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와의 대화
로저 파우츠. 스티븐 투겔 밀스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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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무명 심리학자가 세계적인 과학자로 성장한 이야기일까, 아니면 침팬지의 생존기를 쓴 책일까.
아동의 심리를 연구하는 임상 심리학자가 되고 싶었던 저자가 처음 맡게 된 임무는 침팬지에게 언어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장 비슷한 영장류인 침팬지. 과연 침팬지에게 언어를 가르친다는 것이 가능할까. 이런 사소한 궁금증에서 이 책에 호기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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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와의 대화>는 로저 파우츠와 침팬지 워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997년 처음 출간된 후 20년이 지난 지금 번역되어 우리나라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어릴 적 동물과 말이 통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 본적은 있지만 실제로 이런 실험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울 뿐이다. 워쇼가 배우는 건 인간의 음성 언어가 아닌 수화였다. 침팬지가 수화를 통해 대화를 하고 자신의 감정을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저자는 말했다. "나는 이 꼬마 침팬지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종종 되새겨야 했다."
책을 읽을수록 놀라울 따름이었다. 저자는 침팬지가 실제로 수화로 단어를 표현하는 것 뿐만 아니라 문장까지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증명했다. 

이 책에는 실험실 동물의 슬픈 현실도 이야기한다. 연구 대상으로의 가치가 떨어지면 침팬지를 지하실의 좁은 철창 가둬놓거나, 생체 실험에 사용되어 최악의 경우 목숨을 잃게 된다. 우리 인간이 과연 그럴 권리가 있는지에 대해 회의가 든다. 나도 동물 실험을 몇년 간 했던 적이 있었다.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수 많은 동물의 희생을 강요했었다. 때로는 죄책감에 실험실을 들어가는 것 자체가 두려웠었다. 

저자는 실험을 진행할수록 워쇼를 가족으로 여기게 된다. 실험자와 피실험체 사이에 이런 관계는 바람직하지 않다. 객관성을 잃을 수도 있으며 더 이상 실험 자체를 진행할 수 없게 된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과학자로서 의무와 윤리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세계적인 과학자로 이름을 날릴수록 그가 바라는 바는 자신의 연구소를 쓸모없는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결국 그는 아내와 함께 [침팬지 인간 커뮤니케이션 센터]를 공동 창립하고 비영리 단체 [워쇼의 친구들]을 공동 설립하기도 했다.

파우츠와 워쇼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 인간이 가진 우월 의식이 부질없는 것인지, 인간과 동물 사이에 '우정'이라는 감정이 실제로 존재하며 그 크기가 얼마나 큰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인간은 결코 우월한 존재가 아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당연한 것을 우리는 모르고 살고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가치를 다시금 생각해본다. 내가 그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멍청한 생각은 이제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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