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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경제에는 두 가지 신호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외국의 경제 전문가들이 한국 경제에 대해 호평을 늘어놓고, 주식시장도 과열이 우려될 정도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4월 실업자 수가 100만 명이 넘어갈 것이라는 기획재정부 장관의 경고가 나오는가 하면, 하반기 경기가 다시 침체 기미를 보이며 더블딥(Double dip)이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경제에 대한 신호가 이처럼 혼재한 것처럼 보이지만 둘 다 한국 경제의 실제 모습이다. ‘동전의 양면’ 혹은 ‘야누스의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이 현상의 근저에는 ‘지나치게 많이 풀린 돈’이 자리잡고 있다. 
 

■한국 경제의 체력은 좋은가
한 나라의 경제 상태를 가장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은 환율이다. 한국은행 김성 과장은 “한 나라의 경제에 대한 평가는 결국 돈으로 바꿀 때 비율로 나타난다”며 “평가가 좋으면 높은 비율로 쳐줄 것이고, 낮다면 디스카운트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환율 급등(원화 가치 폭락)의 이유도 따지고 보면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고유가 등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되고, 자본수지마저 나빠졌다. 이명박 정부가 초기에 수출 대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고환율 정책을 쓴 것도 작용했다.
하지만 환율은 지난해 한때 1500선을 넘어 고공행진하다 최근 들어 1260원대로 떨어지며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달러화에 대한 원화의 강세는 최소한 한국 경제가 미국에 비해 회복 속도가 빨라지고 있고, 세계 주요국 가운데서도 상대적으로 나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뜻한다. 한국의 원화가 기축통화, 혹은 중국의 위안화처럼 역내에서 통용될 정도의 힘이 없기 때문에 치러야 하는 할인율까지 감안한다면 흐름이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환율 한 가지로는 경제 체력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다. 환율 안정은 외국인의 국내 주식투자가 늘어나는 것과 상관관계가 크기 때문이다. 외국인의 주식투자가 늘어난 것은 한국 기업들을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이긴 하지만 경제의 주체는 기업만이 아니라, 정부와 가계도 포함되느니만큼 주식시장만으로 전체 경제 상태를 파악하는 데 무리가 있다.   
이런 이유로 경제 분야에서 흔히 쓰는 용어인 ‘펀더멘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제 기초 여건’으로 풀이되는 펀더멘털은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실업률, 경상수지 등 주요 거시 경제지표들의 상태를 가리킨다. 경제성장률은 알다시피 바닥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분기 성장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마이너스 4.3%를 기록했다. 3월 취업자 수는 2311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9만5000명 감소해 10년 만에 최악의 수준을 보였다. 3월 경상수지는 66억5000만 달러로 사상 최대 흑자를 보였지만 수입이 수출보다 더 큰 폭으로 줄어서 생긴 ‘불황형 흑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상승하고 부동산 시장이 꿈틀거리는 것은 시중에 풀린 800조 원의 유동성 때문이다. 지난해 금융 위기가 발생하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파격적으로 내렸고, 정부도 대규모 재정지출을 하면서 시중에 자금이 많이 풀렸다. 이 돈들이 생산적인 투자로 흐르지 않고, 자산시장에서 거품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요약하면 자산시장으로 불리는 주식·부동산 시장은 풀린 돈의 힘으로 활황세를 보이고 있을 뿐 실물경제 회복은 아직 불투명하다.
7일 청와대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경제연구기관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논의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경제의 봄기운을 느낄 수 없다. 참석자들은 경기 회복 강도가 미약하고, 대외 여건이 불확실해 경기 회복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정부의 확장적 거시정책 효과를 제외한 민간의 자생적인 경기 회복력은 아직 미흡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다시 말해 정부가 재정 적자를 감수하고 대규모로 자금을 풀어 실물경기를 부축해야 간신히 경기가 굴러가는 정도라는 것이다.
실제로 기획재정부의 분석에 따르면 2007년과 2008년의 성장률을 합한 평균이 3.7%인데 이중 정부 부문의 기여도는 0.6%포인트였다. 하지만 올 1분기 성장률 마이너스 4.3% 중 정부 부문의 기여도는 1.5%포인트에 이르고 있다. 정부가 재정집행을 하지 않았다면 올 1분기 성장률은 마이너스 5.8%로 내려갔을 것이라는 뜻이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자동차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이 파산할 가능성, 석유와 원자재 가격의 불안 요인이 상존하고 있다는 점도 위험 요인으로 거론됐다. 급등했던 환율이 내려가면서 우리 기업의 가격경쟁력이 나빠지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하반기 글로벌 경기 회복은 가능한가.
최근 영국 정부는 연소득 15만 파운드(약 3억 원) 이상인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을 40%에서 50%로 인상하기로 했다. 이는 세계 주요국이 금리인하와 재정 확대라는 ‘양적 확대’ 정책으로 경기 회복을 꾀하고 있지만, 그 반작용으로 재정 이슈가 등장하고 있음을 뜻한다. <파이낸셜타임즈>는 영국의 재정 적자 심화와 국채 발행을 통한 경기 부양 재원 조달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움직임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면 소비가 줄어들면서 글로벌 금융 위기 공조화로, 간신히 안정권에 접어든 시장이 재차 균열될 수 있다. 또 한국 경제가 상반기 대규모 경기 부양으로 경제를 떠받친 뒤 하반기쯤 가시화될 선진국의 경기 부양 흐름을 탄다는 전략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선진국 공조화된 경기부양책이 재정 이슈 탓에 기대 이하로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며 “상반기 집중된 재정 지출로 하반기 정책 공백 상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기 회복 기조 유지가 어려운 여건에 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에서 글로벌 경기 회복의 지연은 우리 경제에 치명타를 안겨줄 수 있다. 지난해 국내 경제의 무역의존도를 나타내는 명목 국민총소득(GNI) 대비 수출입 비중이 110.6%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GNI 대비 수출입 비중이 높다는 것은 우리 경제의 내수 부문이 취약하고, 대외의존도가 그만큼 높다는 것을 뜻한다.
다만 지난해 미국의 투자은행인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에 맞먹는 글로벌 시스템 위기는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은행의 파산은 제조업체 수십 곳이 동시에 쓰러지는 것에 맞먹는 충격을 안겨준다.
우리투자증권 강현철 투자전략팀장은 “미국 현지의 분석가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리먼 브라더스를 파산시켰던 것에 대해 정책당국자들 내부에서 비용만 더 키우는 ‘정책 오류’였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며 “은행 파산과 같은 형태의 충격은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 경기 침체가 ‘관리 가능한’ 범위에 있다면 한국 경제는 길고 더디지만 회복세로 돌아설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그 시점은 아직 가늠하기 힘들고, 하반기 회복 여부도 장담하기 힘들다.  

