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 어록 - 세월이 흐를수록 빛을 발하는 붉은 처세
장거 지음, 박지민 옮김 / 큰나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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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록이란 삶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어록이란 현실의 처세로서도 도움이 된다. 2010년 가을 마오쩌둥에 관한 어록이 발간되었다. 중국 공산당을 가장 성공적으로 이끈 지도자로 손꼽히는 마오쩌둥은 중학교 다니는 아들도 익히 그 명성을 알고 있을 정도다. 총 큰 3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1장은 도약, 2장은 분투, 3장은 화합에 관해 기술하고 있다. 약간 실망이었던 것은 마오쩌둥 어록이라 하여 그의 집필이 주를 이루는 책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의 사상은 앞에 조금 나오고 그것을 토대로 작가가 다른 사상가의 예를 들어서 어록의 이해를 돕고 있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형식만 그러할 뿐 마오쩌둥 어록은 모두 읽는 이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는 글이다. 1장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무엇을 배울지 계획을 세워라. 의식 없이 남이 하는 대로 따라 간다면 머릿속에 온갖 쓸데없는 정보만 가득 찰 것이다. 성공하려면 먼저 뜻을 세우라는 말처럼 명확한 목표가 있을 때 성과가 나타난다." 그렇다. 맹목적으로 공부하는 것도 문제지만 맹목적으로 독서 하는 것도 옳지 않다. 내가 원하는 책을 잘 읽어 내어야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다.

2장에서는 좌절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나와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좌절은 무차별적으로 다가오는데, 그 좌절에 대해 프랑스의 작가 오노레 드 발자크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좌절은 마치 돌과 같다. 약자에게는 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고, 강자에게는 높이 날 수 있는 디딤돌이다." 즉 "삶에 확고한 목표가 있는 사람에게 좌절은 자신을 단련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좌절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사람만이 삶의 강자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마지막 3장에서는 사랑에 대해 나와 있다. 마오쩌둥이 어머니를 병으로 보내고 친구에게 쓴 편지 내용은 우리들이 새겨들을 만하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네. 첫 번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손해를 입히는 사람, 둘째는 자신의 이익은 챙기지만 남에게 손해를 주지는 않는 사람, 세 번째는 남의 이익을 위해 자신이 손해 보는 사람이라네. 내 어머니는 세 번째 사람이었네." 인생을 길잡이 노릇을 하는 이러한 그의 어록을 작가는 "진정한 사랑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겁쟁이를 용사로 만들기도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마오쩌둥의 어록 가운데 21개를 엄선하여 이해하기 쉽게 다양한 예시를 든 책이다. 좋은 말이 책 가득 들어 있지만 다 옮겨 놓을 수는 없다. 말을 백번 한 것 보다 한 번 책을 보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생활의 지혜가 가득한 책들과 그의 어록은 별다른 차이가 없다. 다만 이 책을 통해서 체제가 다른 사람의 생각이 우리와 다를 거라는 편견은 깰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런 책을 한 두 권쯤은 가슴에 품어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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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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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이 논에서 다 익은 곡식을 새들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세워 놓는 것이 허수아비다. 허수아비 서너 개가 논 주위에 줄 하나로 묶여 있어서 주인이 줄을 잡고 흔들면 허수아비들은 일제히 몸을 흔든다. 생각도 없고 지혜도 없고 맹목적으로 서 있지만, 인간의 형상을 했다는 것 하나로 허수아비가 움직일 때마다 새들은 줄행랑을 친다. 참새들은 처음엔 허수아비를 피하는 듯 하다가 얼마 가지 않아서 허수아비가 그냥 껍데기라는 것을 눈치 채고 곡식 위에 겁 없이 내려앉기도 한다. 풍요로운 들판을 떼 지어 날아다니는 새들과, 그 새들을 쫓으며 내 것을 지키려는 주인의 승부가 가을마다 반복 된다. 곡식을 민주적인 방법으로 나누어 가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민주"란 무엇인가. 한자로 民主는 백성이 주인이라는 뜻이다. 물론 이 경우는 참새가 주인일리는 없겠지만, 그렇다면 "경제민주화"는 무엇인가? "이 땅의 모든 기업들이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투명경영을 하고, 그에 따른 세금을 양심적으로 내고, 그리하여 그 혜택이 고루 퍼지고, 또한 튼튼한 복지사회가 구축되어 우리나라가 사람이 진정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되는 것"이라고 조정래 작가는 "허수아비춤"이라는 소설에서 말하고 있다. 그의 소설 속에는 냄새나는 돈(남 회장)과 돈의 노예 같은 윤성훈, 박재우 강기준이라는 허수아비 같은 주요인물 셋이 나온다. 이 세 사람은 회장의 명령에 따라 정치나 법 세무 등 주요 기관에서 근무 하는 이들의 약점과 돈을 미끼로 그들을 매수한다. 그리고는 탈법, 탈세를 일삼아 거액의 비자금을 만들어낸다. 그런 인물들을 등장시켜 놓고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신랄하게 소설 속에 등장하는 대 기업의 생활을 까뒤집어 놓는가 하면, 등장인물인 전인욱과 아내의 대화에서는 '그렇지만 틀린 글자 잡아낸다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라고 하여 부패의 깊은 늪을 바로 잡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소설속의 이 말은 읽는 이에게 강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꼭 이루어야 하는 것이 경제 민주화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작가는 그들은 먹을수록 더 허하고 굶주린 듯 날뛰는 수컷 동물에도 비유한다. "맹수가 사냥할 때 사냥감의 급소를 일격에 물어뜯듯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한 단계 더 선수쳐 자기 목적을 쉽게 달성시키는" 라고 하여 수컷의 속성으로 소위 그들의 악랄함에 비유한다. 그러나 큰 힘은 적은 힘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므로, 아직은 보잘 것 없지만, 양심을 가진 도덕적인 인물이 그가 생각하는 경제민주화실천연대를 이끌도록 등장시킨다. 

