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방 - 우리 시대 대표 작가 6인의 책과 서재 이야기
박래부 지음, 안희원 그림, 박신우 사진 / 서해문집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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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책장에 꽂혀있는 책은 뭘까. 김훈의 서재는 어떻게 생겼을까. 왠지 김영하의 책상은 이케아의 단조롭고 단단한 흰색이 아닐까. 박완서 선생은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할까.

'작가의 방'하면 떠오르는 수만가지 궁금증에 대한 작은 대답이 이 책에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방을 찍은 사진은 몇 장 있지도 않고, 그나마 집 전체를 조망한 사진은 아예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질문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이 책은 비추입니다.

하지만, 박래부가 보여주고자 했던 작가의 방은 '작가의 속내'였던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요즘 일단 정치권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야, 요즘 걔 한국에 없어, 딴 데 갔다더라." 하는 말이 나오게 하는 거죠  -이문열

여기는 학교 연구실이니까 주로 두껍고 폼나는 책을 갖다 놓았어요. 읽지도 않는 셰익스피어, 이런 거 언제 읽겠어요?  -김영하

제일 힘들었던 게 학생운동 팔아먹는다, 그 다음에 페미니즘을 포장해 상업적으로 영합한다.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좋은 거예요. 하하. 더 심한 경우는 뭐, 얼굴 때문에 책이 팔리고 있다, 이런 식의... ...  -공지영

등의 이야기들입니다. 아, 정말 솔직하지 않나요! 이 솔직함이란 '작가의 방'에서만, 자기가 주인인 공간에서만 늘어놓을 수 있는 진심 같은 것이라고 느껴집니다. 여기 소개된 여섯 작가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있다면, 한 번 읽어볼만 한 책입니다. 그런데 여섯 작가라니, 고작 여섯 작가라니! 방을 그린 일러스트 같은 건 빼고 스무 명으로만 늘려줘서 개정판이 나왔으면 하는 작은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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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House - 붉은 틀
노순택 사진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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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틀'은 거대한 책입니다.

일단 사이즈가 그렇구요, 사진 또한 그렇습니다. 무게도 만만찮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노순택이라는 사진작가가 밀어붙이는 사유의 힘이 그렇습니다. 그것이 너무 거대해서, 중압감을 견디며 보는 맛이 있는 책입니다. 그리고 차마 견디지 못해서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도 들게 하는 책입니다. 너무하다, 싶기도 합니다. 처음 보는 사진집인데 말이죠.

'붉은 틀'은 '북한'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얕은 의미의 북한을 의미하면서, 그것은 동시에 북한이라는 나라가 갖고 있는 어떤 속성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규정하는 의미에서 '틀'을 쓴 것 같습니다. 사진도 일종의 '틀'인 셈이지요.

노순택은 '붉은 틀'을 세 가지 장으로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는 북한이 외부에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 두 번째는 우리가 보고자 하는 북한의 모습, 세 번째는 우리 안에 숨어 있는 북한의 모습. 그것들을 통해 작가는 무엇을 보여주려고 했을까요. 또 스스로는 무엇을 느꼈을까요. 작가의 힘이 고민의 끝에 다다라 있으므로, 이 책은 완결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분명 '의문에 대한 해답'이 제시되었을 텐데요.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다만 느꼈던 건, '대상과 나의 관계'입니다.

첫 번째- 대상은 늘 나에게 어떤 것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것은 실제에 얼마나 가까울까요? 우리는 그것을 늘 의심하게 됩니다.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대상과 나의 관계가 너무 멉니다.

두 번째- 또 나는 대상에게 무엇인가를 원합니다. 그리고 대상이 내게 제시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내가 원하는 모습만을 찾아 찍어둡니다. 그러나 그것도 실제와는 너무 멉니다.

세 번째- 내 안에는 대상과의 일치점이 존재합니다. 나와 전혀 다른 대상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대상과 나의 관계가 존재합니다. 아니면 '어떤 것'이 '대상'으로 다가오는 계기도 없겠죠. 그렇다면 내게서 대상을 찾아보는 행위가 대상과 가까워지는걸까요?

일단 이 책에서는 이 세 장이 개별적이면서, 또한 보완적이라는 생각입니다. 세 가지의 모두 보기가 가능해졌을 때, 확실하게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역시 예술행위(사진) 자체가 도구(렌즈)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에, 완벽한 합치점은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또한 불가능하기 때문에 예술이 되는 건 아닐까요? 어찌되었건, 근래에 보기 드물게 고민의 끝까지 밀어붙이는 자를 만나서 행복합니다. 다음 작품에서는 진화된 고민과, 그에 대한 찰나의 대답을 들고 오길 바래봅니다.

그럼 저도 그 사진집을 앉혀 놓고, 더 찬찬히 들여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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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외면 - 이병진 포토에세이
이병진 글.사진 / 삼호미디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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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진 자신의 폼잡는 얼굴을 내세운 표지, 그것 때문에 왠지 손이 가질 않던 책, '찰나의 외면'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저는 개그맨이 쓴 책, 또는 연예인이 쓴 책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일단 반성...