2009-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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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한국 경제위기 진단 이동걸 금융연구원장

세계 금융위기와 실물경기 침체로 국내 경제가 난관에 봉착했다. 내년 세계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국내 경제성장률도 2%대로 낮아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감세와 부동산 경기부양 등 '대증요법식 처방'에만 매달리며 시장과 국민들의 신뢰를 잃고 있어 우리 경제가 어디까지 추락할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동걸 금융연구원장은 지난 17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국내 경제는 유동성에 어려움이 있었을 뿐 진짜 위기는 시작되지 않았다"며 "내년에 가계와 중소기업이 무너지고, 금융기관의 부실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면 진짜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원장은 정부가 부실 기업에 대한 '옥석가리기'는 외면한 채 자금 공급에 치중하는 것에 대해 "마치 동맥경화 환자에게 수혈하는 격으로 자칫 혈관이 터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와 여당이 금융규제 완화 법안의 강행처리에 나서고 있는 데 대해서는 "규제완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이 강등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인터뷰 도중 '어떨 땐 미네르바였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한국 경제가 붕괴할 수도 있다" "경제 걱정으로 잠이 오지 않을 때가 많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올해 우리 경제가 휘청거렸던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사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부실 사태가 이렇게 큰 파장을 불러올 줄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국내 금융기관들이 외환위기 이후 건전성을 어느 정도 확보했다고 보고, 안이하게 대응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재무 건전성은 좋아졌지만 양극화로 경제전반의 펀더멘털(기초여건)은 나빠졌습니다. 경제위기를 맞아 정부의 지원이 주로 대기업에 몰리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경제 전체가 위기의 충격을 흡수하지 못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일각에선 정부의 경제정책이 일본이 장기불황을 겪을 때와 유사하다고 지적합니다.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기업에 대한 '옥석가리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과정 없이 자금지원만 하면 경제회복이 더뎌지게 됩니다. 경쟁력을 회복하지 않으면 장기불황으로 갈 수도 있는 것이죠. 일본은 그래도 제조업이 강해 빈사상태로도 10년을 버텼지만 우리 중소기업들은 경쟁력이 없으니 붕괴할 수도 있습니다."