 

이 소설을 쓴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소설을 읽고 나서 대기업의 횡포와 부정부패와 권력에 대해 분개하라는 것인가? 분개해서 머리로 해딩 이라도 하라는 것인가? 결국 분개한 일개 국민인 우리더러 힘없음을 인정하고, 피터진체 쓰러져 이것은 내 운명이야 하라는 것인가? 아니면, 덤벼봤자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테니 눈, 귀, 입 막고 가만히 나 죽었소 하라는 것인가? 힘없는 자를 조롱하는 것은 아닐 텐데,,, 그 두 가지 어느 것도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이 땅의 모든 이에게 생각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경제인은 비자금 형성과 권력을 쥐고 흔들며 자신의 배를 불리기보다는 투명경영으로 탈법 탈세를 일삼지 않아서, 이익을 사회 쪽으로 재분배 하자는 의도일 것이다.

 

그는 미약한 힘으로 맞서며 경제민주화실천연대가 불법에 대항하지만 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어디선가 계속 순환되고 있다는 것을 독자에게 인식을 시킨다. 작가는 국민이 그러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면 이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라고 말한다. 권력의 노예요, 재벌들의 노예인 국민은 정작 자신이 노예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비극이고 절망이다라고 말한다. 강기준이라는 인물처럼 대기업에서 허수아비 노릇을 일삼다가, 출세를 명분으로 회사를 옮겨 더 많은 부정을 돕게 되는 것을 빗대어 작가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그동안 일방적으로 품어 왔던 그 기대와 희망은 바로 자발적 복종이었다. 스스로 노예 되기를 자청한 것이다." "긴 인류 역사는 증언한다. 저항하고 투쟁하지 않은 노예에게 자유와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그런데 노예 중에 가장 바보 같고 한심스런 노예가 있다. 자기가 노예인줄을 모르는 노예와, 짓밟히고 무시당하면서도 그 고통과 비참함을 모르는 노예들이다. 그 노예들이 바로 지난 40년 동안의 우리들 자신이었다."

