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여, 안녕
김종광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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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말부터 한국인 작가의 소설을 잘 안 읽게 되었다. 한국소설을 무시해서가 아니고, 그냥 소설이 아닌 다른 책, 소설이더라도 외국소설에 더 끌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공선옥, 박정애의 작품집은 ‘의리로’ 꼬박꼬박 사려 애썼지만, 사놓고는 쟁여놓기만 했다. 그러다 작년에 동료의 추천으로 김종광, 손홍규 같은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박영한, 전상국 같은 좀 오래된(^^) 이름들에도 새로이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래서 읽게 된 {경찰서여, 안녕}. 참으로 오랜만에 읽은 단편소설집이다. 1998년 여름 문학동네 문예공모로 등단하고 나서 발표한 소설 11편을, 등단작 [경찰서여, 안녕]부터 발표 순서대로 묶었다는데, 네 번째 작품을 읽을 때까지, 신기하게도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한 걸음씩 더 좋아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경찰서여, 안녕]은 썩 좋지는 않았다. TV에서 그럭저럭 볼 만한 베스트 극장 한 편을 본 느낌이랄까. 그런데 다음 작품 [분필 교향곡]은 꽤 인상 깊었고, 그런 인상의 깊이가 네 번째 [전당포를 찾아서]까지 조금씩 더 깊어지다가, 잠시 소강상태, 그리고 여덟 번째 [정육점에서]는 최고점을 쳤다. 그 뒤는 조금씩 하강.

단편소설에서 주인공이 한두 명으로 압축되지 않은 경우는 내가 알기로 별로 없는데([토지]나 [태백산맥] 같은 대하소설에서야 주요 등장인물 모두가 주인공일 수 있지만), 이 작가는 한 가지 작은 사건(이라기보다 일화)이 흘러가는 데 따라 관계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시점을 이동한다. 그 일이 벌어지는 동안 스쳐 지나가는 사람 모두, 각기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정이 있었음을, 그들 모두 자기 인생에서는 주인공임을, 장황한 설명 없이 간결하게 보여주려는 것 같다. 주인공 한 사람에게 주목하는 작품에서라면 행인 1, 2나 경비 정도로 처리될 인물 한 명 한 명에게 ‘이홍수, 68세’ ‘양미정, 30세’ ‘박순복, 54세’ 하는 식으로 이름과 나이를 부여하고, 그 순간 그 인물의 기분과 그 인물이 하는 행동의 이유를 밝히 드러낸다.

[분필 교향곡]의 시대 배경은 1989년쯤, 아마 전교조 사태가 처음 벌어졌을 무렵 한 남자고등학교 교실에서 한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을 다루었는데, 정말로 그랬을 법한 풍경을, 교실의 이 구석 저 구석을 모두 조명하며, 희망도 절망도 없이 간결하게 펼쳐 보인다. 등장하는 학생들의 이름을 종필, 승만, 영삼, 대중, 일성, 정일, 게다가 건희, 주영, 심지어 봉주, 찬호까지, TV를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이름으로 짜놓은 것이 재미있다.

[많이많이 축하드려유]가 어느 읍내의 원동기 면허시험 전후 과정을 지켜보며 마음 푸근한 웃음을 떠올리게 한다면, [전당포를 찾아서]는 피식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마음이 짠하다. 줄거리를 굳이 압축하자면 대책 없이 순진한 농촌 출신 대학생이 서울로 시위하러 왔다가 닭장차에 실려 서울 한복판에 떨어지게 되어, 낡은 싸구려 시계라도 잡혀 차비를 마련할 요량으로 전당포를 찾아 헤매다가, 어찌어찌하여 학교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인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학생을 잡았다가 떨궈버리는 전경 한 사람도 그냥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익명의 ‘전경’이 아니라 이름과 나이가 있는, 살아 있는 인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무 살 남짓, 주변머리 없는 시골아이가 10원 한 장 없이 서울거리를 헤맬 때의 막막함.

[정육점에서]는 나를 가장 아프게 한 작품이다. 성매매 집결지의 어느 성판매 업소에서 하룻밤 동안 일어난 이야기인데, 현실에서 흔히 있는 대로 파는 쪽이 여자, 사는 쪽이 남자가 아니라, 남녀의 성을 바꾸어놓았다. 현재에도 있는 호스트바 정도를 배경으로 성판매 남성의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다. 정말로 미아리나 청량리 등등에 있을 법한 업소를 배경으로 하여 ‘군복을 입은 년’이나 ‘사업상 접대하는 년’을 ‘삼촌’이나 ‘아빠’가 붙잡아 오면, ‘연미복’을 곱게 차려입은 ‘우리들’이 낙점을 받아 쇼를 하고 ‘좆’을 판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완전히 가상인데, 나는 이 이야기에 별 다섯 개를 주고 싶어서, 이 리뷰를 쓰는 것이다.(‘리뷰’란 말에는 왠지 무게감이 있다. 그래서 한동안 ‘뭔가 그럴듯하게 써야 할 것 같은’ 리뷰를 피하고 페이퍼 난에다 ‘별점 없는 리뷰’라며 편하게 주절거렸더랬는데.)

[짚가리, 비릊다]는 등단하기 직전, 농사짓는 부모님 댁에 한심하게 얹혀살면서 글쓰기의 진통을 겪던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 것 같은데, 나에겐 가장 생동감이 떨어졌다.

-뒷말-
이 책을 다 읽은 지는 한 달이 넘었지만, 맨 뒤에 실린 문학평론가의 서평은 오늘 이 리뷰를 읽기 직전에야 보았다. 이 문학평론가와 나의 소감은 얼추 비슷한 듯하면서도 조금씩 엇갈리곤 하는데, [편안한 밤이 오기 전에]에 대해서 “작가는 최 노인의 완고한 어투를 빌려, 아무리 세상이 변하여도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거나, [중소기업 상품설명회]에 대해 “시골에까지 침투한 경박한 소비풍조의 일단을 그리고 있”다고 간단히 평해버리고 만 것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내가 느끼기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게 아니라 세상 변하는 데 그토록 가늘게 길게 적응하면서도 자기만의 여유를 마련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면모 그 자체이고, 작가가 그리고자 한 것은 “시골에까지 침투한 경박한 소비풍조”가 아니라 그런 장삿속의 현장에서 드러나는 농촌 부인네들의 욕구와 생활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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