-정부가 부동산 경기부양에 필사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경기를 나락으로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가 재정을 적극적으로 풀어야 하겠지만 건설업에 집중적으로 자금지원을 해서는 안됩니다. 국내 건설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선진국보다 2%포인트 이상 높습니다. 부동산 경기부양을 통해 다시 거품을 키우는 악순환으로 빠져드는 것보다는 다른 경제부문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합니다. 지금 정부의 정책을 보면 한가하고 여유로워 보입니다. 정부는 시장의 비판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지만 시장의 경고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시장 불만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시장이 뭘 모른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금융시장 상황은 일시적으로 호전된 느낌입니다.
"경제위기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금융시장이 다소 안정세를 보이고 있으니 위기상황에서 벗어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실물경제가 침체되면 진짜 금융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정부는 구조조정 대신 대기업과 건설업에 자금 지원을 집중하면서 대증요법식 처방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유동성 부족 사태는 다소 진정됐지만 신용경색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빈혈상태는 벗어났지만 동맥경화를 겪고 있는 셈이지요. 빈혈 때는 수혈을 하면 되지만 동맥경화에 걸렸을 때 수혈을 하면 혈압이 올라가 터질 수 있습니다. 무차별적으로 돈을 풀면 효험도 없고, 부작용만 나게 됩니다. 헬기로 돈을 마구 뿌려대면 알아서 필요한 곳으로 돈이 흘러가겠지 하는 발상은 위험천만한 것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와는 경제위기의 진행 양상이 달라 정부가 구조조정에 나서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외환위기 당시 대기업은 무너지는 게 눈에 보였고, 구조조정 대상도 명확했습니다. 지금은 무수한 중소기업들이 넘어지고 있지만 제대로 파악하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구조조정이 어렵다고 해서 정부가 자금을 무차별적으로 지원한다는 인상은 주지 말아야 합니다. 경기부양책도 신중하게 추진해야 하고, 금융기관이 옥석을 가릴 수 있게 인센티브를 줄 필요도 있습니다. 감세 여력이 있다면 그 돈으로 신용보증기금을 10조원가량 늘리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만 100% 보증해주지 말고, 90%가량만 보증하도록 해 은행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이 단행될 때는 산업은행이 시중은행을 이끌었는데 최근에는 정부가 산업은행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노하우를 가진 산업은행이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은행의 자산건전성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도 '포워드 룩킹(Forward Looking)' 같은 제도의 도입이 필요합니다. 기업 대출자산에 대한 평가를 기업의 미래가치를 반영해 판단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은행들이 장래성 있는 기업에 대한 대출을 늘릴 수 있게 됩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이 금융규제 법안의 강행처리에 나서고 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가장 큰 교훈은 위험관리를 과신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위험을 관리할 수 있으니 사전적으로 규제를 다 풀고 사후에 규제하면 된다고 생각하다 선진국 금융이 무너진 것입니다. 정부가 자본시장통합법 제정과 보험업법 개정으로 증권사와 보험사에 지급결제를 허용해주고, 금산분리 완화로 대기업의 은행 소유를 허용하면서 사후규제로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는 정말로 위험천만한 발상입니다. 정부가 금융규제 완화를 강행한다면 5~10년 뒤 또 한 차례 금융위기가 닥칠 수 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이 이런 법안들을 '개혁입법'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금융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금융규제 완화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하면 국가 신용등급이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정부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한마디로 선수들이 없습니다. 목표를 정하면 아이디어가 나오게 마련인데 정부는 의견수렴을 할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금융조직 개편도 실패작입니다. 국내 금융정책은 기획재정부로 옮기고,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합치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정부는 위기를 위기로 보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관성 있게 대책을 내놔야 시장이 따라 가는데 지금 상태로는 안됩니다. 내년에 경기침체가 본격화되고 가계와 중소기업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사태는 달라집니다. 금융기관 부실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고, 신용위험이 커지면서 대외신인도가 하락하면 진짜 외환위기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올해는 금융위기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현상으로 인해 외국인들이 한국시장을 빠져 나갔다면 내년에는 한국경제 자체가 위험하기 때문에 탈출할 가능성이 커 전혀 차원이 다른 경제위기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정부가 내년 성장률 목표치를 3%로 잡았습니다.
"현실이 그렇지 않은데도 정부가 무리하게 성장률 목표치를 잡으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정부가 위기를 위기라고 확실하게 인식하고, 위기관리에 들어가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보다 '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를 더 믿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떨 땐 미네르바처럼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이야기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미네르바가 등장하게 된 것은 정부가 시장에 신뢰를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최근 들어 정보를 차단할 뿐 아니라 건전한 의견마저 용납하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보를 독점하고 통제하려 하면 위기극복을 위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습니다."

