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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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의 시공간적 배경은 불멸의 총서 ‘1932년’과 겹친다. 용정과 어랑촌 등 소설 배경지는 김일성 부대가 항일빨치산 투쟁을 벌였던 동만주 지역 중 하나다. 1930년대 동만주는 일본 제국주의와 그에 맞선 조선, 중국 민중이 격돌하는 최전선이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나(김해연)는 만철에 근무하는 조선인 기수(技手)로, 두 힘의 충돌에서 비껴나 있는 ‘제3자’였다. 그런 ‘나’는 정희라는 공산주의자 여성과의 만남과 그의 죽음을 계기로 격돌의 한쪽 당사자에 편입된다.  

이 시기 만주는 한때 공산주의 운동을 했다가 옥중전향한 니시무라 히데하치가 만철에 입사해 또 다른 차원에서 ‘혼을 증명하고’ 있듯이 다른 인간으로 거듭나거나 거듭난 체 하거나, 다른 인간으로 행세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만주에서 뭘 곧이곧대로 믿는 건 바보 아니면 코흘리개’(75페이지)란 말이 있을 정도로 1930년대 만주는 아무도 믿을 수 없고, 때론 자기 자신마저 믿어서는 안되는 불신의 시공간이었다.

1930년대 중국공산당이 내부의 민생단 조직원들을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자행된 조선인 집단살해 사건인 ‘민생단 사건’은 1930년대 만주라는 시공간이 빚어낸 광기의 참극이었다. 내 곁에서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던 혁명 동지가 민생단인지 아닌지, 그를 의심하는 나야말로 민생단일지도 모른다는 불신의 나선(spiral) 속에 수많은 혁명가들이 덧없이 죽어갔다. 중국 공산당과 연대해 반일투쟁을 벌이던 조선의 혁명세력에게 민생단 사건은 혁명을 지속하는데 중대 고비였다.

‘1932년’에 김일성이 민생단 사건을 해결하고 중국과 연대를 회복한다는 기술이 나오지만, 사태의 성격을 감안할 때 김일성에게조차 매우 힘겨운 일이었을 것이다. 한홍구가 해제에 기술했듯이 민생단 사건은 항일유격대 출신의 북한 지도부의 심리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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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 훈련된 외교관의 시각으로 풀어낸 에도시대 이야기
신상목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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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상당수 사람들이 개항시기가 20년 정도 빨랐던 것이 일본과 조선의 운명을 갈랐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간 일본을 지켜보고 공부해온 관점에서 본다면 이건 교정돼야 할 인식이다.

그런 관점에서 '근세'로 분류되는 에도시대의 성격이 좀더 환기돼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시기 일본이 이룬 상업자본주의의 놀라운 성취, 기술축적, 출판문화의 발흥 등을 보면 이미 조선과 엄청나게 격차를 벌려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근대성의 '맹아' 정도가 아니라 묘목 정도가 자라고 있던 시대라고 할까. 현대 일본사회, 경제구조의 원형이 에도시대에 형성됐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국내의 일본관련 출판물들을 보면 메이지유신이후의 일본에 대해서는 책이 제법 있지만 에도시대에 관한 저작들은 별로 눈에 띠지 않는다.
최근 출간된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가 에도시대의 다양한 모습을 다루고 있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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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7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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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집에 굴러다니던 책을 드디어 읽었다사실은 딸이 독서 모임 때문에 먼저 읽은 뒤에 재밌다며 추천해 용기를 냈다카뮈라고 하면 <이방인>을 만화로 읽었을 뿐이고프랑스 문학이라고 하면 어딘지 지루하고 사변적이라는 인상 탓에 책을 잡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페스트>는 생각 외로 재미있었다서사가 빠르고 박진감있게 전개되는 소설은 분명 아니고등장인물과 이 연대기의 서술자가 늘어놓는 사변이 꽤 분량을 차지하기 때문에 다소의 인내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페스트 창궐이라는 소설의 설정과 코로나19가 휩쓸고 있는 지금 상황의 유사성 때문에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책장을 넘길 수 있다.

