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山門)에 기대어 / 송수권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 오던 것을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山茶花)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건네이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 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 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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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누이를 그리워하는 정서가 시각적 심상을 통해 함축적으로 드러난 시이다. 화자는 죽은 누이를 그리워하며 재회를 기대하고 확신한다. 이로써 이 시가 불교의 윤회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