 

소설이라는 것은 참으로 많은 방면으로 유익한 재미를 준다. 좌절한 자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가 하면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들을 깨닫도록 이끌어 주기도 한다. 또한 작가의 철저한 옳은 의식아래서 내 뱉는 그 힘은 크다. 이제 현실은 '정치민주화'를 이루었다고 판단한 작가는 '경제민주화'의 시점이라고 감히 말하는 것이다.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피를 흘린 시기를 이미 지나왔다. 국민들의 의식도 얼마만큼 성장하여 작다고는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경제민주화연대라는 단체까지 형성되었다. 이러한 모든 정황에서 아직 이기적인 욕심으로 경영에 임하는 기업은 앞으로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경고의 메시지로 보인다.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도 어느 날 대기업이 도산하고, 대기업의 간부들이 투신자살하는 뉴스보도를 접한 적 있다. 안타깝다. 기업인들이 생각의 전환을 서서히 단행하지 않으면 이미 경제민주화에 눈을 뜬 국민과 함께 피를 흘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그들에게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허수아비춤은 억, 억 돈의 소리가 나는 소설이다. 독자에게는 허황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허수아비춤은 의식 있는 작가의 글이어서 힘차게 뿌려지는 빗줄기 같다. 그 빗줄기가 골고루 국민들의 발을 적시어 푸르게 푸르게 국민성은 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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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연중행사와 관습 120가지 이야기 - 일본 황실 도서관의 수석 연구관에게 직접 듣는
이이쿠라 하루타케 지음, 허인순.이한정.박성태 옮김 / 어문학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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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딸이 학교에서 일본 문화 퀴즈대회를 했다면서 일본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아이는 서점에 가도 틈틈이 일본에 관한 책을 뒤적였다. 실은 에니메이션에 관심을 갖는 아이가 일본에 대해 부쩍 눈길을 주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첫 번째 해외 여행은 일본으로 가겠다는 것이 그 아이의 꿈이다. 아이를 지켜 보면서 자연히 나도 일본이라는 나라에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일본의 연중행사와 관습 120가지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제1장에서는 일본인의 자연관과 신앙에 대해 나와 있다. 중국과 우리나라와 일본은 인접국가여서 관습이나 행사, 음식이 많이 닮았다. 음력을 쓰는 것도 그렇고, 십이지와 십간으로 여러 가지 일을 표시하는 것도 닮았다. 일본인의 신앙에 대해서도 나왔는데 그 들만의 독특한 정신적 지주를 여기에서 발견한다. 애니미즘으로 시작된 그들의 신앙은 모든 사물에는 신이 깃들었다고 여겼고, 지금도 신궁과 신사에서 참배하고 있다. 모든 일상생활에 신이 있다고 여겨 각 가정에서도 신을 모시고 있다. 제2장에서는 정월의 관습에 대해 나와 있다. 새해에는 오토시타마라는 둥근 떡을 나누어 먹는 관습이 있다. 새해 첫 날부터 서로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풍습이라 생각한다. 제3장에서는 연중행사의 관습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입춘 전날을 ‘쎄쓰분’이라고 하는데, 이날은 큰소리로 ‘복은 집 안으로 들고, 악귀는 밖으로 나가라’고 하면서 콩을 뿌린다. 여기서 콩을 뿌린다는 행위에는 농민들의 풍작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인상적인 것은 단오절에 중국의 ‘용문폭포를 올라 잉어가 용이 되었다’라는 고사의 영향으로 자식의 출세를 빌기 위해서 고이노보리를 세웠다. 그런 이유로 5월5일은 남자아이의 명절이 되었다.

또 음력 7월 15일에나 양력 8월 15일에는 조상의 영혼에 공양하는 오본이라는 관습이 있다. ‘제등 흘려 보내기’ 혹은 ‘제등 띄워 보내기’라고 하는데, 제등에 촛불을 켜고 강이나 바다로 띄위 보내면 정령이 그 제등을 타고 강을 지나 바다로 나가 ‘저승’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제4장에서는 결혼의 관습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결혼식 피로연에 초대한 하객에게 돌아갈 때 답례품인 히키데모노를 주는 것이 통례이다. 히키데모노는 일종의 작은 선물인데, 결혼에 참석하지 못한 가족들과 경사스러움을 나누고자 하는 배려이다. 우리나라에서 잔치가 끝난 후 음식을 나누어 주었던 것과 흡사하다. 제5장에서는 임신. 출산의 관습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일본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게 하는 오미야마이리는 태어난 아이를 처음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가 가까운 신사에 참배하는 의식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신사에 의해 결속이 다져져 일본인으로서의 힘을 길러내고 있는 관습으로 보인다.

제6장에서는 경사의 관습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아이가 성장하여 어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로 시치고산이나 성인식 등이 있고, 장수를 축하하고 연장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회갑이나 고희를 축하한다. 약간의 형식은 다르겠으나 어느 나라에나 비슷한 의미를 가진 관습들인 것 같다.