△ 이동걸은 누구

1953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예일대에서 금융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내 금융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이자 정책경험도 풍부한 전문가이다. 금융연구원·한국개발연구원(KDI) 등 연구기관을 거쳐 김대중 정부 초기인 98년 청와대에 들어가 금융정책 입안에 참여했다. 노무현 정부 초기인 2003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대기업 경영투명성 강화를 위한 증권 집단소송제 도입을 주도하는 등 재벌 개혁에 주력했다.

이 원장은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 분리)와 생명보험사 상장 등 주요 금융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소신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2004년 금감위 부위원장에서 물러나자 삼성생명 상장에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지난해 금융연구원장으로 취임한 뒤 국내 금융계가 잘되려면 '이헌재 사단'이 청산돼야 한다는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2008-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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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 2009-05-11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아까운 인물인데...마우스 정권에서 버티질 못하고..
 

 지난 40여년간 우리 사회가 좌표로 삼았던 나라는 미국이다. 사회구조가 비슷한 일본의 성장경험을 서둘러 좇으면서도 시선은 늘 태평양 건너편을 향하고 있었다. 
 이런 편향은 외환위기 이후 더 심해졌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경제관료들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 일본 법령이나 제도를 참고하곤 했지만, 외환위기 이후에는 이런 일이 사라졌다. 참여정부 때는 '아메리칸 스탠더드'를 곁눈질할 게 아니라, 아예 송두리째 본받자며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로 찬란해 보이던 미국의 경제제도는 긴 꼬리를 끌며 어둠 저 편으로 사라질 처지가 됐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영향력은 예전과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축소됐고,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시장근본주의의 구각(舊殼)을 깨기 위해 팔을 걷고 있다.

 우리도 새로운 좌표를 찾아나서야 할 처지가 됐다. 하지만 정부 관료들은 낡은 좌표를 버리려 하지 않는 것 같다. 금융위기와 경기침체 이후 한국 경제가 어떤 틀과 내용을 갖춰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최근 정책을 보면 고민의 흔적이라고 할 만한 게 엿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부동산 경기부양, 감세와 규제 완화, 영리병원 허용 등은 친재벌·부유층 정책이기도 하지만 미국에서 이미 실패로 드러난 정책이다.