 도시 곳곳에서 쥐들이 죽어나가는 장면 묘사로부터 소설이 시작되는 장면은 코로나의 창궐 과정을 익히 알고 있는 우리들이 보기에는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그러고 보면 어렸을 적에 가끔 볼 수 있던 쥐가 도시에서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이 쥐들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그러나 페스트에 감염돼 숨진 사람의 숫자가 주기적으로 보도되고바깥으로 통하는 도시의 출입문이 봉쇄되고학교 시설에 거대한 수용소가 마련되는 등의 상황 묘사는 코로나 시대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페스트는 짧게 휩쓸고 사라지는 습격이 아니라 지겹도록 오래 머물러 있었다. (의사 리유가 진료실 건물 계단에서 죽은 쥐를 발견한 것이 416일이고 페스트로부터 해방이 선언된 것이 이듬해 2월이다페스트에 대한 카뮈의 묘사는 벌써 1년 반째 코로나를 겪고 있는 우리들에게 공명한다.

 

무시무시한 불행은 오래 끌기 때문에 오히려 단조로운 것이다그런 나날을 겪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페스트를 겪는 그 무시무시한 나날들이 끊임없이 타오르는 잔혹하고 커다란 불길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차라리 발바닥 밑에 놓이는 모든 것을 짓이겨 버리는 끝날 줄 모르는 답보 상태 같아 보이는 것이다.(236)

 

팬데믹이 너무도 길기 때문에오랑에 사는 이들은 절망에 습관이 들어버린다. ‘절망에 습관이 들어버린다는 것은 절망 그 자체보다 더 나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238)

 

도시는 안정감을 잃었고사람들은 부유한다.

 

이제는 길 모퉁이에서카페나 친구네 집에서 평온하고도 무심한 표정을 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게다가 또 어찌나 따분해하는 눈길인지 시 전체가 마치 하나의 대합실만 같았다.(239)

 

페스트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사랑의 능력을심지어 우정을 나눌 힘조차도 빼앗아 가 버리고 말았다는 사실도 말해야겠다왜나하면 연애를 하려면 어느 정도의 미래가 요구되는 법인데우리에게는 이미 현재의 수간 이외에는 남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239)

 

이 전염병의 창궐에 등장인물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대응한다. 출장왔다가 팬데믹을 겪게 된 신문기자 랑베르는 도피적 태도를, 파늘루 신부는 신의 뜻이라며 체념적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결국 이 재앙에 정면으로 맞서는 반항’(반항은 역자 김화영이 작품해설에서 제시한 어휘다)으로 등장 인물들의 태도가 수렴된다이는 카뮈가 던지는 메시지인데, 예심판사 오통의 어린 아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어가는 장면에서 이 메시지는 뚜렷해진다.

 

그 어린애를 기다리는 영생의 환희가 능히 그 고통을 보상해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그로서는 쉬운 일이겠으나실상은 그 점에 대해서 자기는 아는 바 없다는 것이다사실영생의 기쁨이 순간적인 인간의 고통을 보상해 준다고 누가 감히 단언할 수 있다는 말인가. (292)

 

민음사판 <페스트>의 역자 김화영은 작품해설에서 이제 문제는 더 이상 신의 벌이나 회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악에 대면하여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에 있다고 설명한다.

 

작품의 시대배경은 1940년대다. 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되는 수모를 겪었던 시대다카뮈의 레지스탕스 경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반항은 그로서는 가장 윤리적인 선택이다페스트가 전쟁(독일 침공)의 은유이기도 하다.



출처: https://soidong.tistory.com/1754 [신문기사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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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한국전쟁’들 - 평화를 위한 비주얼 히스토리
푸른역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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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자들은 펜기자와 사진기자로 나뉘는데, 대개의 펜기자들은 사진을 활자 만큼 중시하지는 않는다. 사진은 활자 기사를 뒷받침하는 재료 정도로만 인식된다. (나 역시 그랬다) 1990년대 이후 컬러인쇄가 늘어나고 지면에 비주얼이 강조되면서 사진의 중요성이 커지긴 했으나 이런 관념은 여전하다. 아마 펜기자 뿐 아니라 학자들도 사진보다는 문서자료를 중시해왔을 것이다.
강성현 교수의 <작은 '한국전쟁들'>(푸른역사)은 이런 통념에서 벗어난 의미있는 시도다. 저자는 NARA로 불리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잠자고 있는 수만장의 사진과 영상자료를 활용해 한국전쟁을 '비주얼 히스토리'로 엮어냈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1948년 5월1일 제주 '오라리 방화사건'이다. '폭도'들이 오라리 마을을 공격해 방화하고 주민을 학살했던 것으로 알려진 오라리 방화사건은 제주도에 대한 군경의 무력진압을 본격화하는 신호탄이 됐다.
당시 미군이 제작한 <한국의 메이데이 : 제주도> 영상을 보면 자수한 '폭도 살인범'과 그들의 '살인무기'가 활자가 풍기는 흉포함에 비해 얼마나 초라하고 빈약한지를 보여준다. 영상은 또 오라리 마을에서 (폭도들의 방화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면과 마을로 진입하는 경찰기동대 모습을 교차 편집해 보여준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면을 비행기를 띄워 촬영했을 정도니 꽤나 공들인 영상물인 셈이다. 이 영상물은 주한미군 제24군단에 배속된 123통신사진파견대가 제작했다고 한다.
오라리 방화사건은 사흘전인 4월28일 김익렬 국방경비대 9연대장과 무장대 대장 김달삼간의 '평화협정'을 무력화시켰다. 오라리 사건을 미군이 공들여 영상으로 제작한 것은 군의 강경진압을 정당화하려는 의도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제주의 비극은 기획된 혐의가 짙다.