제7장에서는 선물의 관습에 대해 말하고 있다. 경사스러운 일에는 포장지를 두장을 겹쳐서 선물을 싸고, 불행한 일에는 ‘나쁜 일이 겹치지 않도록’ 한 장의 포장지로 선물을 포장한다. 포장한 선물은 미즈히키라는 종이 끈으로 묶었는데, 끈의 색깔이나 묶는 법에도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이 신기하다. 제8장에서는 편지에 관한 관습에 대해 말하고 있다. 편지를 직접 개봉하기를 원할 때는 봉투 겉면 왼쪽 밑에 ‘친전’이라 쓴다. 제9장에서는 장례식의 관습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세상과의 마지막 이별의식으로 ‘임종의 물이 있는데, 가족이나 형제자매와 같은 친인척이 순서대로 탈지면이나 가제에 물을 적셔 죽은 사람의 입술을 축여준다. ‘임종의 물’은 그 의미가 남다르게 깊고 뜻 있어 보이는 관습이다.

제10장에서는 운에 관한 관습에 대해 말하고 있다. 달마는 무로마치 시대에 만들어진 ‘일어나는 장난감’이 그 기원이다. 소원을 빌 때 한족 눈을 검게 칠한 다음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 다른 한 쪽 눈을 검게 칠한다. 달마는 사업이 번창하도록 하거나 많은 운을 불러오기 위한 물건이다. 달마의 모습이 우리나라에서 벽에 걸어 놓던 그림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어서 귀엽다. 제11장에서는 관습과 관련된 속담에 대해 말하고 있다. ‘북쪽 방향으로 잠을 자면 병이 낫지 않는다’는 속담은 죽은 사람이 나갈 때 시신을 북쪽으로 하여 재단을 마련하기 때문에 살아있는 사람이 북쪽으로 누워서 잠을 자는 것은 좋지 않다는 말이다.
위에서 제1장~제11장에 걸처서 일본의 연중행사와 관습에 대해 읽어보았다. 우리나라의 관습들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낯설지 않았다. 일본의 ‘다자이후 세이초’라는 곳에는 그리스 • 로마시대의 신전과 맞먹을 정도의 크기로 건물 주춧돌이 수백 미터나 늘어서 있다. 이곳은 3-400년 경에 백제가 규슈 일대를 다스리기 위해 관청을 세운 곳이다. 역사에 크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으면 우리의 조상 백제가 일본을 다스렸다는 역사적 사실은 그런 적 없는 일로 묻히게 된다. 이대로 그러한 사실이 묻혀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역사와 더불어 관련이 있는 이웃나라 일본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한다. 일본에 대해 알 면 알수록 재미있는 것도 많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영향이 곳곳에 묻어 있어서, 먼 나라 이야기와 다르게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을 바로 알고 새롭게 인식하고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관련하여, 가장 근본적인 일본인의 민족성의 토대가 되는 ‘일본의 연중행사와 관습 120가지 이야기’는 나에게 일본인의 정신 바탕을 자세하게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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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미래 - 예수의 시대에서 미래의 종교를 보다
하비 콕스 지음, 김창락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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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종교의 미래』는 맛있다. 책이 맛있다는 것은 종교에 대해 끊임 없이 내 자신에게 반문하던 것들이 책 안에 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종교를 생각해 보지 않은 이는 드물 것이다. 그러나 정작 종교가 표방하는 것이라든가, 현재에 드러난 종교의 부정적 표면에 대해 적잖이 실망을 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 물론 기본은 예수를 중심으로 한 종교를 논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들의 모든 종교는 어떠한 모습이어야 될지 반성하게 만드는 책이기 때문이다.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내가 속한 가족들은 진실한 기독교인이다. 내가 종교를 가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수없이 전도를 받는다. 그러면서 묻지도 않은 이야기들로 설득을 하려든다. 교회를 다니다 잠시 다니지 않았더니 귀신이 자신을 따라 다녔는데, 다시 다니면서 열심히 기도를 했더니 귀신이 물러 가더라는 이야기. 죽어서 나는 천당에 갈 것인데, 너는 그러하지 못하게 못하니 가슴이 아프다는 이야기. 내가 너희들을 위해 기도를 하기 때문에 그 만큼 사는 것인데, 우리 죽으면 너희에게 불행이 오면 어떻게 사느냐는 이야기 등을 자신 있게 한다. 이에 대한 답으로 책에서 관련된 내용을 읽어 보자.
71쪽 “‘하느님의 나라’라는 어구는 성서 전체에서 가장 잘못 사용되고 오해 되는 어구 가운데 하나이다. 하느님 나라를 사람이 죽은 후에 가는 곳, 또는 이 세계의 역사가 끝난 후에 시작할 어떤 것, 또는 전적으로 내면적인 어떤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지만 헤브라이 예언자들, 예수 자신, 그리고 성서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의 끝 페이지들은 모두 하느님 나라는 이 세계 안에,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어떤 것이라고 가르친다. 하느님의 평화의 지배에 대하여 예언자들이 보여주는 것을 얼핏 보면 그것은 철저히 지상적인 것이다.