 왜 관료들은 실패한 '미국식 프레임'을 답습하려는 것인가. 임금을 깎고 비정규직을 늘려 '덜 받으며, 더 노동하는' 식으로 혹여 경제가 살아나더라도 삶의 질과 무관하다는 걸 모르지는 않을 텐데.
'루저(Loser)'들은 죽거나 말거나, 성장률이 오르고 기업이 잘되면 그걸로 족하다는 것인가. 두 동강난 사회를 보듬는 '국민통합형 경제정책'은 우리 여건상 더는 가능하지 않다고 보는 걸까.
수십년간의 '관성' 때문에 내친 걸음을 멈추지 않는 걸까. 아니면 정권이 그어놓은 선을 넘지 않으려다 보니 사고가 마비된 것인가.

 전대미문의 위기라는 지금 관료들의 권한과 책임은 더 막중해졌다. 시장이 실패했으니 정부에 힘이 쏠리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다. 최근에 만난 한 경제원로는 "관료는 창의력과 상상력이 풍부한 예술가가 돼야 한다"고 했다. 보수·진보의 도식이나 선입견에 구애받지 말고 필요하다면 좌파정책도 갖다 쓸 줄 아는 소신을 갖춰야 위기를 헤쳐갈 관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감세로 재정건전성이 위협받고 있는데도 집이 세 채가 넘는 부동산 부자들의 세금을 깎겠다거나, 파업이 없어야 자동차 세제지원을 하겠다는 볼썽사나운 정책이 속출하고 있다.  

 관료들이 좀더 폭넓은 시각에서 치열하게 우리 경제의 대안을 고민했으면 한다. '가지 않은 길'에서 지혜를 얻을 줄도, 생각이 다른 이들에게 말을 걸 줄도 알아야 한다. 위기의 시대에 타성으로만 움직이는 관료들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 한때 대한민국을 이끌어간다고 자부하던 그들 아닌가.
2009-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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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 소녀 로제타는 공장에서 해고된 뒤 와플 한 조각과 수돗물로 허기를 채우며 온종일 일거리를 찾아 헤매는 나날을 보낸다. 그런 로제타를 좋아하는 와플가게 종업원 리케는 어느날 로제타의 저녁거리로 물고기를 잡는 일을 돕다 저수지에 빠진다. 그녀는 물에서 허우적거리는 그를 놔둔 채 숲으로 도망친다. 그가 죽으면 그의 일자리를 차지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녀는 망설임 끝에 되돌아가 리케를 살려 내지만, 그가 와플을 몰래 빼돌려 판다는 사실을 와플가게 사장에게 일러 결국 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

 벨기에의 다르덴 형제가 한 청년 실업자의 가혹한 삶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은 영화 < 로제타 > 의 한 장면이다. 관객들을 시종일관 불편하게 만드는 이 영화는 1999년 칸영화제에서 그랑프리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청년 실업의 심각성을 고발했다.

 < 로제타 > 의 '울림'은 컸고 마침내 벨기에는 이듬해인 2000년 청년고용 대책인 '로제타 플랜'을 시행한다. 50명 이상을 고용하는 민간기업은 고용인력의 3%에 해당하는 일자리에 청년실업자를 의무적으로 채용하도록 했다. 이를 어긴 기업에 대해 1명당 74유로의 벌금을 매일 부과했고, 의무를 이행한 기업에는 고용인원에 대한 첫해 사회보장 부담금을 면제해 줬다.

 지난 1월 < 대통령과의 원탁대화 > 방송토론에서 패널로 나선 조국 서울대 교수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로제타 플랜을 제안했다. 조 교수는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인턴정책이 청년실업 유예정책에 불과함을 지적하며 이야기를 꺼냈지만 대통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한국에서는 '잡셰어링(일자리 나누기)'이 대대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제2의 금모으기'라는 찬사까지 나왔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늘리기보다는 임금 삭감이 핵심목표가 되고 있다. 일자리 공유를 위해 노·사·민·정의 대타협을 발표한 지 얼마 안돼 대졸 초임을 최대 28%나 깎는 삭감안을 내놨지만 일자리 대책은 쏙 빼놓은 전경련의 태도가 이를 말해준다. 잡셰어링도 '기업 프렌들리'라는 가이드라인을 넘지 못한다. 잡셰어링을 통해 기업들은 노동비용을 깎는 절호의 찬스를 맞이한 셈이다. 근로시간을 줄여 고용을 늘리고, 남는 시간을 교육훈련으로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이 이명박 정부하에서는 '불온한 발상'일 뿐이다.

