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제목에 쓰기 끔찍해서)
얼마 전에 어느 기자와 점심을 같이 먹게 되었는데,
이야기하다가 그 기자가 저한테 언제부터 이 회사에서 일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올 1월부터라고 했더니 그 전에는 어디 있었느냐고 다시 묻기에,
2년 동안 프리랜서로 일했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웃으며, 왜 그 자유로운 생활을 접고 다시 얽혀들었냐고 하더군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
프리랜서로 일하면, 어쩐지 내 책 같지가 않더라고 대답했어요.
내가 만든 책은, 지은이의 책이기도 하고 출판사의 책이기도 하고,
또 편집자의 책이기도 한데,
지은이와 직접 교류하지 않고, 또 기획에 참여하지도 못한 채
주어진 일만 돈 받고 하다 보면 내 책 같지가 않더라고.
그러면서 제가 한 말이 “대리모가 된 기분이라 할까.”였어요.
말해놓고는 아차 싶었습니다.
편집자들은 종종 힘들게 책 만드는 과정을 ‘산통’에 비유하곤 하는데요,
저는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해산 경험도 없는 제가,
산통이 어떤 건지도 모르면서,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그 일에
제가 하는 일을 비유하는 건, 주제넘은 짓 같거든요.
그런데 어째서 ‘대리모’란 말이 튀어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아침 TV에서
한국인 여성들이 일본인 불임부부에게 대리모로 고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한국이 일본의 ‘자궁 식민지’가 될 우려가 있다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한국인 여성들이 대리모로 고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소식보다,
전 저 ‘자궁 식민지’라는 말이 더 끔찍했습니다.
한나라당 박재완 의원이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저런 말을 했다는군요.
세상에.
‘대리모’는 여성의 가난, 여성의 몸, 불임부부의 선택, 세상에 자녀를 내보낸다는 것 등등에 대해
생각할 것이 아주 많은 주제입니다.
대리모가 된다는 것, 대리모를 고용한다는 것,
누가 왜 그런 결정을 내리는가,
그것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어떤 기준으로 가능한가...
그런데 단지, 일본인에게 고용되는 경우가 많은 사실 하나만을 두고,
‘자궁의 식민지’라고 표현하는군요.
그럼 한국인에게 대리모로 고용되는 것은 괜찮다는 말인가요?
이야말로 여성의 몸을 민족(국가)의 소유물로 간주하는 데서
나온 발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TV의 보도는 다행히 ‘자궁의 식민지’에 중점을 두지 않고,
대리모를 지원한 이들의 어려운 사정과
아들이 아닐 경우 낙태하는 조건이 담긴 계약
(대리모를 고용한 한국인 남성이 요구한 것이었음) 등을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뉴스메이커 편집장인 유인경 씨가
일본이든 어디든 이건 여성의 몸과 인권을 걱정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해줘서 다행이었습니다.
이분은 (제 생각에) 곧잘 뻘 소리를 해서^^
평소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오늘 아침에는 정말 고마웠습니다. 이분이 아니었다면
굉장히 불쾌해서 MBC 게시판으로 달려갔을 겁니다.
제가 섣부르게 입을 놀려서 벌을 받은 기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