지금은 팽배한 믿음의 시대다. 인간은 나약하다. 그래서 힘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나 그 힘을 가진 자는 인간의 나약함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알고 있어서 누군가는 믿음을 잘 이용 한다. 정치적 권력을 형성하는데 이용하거나, 거대 기업들의 상업에 이용한다. 더 나아가 아예 종교단체 자체가 거대 기업화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간의 나약함이 기대어 있는 믿음을 이용하여 각 분야에서 권력을 키워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85쪽 “믿음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교회가 범한 가장 큰 과오의 하나는 성령은 오직 신자들 안에만 임재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3세기의 주교인 카르타고의 성 키프리아누스는 처음으로 그것을 라틴 어로 멋지게 표현했다.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이다. 그때 이래로 가톨릭교회는 이미 이러한 배제 주장을 상당히 철회했는데 그것은 잘 한 일이었다. 예수는 성령을 두고 유명한 말을 한다. 성령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그런데 아무도 ”그것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성령은 교리적 또는 교회적 울타리로 제한될 수 없다.”

하비 콕스의 이러한 명쾌한 글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한다. “성서를 믿는것”은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인지를 판가름하는 일종의 리트머스라는 말로 성서에 관해서도 언급을 하고있다.
229쪽 “아무도, 어디에도, 성서의 어떤 책의 원본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사본들의 사본들이다. (중략) 어느 한 본문의 여러 사본들은 서로 다르며 때로는 그 차이가 아주 두드러진 경우가 많이 있다.”
하지만 하비 콕스에 의하면 종교적인 것의 성격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믿음의 시대가 가고 성령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그것에 관하여 해방신학자 로메로의 죽음을 기록하고 있다. 해방신학은 가난한 사람들과 버림받은 사람들의 관점에서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를 재사유하는 데서 시작되는데, 해방신학자인 그의 설교가 인상깊다. “만일 그들이 나를 죽인다면, 나는 민중의 삶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결국 아래267쪽의 하느님의 약속을 신학도로서 실천하게 된 셈이다.
267쪽. “하느님의 약속이란 다름 아니라 정의의 지배였다.”

『종교의 미래』는 어려운 책은 결코 아니다. 종교를 가졌든 가지지 않았든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읽어야 될 책이다. 이 책을 통해 하비 콕스는 최초의 신앙이 걸어온 길을 낱낱이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최초의 신앙인 성령으로서 하느님의 전 지구적인 종교로서, 문화의 다양성에 기인한 평화의 다스림에 대해 말 하고 있다. 더불어 현 시대는 성령의 시대에 들어가려 하고 있고, 미래는 신앙의 시대가 될것이라고 단언한다. 좋은 책을 읽게 되어 기쁘다. 『종교의 미래』는 마치 하비 콕스가 성령의 시대가 되기를 촉구하는 탄원서처럼 읽혔다. 하비 콕스의 말처럼 성령의 시대가 된다면, “<요한계시록>의 하느님 나라는 이 세계 안에,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어떤 것”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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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다
김태연 지음 / 시간여행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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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이것이다’의 제목으로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으므로, 소설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신의 계시를 받아서 소설은 시작이 되었다고,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이미 암시를 한다. 그것은 소설이 어떤 영감에 의해 흘러 갈 것인지를, 혹은 쓰게 되었는지를 독자들에게 알리는 글이다. 난 다분히 어느 한 종교에 심취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내가 믿고 신임하는 것은 나의 삶의 의지가 되므로, 그의 믿음이 되어 써내려갈 수 밖에 없는 종교를 영감의 매개체로 받아 들였다.