 일자리를 잃은 로제타의 일상은 이미 양심과 이성으로 설명될 수 없다. 물에 빠졌을 때 왜 도망쳤느냐는 리케의 물음에 "일자리 때문"이라고 말하는 로제타에게 연애감정은 사치일 뿐이다.

 이미 우리 사회엔 로제타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올 봄이면 고교와 대학에서, 직장에서 또다른 로제타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들에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양심과 이성을 지키라고 누가 충고할 자격이 있을까. 상위 1%를 위해 전력투구하는 정부와 사람값을 깎는 데 혈안이 돼 있는 기업들이 버티고 있는 이 나라에서.
20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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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나온 참석자들의 발언이 두고두고 원성을 사고 있다. MB(이명박)정부 인사들의 '4차원성' 발언이 한두번은 아니었지만 국무회의 발언들 역시 압권이었다.

 2008년 12월30일 청와대에서 열린 이 회의에서 한승수 국무총리는 "과거에는 정상들이 외국에 나가면 조마조마할 때가 있었는데 이 대통령은 대외관계를 잘하기 때문에 자랑스럽고 나라로서도 복된 일"이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덜컥 개방하고, 남북관계를 10년이나 후퇴시켜 놓은 대통령을 두고 대외관계를 잘한다니.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제가 아마 과거 왕조시대의 호조판서를 포함해서 역대 재무 책임자 중 가장 돈을 많이 써 본 사람일 것이다. 올해는 정말 원없이 돈을 써봤다"고 말했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돈을 최대한 풀었다는 정도로 좋게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민심이 어떤 상황인지 헤아렸다면 말을 가렸어야 했다. 강 장관에게는 위기로 치닫고 있는 국민경제에 대한 책임감이나 사명감보다는 막대한 재정집행 권한을 휘둘러봤다는 만족감이 더 크게 느껴졌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하긴 지난 한해 국민들은 MB진영 인사들의 더 어처구니 없는 말들을 들어야 했다. 연말 방송들은 한·미 쇠고기 협상 대표였던 민동석 전 농림수산식품부 농업통상정책관이 쇠고기 협상 결과를 추궁하던 한 야당의원에 대해 "선물을 줬다면 우리가 미국에 준 게 아니라 미국이 우리에게 준 것"이라며 태연히 맞받던 모습을 방영했다.

 위험관리를 과신하지 말라는 게 글로벌 금융위기가 가져다준 가장 큰 교훈인데 여권은 아랑곳없이 금융규제 완화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고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이 법안들에 '개혁'이란 수식어를 붙여 부르고 있다. 한 금융권 인사는 "(배웠다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걸 보고 있으면 소름이 끼친다"고 했다.

 MB인사들의 막말들이 횡행하는 동안 국민들은 말할 자유와 권리를 빼앗기고 있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는 지난해 말 절필을 선언하며 "나는 닭은 닭이라고 하고 고양이를 고양이라고 한 거밖에 없다"며 권력의 압박에 마지막 일침을 놓았다. 사이버 모욕죄가 도입되면 '입바른 소리'들은 다음 아고라 같은 인터넷 공간에서도 사라져 갈 것이다.

 연말에 만난 한 공무원에게 MB정부에서 1년을 보낸 소감을 묻자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며 피해갔다. 올해부터는 국민들도 '영혼'을 빼앗기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 방송법을 강행처리하고 인터넷에 재갈을 물리려는 여권의 시도를 보면 그렇게 될 개연성이 높다. 정권이 뻔한 거짓말을 늘어놔도 틀렸다는 말도 할 수 없는 사회로 바뀌고 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얼마전 MBC에 대해 '정명(正名)'이 무엇인지 스스로 돌아볼 시점이라고 말했다. 대체 누가 누구에게 할 말인가. 이 정권의 화법에 연초부터 울화가 치민다. 
20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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