는 아픔과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하는 동기를 기어코 찾아낸다.
내 역사, 내 기록은 그렇게 계속될 것이다.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의 자리. 언뜻 생각하면 매력적인 말이다. 그러나 재고하면 무서운 말이다. 한 사람의 자리가 영영 대체되지 않는다니. 어떤 경우에서는 단 한 사람만 고정되어 앉을 수 있는 자리보다는 언제든 일어서 다른 사람에게 내주는 쪽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