책 46쪽의 스틸 사진속 2명의 '폭도'들은 과연 폭도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구부정하고 초췌한 모습이다. 활자가 실상과 얼마나 동떨어질 수 있는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실제로 오라리 사건은 1989년 <제주신문> 취재결과 경찰의 사주를 받은 우익 청년단이 마을에 불을 질러 일어난 사건인 것으로 확인됐으니 이 두 사람은 폭도 누명을 쓴 민간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전쟁 뿐 아니라 당국의 공식 발표로 작성된 전쟁사에는 수많은 진실이 가려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귀환포로들의 사연도 흥미롭다. 한국전쟁에서 '포로'라고 하면 이승만 대통령의 기습석방 조치로 풀려난 '반공포로'들만을 떠올리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북한에 억류돼 있던 7862명의 귀환포로들은 1953년 8월5일부터 9월7일까지 판문점 자유의 문을 통과해 남쪽으로 내려왔다.귀환포로들은 내려오자마자 입고 있던 상하의를 다 벗어던지고 팬티만 입은 채 태극기를 흔들었다. 북에 있는 동안 '빨간물'이 들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한 안간힘이다.

그런데 이 포로들은 전원 서울과 인천을 거쳐 LST(상륙함)을 타고 한반도 남쪽 섬으로 향했다고 한다. 한산도 아래에 있는 용초도(현재 이름은 용호도)란 곳이다. 본래 이곳에는 거제도에서 이송돼온 북한군 포로들이 수용돼 있었다.
귀환포로들은 이곳에서 갑을병으로 분류된다. 갑과 병은 재복무나 제대 조치된 반면, 을종은 처단됐다고 한다. 즉결처형 됐다는 설도 있다. 천신만고 끝에 조국으로 귀환한 포로들이 사상 검증대 앞에서 다시 발가벗겨졌고, 더러는 빨갱이로 몰려 죽어간 것이다.

강성현 교수가 2015년 현지에서 만난 주민(당시엔 인근 섬으로 소개됐던)들은 용초도에서 '김일성장군의 노래'가 들리기도 했고, 밤이 되면 총소리가 들렸다고 회고했다. (물론 남한으로 돌아간 귀환포로들만 고초를 겪은 것은 아니다. 북한으로 돌아간 인민군 포로, 중국으로 돌아간 중국인민지원군 포로도 마찬가지 신세였다)

귀환포로들이 용초도에 갇혀 있던 사실을 아는 이들은 대체 얼마나 될까. 귀환포로 문제는 한국전쟁의 또다른 흑점이다. 지옥섬에 갇힌 그들의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사실을 지금에서야 알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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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여자 1 - 20세기의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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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선생 추천으로 읽은 <세 여자>.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 격동의 근대사를 온 몸으로 살아냈다는 표현이 어울릴까. 암튼 내 형용력으로는 한계인 듯. 한번 잡으면 식음을 전폐하고 읽게 된다.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가 정연하게 정리되는 건 덤. 일단 너무 흥미진진하다.
저자는 등장인물에 관한 역사기록을 기본으로 했고, 그 사이사이를 상상력으로 메웠다고 했다. 역사기록에 반하는 상상력은 자제했고 '소설'이 '역사'를 배반하지 않도록 주의했다고 했다.
근데 워낙 빈틈없이 메워놔서 자칫 이 전체를 역사로 읽는 이들이 있지 않을까가 살짝 걱정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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