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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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내게는 감추고 싶은 것이 많았다. 

때가 잔뜩 낀 손톱이라든가, 구멍난 양말처럼 자질구레한 것에서부터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까지, 나라는 존재는 그것 자체가 커다란 하나의 비밀상자였던 것 같다. 나만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나를 누구한테 들킬까봐, 나를 호명하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곤 했다. 그런데 커가면서 내 고민이나 비밀 같은 것들은 모든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갖고 있는 범위 안의 것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좀 안도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물론 달라졌다. 여러 의미에서 나는 성숙해졌다. 하지만 예전의 어린 내가 그리울 때가 있다.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반짝거렸던 삶의 비밀들이 있기 때문이다.

'완득이'를 읽는 내내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성격과 외모, 말투와 배경은 전혀 다르지만, 그 또래의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갖고 있는 범위 안의 것들'에서 고민하고 부끄러워하며 때로는 환호하는 모습이 이 책에는 고스란히 담겨 있다. 완득이의 비밀이 반짝거린다. 그 반짝거림은 내게 익숙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웃고, 울고, 응원했다.

책을 읽으며 우는 일이 별로 없었는데, 이상하게 요 근래 그런 일이 잦아졌다.

나, 아무래도 키가 조금 더 크려나 보다. 완득이도 나도, 지금 스텝 바이 스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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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ersu 2008-04-06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드셨군요! 책을 읽으며 우는 일이 잦아졌다는 것은...^^ 저도 가끔은 반짝거렸던 삶의 비밀들을 간직한 그 시절이 그리워진답니다.
 
마주침 - 아나운서 유정아의 클래식 에세이
유정아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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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내게 아무 것도 아니었다. 늘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갑자기 나를 기습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그것은 소통이었고, 외로움이었으며, 때때로 위로였다.

나는 클럽에서, 거리에서, TV에서, 라디오에서, 그리고 가끔씩 나에게서 음악을 들었던 것 같다. 그것이 음악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랬던 것 같다. 지금와서 생각해보건대, 그것은 그냥 나의 일부가 아니었을까. 그러던 것이 어떤 기회로 조금이나마 정리가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여러 음악가를 알게 되었다. 피아니스트부터 지휘자까지, 먼 타국의 음악가부터 나와 같은 도시의 음악가까지. 같이, 그리고 깊이 호흡하진 못했지만, 그들이 음악이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어떤 일부를 보여주고 싶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전체가 아닌 일부지만 다만 마주치듯이, 스쳐가듯이.

글렌 굴드에게도, 카라얀에게도, 이 글을 읽게 해 준 저자에게도 감사하다고 얘기하고 싶다.

무엇보다 음악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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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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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행위를 하거나, 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내 인생은 어떤 방향으로든 나아간다. 프루스트의 말처럼 그 길은 내가 가지 않은 길이 될 것이며,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길들은 계속 내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 단순한 사실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조금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고, 오해와 갈등으로 헤어지고, 그리고, 그것으로 끝나버린 이야기.

두 사람의 사소한 심리와, 자질구레한 일상과, 살아온 이력과, 그 밖의 불필요한 이야기들이 작품을 모두 채운 듯 했지만, 마지막 두 페이지에서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감정으로 모여들어 폭발하는 느낌이었다.

잊은 채로 평생을 살다가도, 중요한 것은 어째서 삶의 끝에서 다시 그리워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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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2 1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을 읽는 방법 -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 리딩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김효순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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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인의 싯구처럼, 제비 한 마리가 휑뚫린 처마 아래로 지나가듯이 나를 관통한 책이다.

나는 책 속의 무수한 '노이즈'를 사랑한다. 그것은 '남한산성'이 '조선왕조실록'과 같을 수 없고, '책도둑'이 '안네의 일기'와 근본적으로 같을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책에는 수 많은 노이즈가 있고, 그것이 책을 책답게 한다. 바로 그 무수한 노이즈로 독서가의 마음은 뒤흔들린다. 이것이 내가 책을 읽는 이유다.

이 근본적인 이유를 나는 잊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이 다시 나를 가르쳐주었다. 깨달음은,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한다.

책을 몇천 권씩 갖고 있다는 사람들에게, 일 년에 수백 권의 책을 읽는다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는 사람에게 해줄 말이 생겼다.

넌 천 권을 읽어라, 난 행복한 독서를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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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son 2008-03-22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독서가 중요한거 같아요^^*

산도 2008-04-02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포이즌님~~ 포이즌님 반가워요~~
^^
후훗~
음... 이상한 인사를 한듯;;

음.. 행복한 독서가 중요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 더 이상해진 건가요..
 
포스트잇 라이프 (보급판 문고본)
앨리스 카이퍼즈 지음, 신현림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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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잇으로만 대화를 한다? 음... 물론 포스트잇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것이 더 일상적이며 현실적인 대화의 창구이기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요즘의 가족들에게는.

그래서 문제였다. 너무 일상적으로 자질구레했기 때문에, 그리고 한 페이지에 고작 두 세마디가 전부이기도 하기 때문에. '도대체 내가 뭘 읽고 있는거야?'라는 반문이 들 때가 많았다. 하지만 참고 읽었다. 다행히 너무너무 짧은 분량을 자랑하는 책이었으니까!

그리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포스트잇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이기에, 그런 단절감을 지니고 살았었기에, 그리고 그만큼 일상적인 표현들밖에 남지 않았기에, 혼자 남겨진 아이의 쓸쓸함이 순간 몇 십배, 몇 백배로 다가왔다. 고작 작은 포스트잇 한 장일 뿐이었는데.

독특한 시도의 성공이라고 하기에는, 감동의 여운이 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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