그러나,,,, 복잡한 이중 구조에 막히고, 현실적인 수학과 환타지적 ‘여의구’의 결합으로 인해 막힌다. 그 막힘을 풀어가는 중요한 요소는 주인공인 ‘나’이다. 그리고 독자인 나이다. 챔피언스리그인 189쪽에서 “만약 자연을 알고 싶다면 먼저 자연이 말하는 언어를 알아야 할 것이다. ������물리법칙의 특성������” 라고 제시한다. 그렇다, 수식을 특별히 계산할 필요는 없다. 여기에 나온 수학은 단지 사건이 발생하면 그 사건을 풀어서 증명하려는 소설의 구조적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수학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수학에 초점을 맞추고 읽다보면, 절반도 읽기 전에 읽기를 그만 두게 될 지도 모른다. 나는 객관적이고 흥미있게 이 소설을 읽고 싶어서 수학과 종교라는 의미 보다는, 소설의 흐름 안에 심취하고 주인공에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수학이란 무엇인가? 평범한 사람들은 간단한 진리만 알면 되지 복잡하게 알아 무엇하느냐고 외치는 것이 수학이다. 1+1=2여야 하는게 수학이고, 5*9=45여야 하는게 수학이다. 다분히 계산 되어지는 고정적인 관념 같은 것이다. 이러한 수학을 작가는 종교와 연관을 시키고, 우주와 연관시키고 있다. 인간과 신과의 매개체가 수학? 수학 소설답게 주인공인 나는 자기 강박에 빠져 있다. 등뒤에 붙은 메모지를 떼어주려고 했는데, 뜻하지 않게 축구공을 떨어뜨린 친구가 축구공을 주으러 가던 도중 차에 치어 죽게 된다. 그러자 ‘나’는 친구의 죽음에 관해 비통해 하는 장면 보다는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어떤 명제를 거짓이 아닌 참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모습에서 주인공의 성격을 수학적인 공식안에 넣은 셈이다. 결국 법대에 합격하면서 누명도 서서히 벗겨진다. 챔피언스리그 165쪽 “지구 전체는 하나의 점에 불과하고 우리가 사는 곳은 그 점의 한 구석에 지나지 않는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처럼 ‘여의구’는 먼 곳에서 바라 보았을 때 한 점에 불과하다. 주인공은 ‘여의구’를 통해 우주를 보게 되면서 법대에 합격하고도 진로를 수학쪽으로 결정을 하게 된다.


소설은 김광국이라는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 내면서 제3의 세계도 있다는 쪽으로 흘러간다. 그 제3세계는 우리들이 전혀 알 수 없는 세계이지만, 김광국과 수학으로 연결한다. 그렇다 보니 어려운 수학용어가 등장하게 되고 환타지적 요소가 가미된다. 풀어낼 수 없는 수학과 같은 것이 신의 세계인데, 수학천재인 김광국은 어려운 수학을 척척 풀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신? 이책을 읽고 나니 주인공으로부터 여의구로 여의구로부터 수학으로, 수학에서 미스테리 사건인 수학천재 김광국으로, 김광으로부터 신의 세계로, 신의 세계는 우주로, 우주는 다시 여의구로 통하고 있다. 결국 ‘이것이다’는 신들이 뻥뻥 차고 놀았을 우주를 상징하는 여의구라는 결론으로 끝을 맺는다. 우리는 인터넷이라는 작은 상자 속에서 광범위한 세계를 검색한다. 자료는 방대하고 어중간한 내용은 거기서 거기라 식상해 있다. 이러한 세상에서 이 소설이 대중을 만나려고 한다. 그렇다면 이미 발간된 책들 처럼 진리를 앞세우지 않고, 구지 복잡한 수식을 끌어들여 대중과 조금 먼 제스추어를 취한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낯설음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야기가 진행 될수록 알 수 없는 모호한 기호들에 갇힌 기분을 이 소설은 준다. 이로써 식상한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하고 있다. 가벼운 이해가 허용되지 않은 것 또한 ‘이것이다’의 큰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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