'찰나의 외면'은 사진집으로는 모순적인 제목입니다. '찰나'가 '외면'해버리면 '찰나'를 잡아야하는 속성을 갖고 있는 사진은 탄생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음... 왜 이런 제목을 썼는지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의아할 뿐입니다. 역시 표지의 폼이 제목에도 묻어 있다는 느낌입니다. 역시 첫인상은 무섭다는 생각. 또 반성...

계속 반성하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썩 괜찮은 책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유는 한 가진데요, 저자 이병진의 진솔함, 그리고 그게 사진에 그대로 투영되는 게 꽤 멋지거든요. 특히 별 것 아닌 사진을 별 것 아닌 사진이라고 시인하는 그의 말투에서 더 빛나는 사진들이 많이 있습니다. 역시 작품은 작가와 별개로 생각할 수 없나 봅니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이를테면 자기 집 앞 풍경, 자기 자동차 악세사리, 자기 여자친구(아주 많이 등장;;),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들, 코엑스나 한강 둔치, 호수공원의 익숙한 풍경 같은 사진들이 대부분인데요. 그게 이병진의 솔직한 말과 함께 담겨지면서 '일상이 빛나는 순간'이 찾아오곤 합니다.

그의 솔직한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 하나를 옮겨 봅니다.

실수를 저질렀더라도 사진은 작품으로 남아주는 아량이 있다. -52p

그러나 그가 책을 냈다는 사실은, 실수는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더불어 그의 사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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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저는 해냈어요
김규환 지음 / 김영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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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걸 각오로 임하라'

이 책의 저자 김규환 명장이 가장 많이 한 말입니다. 어린 동생을 부여잡으며 자살을 실패하고 질긴 목숨을 이어간 어렸을 때부터, 그에겐 늘 흉터처럼 남아있는 말이기도 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늘어놓으라면 정말 책 한 권 분량이 나올만한 많은 일들을 해낸 사나이, 그러나 단 한 마디로도 요약되어지는 사나이. 그래서 '명장'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명장'이라는 말은 대개 '그 분야의 달인'에 붙여주는 칭호니까요. 저자 김규환은 '목숨을 걸 각오로 삶을 대한 분야'의 명장입니다.

또 하나 이 책에 숨어 있는 감동코드는 '우리 아버지 세대의 영웅'입니다. 보릿고개를 경험하고, 학비가 없어서 무식할 수밖에 없었던, 온갖 차별과 편견이 난무했던, 피폐한 이데올로기를 가진 나라의 소시민이었던, 바로 나의 아버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정말 '목숨을 걸 각오로' 살지 않으면 살아내기조차 버거웠던 분들, 그들에게 바치는 성공의 엔솔러지입니다.

무식할 정도의 부지런함, 회사를 종교처럼 떠받드는 믿음, 거기에 학습법을 교묘하게 연결시켜 수험생들에게도 팔려고 하는 출판사의 상술, 그 모든 것들을 상쇄해버리는 명장 김규환의 촌티나는 얼굴-나의 아버지의 얼굴-. 그게 이 책을 욕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나의 아버지에게 드리고 싶은 첫 책, 그러나 그 뜨거운 열정 때문에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분에겐 차마 권할 수 없는 책. 그래서 이 책은 제가 두고두고 읽을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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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과 유진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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껴안아 준다는 것은 두 팔로 감싸서 품에 안다준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금이 작가의 책에서는 '서로 껴안아 주는 것'의 향기가 납니다. 내가 너를 안아주는 것이 아니라 너도 나를 안아주는 것, 그래서 서로 껴안아 주는 것에 대한 평등함과 온기가 느껴집니다.

표지의 두 나무처럼 유진과 유진은, 같은 나이의, 비슷한 고민을 느끼는, 그러나 또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아이들입니다. 소설은 이 두 아이가 번갈아가며 주인공 노릇을 합니다. 한 번은 큰유진이, 그 다음 번은 작은 유진이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주장만 펼치는 것 같은 두 아이의 이야기는, 가만히 들어보면 서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관심과 배려가 담뿍 담겨져 있습니다. 물론 겉으로는 질투도 하고 다투기도 하지만요. 그래서 성폭력이라는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두 아이는 아픈 성장통을 겪으면서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줍니다.

결말까지 읽고 책을 덮고 나니, 소설의 형식조차도 '서로 껴안아 주기'임을 알겠습니다. 큰유진의 이야기를 작은 유진이 껴안아 주고, 작은 유진의 이야기를 큰유진이 껴안아 주고 있다는 걸요. 그렇게 어른들이 주인공일 수 없는 아이들의 사춘기는, 결국 아이들의 힘으로 극복되어지나 봅니다.

'너도 하늘말나리야'보단 훨씬 무게감 있는 분량인 책입니다. 또 그 분량만큼 많은 '장치'들이 밖으로 드러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성장소설임에도 분명합니다. 아이들이 서로를 껴안아 줄 수 있게, 많은 아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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