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번역한 외국 책들만 읽어서 요며칠 한국문학을 읽기 시작했다. 2017년에 나온 책 가운데 반가운 마음에 사두었던 <한국현대희곡선>과 저렴한 가격에다가 굿즈에 끌려서 사두었던 <웃는 남자> 이 두 권이다. <한국현대희곡선>은 매일 희곡 한 편씩 읽고 있다. 지금까지 4편을 읽었다.

'토막'_유치진 / '산허구리'_함세덕 /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_오영진 / '불모지'_차범석 이렇게 4편.

수록 작품들은 뭐, 하나 같이 우리나라 현대 대표 희곡인지라 역시 잘 썼다, 감탄하면서 읽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읽은 작품들이 모두 묘한 공통점이 있다. 시대 배경이 그래서 그런 탓일지도 모르는데 몇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가난/가족/밑바닥 삶/부재하거나 제 능력을 상실한 장남/ 가족의 몰락' 거의 이렇다.

가난에 허덕이거나 가난하지 않더라도 결국 몰락하는 집안과 그 가정을 배경으로 하고 그 집안의 맏이는 거의 아들인데, 이 장남들은 끌려갔거나 유학 갔거나 소식을 알 수 없거나 등등 가족 내에서 사라진 상태이고, 그 어머니들은(또는 가족은) 장남의 부재를 고통으로 여기고 이제나저제나 소식을 들을까 기다린다. 이런 상태가 아니라 장남이 가족과 함께 있더라도 전쟁터에서 돌아와 일자리를 얻지 못한 채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제 구실을 못한다('불모지'). 그러다 결국 가족을 파멸로 몰아간다. 고집스럽고 융통성 없는 아버지- 돌아오지 않는 장남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어머니, 또는 제 구실을 못하는 장남을 안쓰러워하는 어머니-그리고 주변인과도 같은 나머지 자식들. 아버지와 장남의 가부장제가 어떻게 표현을 달리하느냐의 차이지 거의 희곡 4편의 중심을 이룬다.

하루에 한 편씩 읽으니까 망정이지 만일 앉은 자리에서 계속 이 책을 다 읽으라면 숨이 막힐 것 같다.

어젯밤 집어든 <웃는 남자>도 한몫한다. 늦은 밤에 읽기 시작했던 터라, 좀 긴 편인 황정은의 '웃는 남자' 대신 김숨의 '이혼'부터 읽었다. 하...... 새벽 1시 넘어서 이 작품 읽다가 가슴을 턱턱 쳤다. 하 답답하다.

이혼을 준비중인 여자의 관점으로 이혼을 했거나, 하려고 하거나, 할 뻔했던 여자들의 삶이 묘사된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남자들이- 특히 주인공의 아버지- 하나 같이 개썅놈인 거라.......... -_- 아 욕나와. 너무나도 폭력적인 아버지는 주인공의 엄마를 하루가 멀다하고 두들겨패고, 그런 엄마를 대신해 이혼 서류까지 만들어 오지만, 엄마는 이미 뭔가를 잃어버려서 자신이 이혼을 하고 싶은 건지, 아닌지조차 판단을 못한다. 그 주인공은 이제 자신의 남편과 이혼을 준비 중인데, 이 쌍놈이 하는 말이 가관이다. 주인공은 시인인데, 그런 그녀에게 이 따위 말을 한다.



"네가 날 버리는 건 한 인간의 영혼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므로 앞으로 네가 쓰는 시는 거짓이고, 쓰레기야."



하....... 뭐 이런 ㅂ ㅅ 같은 놈이 다 있지?



'이혼'의 주인공은 부모에 이어서 자신 또한 이혼을 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리고 거의 모든 문제는 남자들에게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이 세계가 정말 그럴까? 정말 그렇게 단순할까? (왠지 모든 작품이 다 이럴 것 같아서 <현남 오빠에게>는 읽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새벽 1시 40분이 다 되어서 다음 작품은 읽지 않고 책을 덮었다. 아니, 더 못 읽겠어서 덮었다.

아, 한국문학........ 가족, 가족, 가족, 가부장, 가부장, 가부장....... 가족 안에 갇힌 세계.....

한없는 답답함을 느끼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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