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가난으로부터 구할 것인가
피터 싱어 지음, 함규진 옮김 / 산책자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피터 싱어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 The Life You Can Save>는 한마디로 세다. 거침없다. 읽는 내내 죄책감이 든다. 양심이 찔린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와 같은 분류에 속하면서도 여태까지 나온 이런 책들과는 조금 다르다. 기존의 책들이 읽는 이로 하여금 ‘아… 마음 아프다.’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면 이 책은 ‘앗! 이럴 수가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되겠다! 뭐라도 빨리 해야지.’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보통 사람은 자기 눈앞에 물에 빠진 아이가 있다면 그리고 그걸 목격한 사람이 나 혼자뿐이라면 당장 그 물에 들어가 아이를 구할 것이다. 아이가 물에 빠져 죽어가는 걸 목격하고도 수수방관한다면 자기 자신을 용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주위에서도 그 사람을 엄청 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저 멀리 아시아나 아프리카, 중남미에서 하루에도 수많은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나 몰라라 한다. 눈앞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그 누군가가 도와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피터 싱어는 그런 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의 아이가 소중하다면 남의 아이도 소중하다. 나의 아이뿐만 아니라 남의 아이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 인간에게 있어 기부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다. 당신이 지금 쓸데없는 사치품을 사는데 쓰는 돈으로 몇 명의 아이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 당장 ‘기부를 하라!’ 많이 버는 사람은 많이 버는 만큼 적게 버는 이는 적게 버는 만큼 ‘무조건 기부를 하라!’고.

첫 장을 들추면서부터 마음이 불편했다. 저자는 잘사는 국가에서 수돗물을 놔두고 생수를 사먹는 행위도 사치라고 본다. 음료수를 사먹는 것도, 콘서트를 가고 영화를 보고 등등 문화를 즐길 돈이 있으면 그 돈으로 기부를 하라고 다그친다. 읽다 보면 ‘아, 정말 내가 쓸데없는 소비를 많이 하지.’라고 생각을 하다가도 살짝 반감이 들기도 한다. 기부를 하자고 내 삶의 즐거움을 다 포기해야 하나? 아니지, 내 즐거움을 조금 줄이면 다른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데? 하지만, 왜 나만? 나보다 더 부자들도 기부를 안 하는데? 내가 왜? 이런 생각들.

이런 생각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터 싱어는 기부를 왜 해야 하는지부터 기부를 잘 하려면 어떤 단체에 해야 하며, 자기 수입에 비례해서 얼마큼의 기부를 하는 게 좋을지 조목조목 짚어준다. 즐거움을 위한 소비를 하는 이들에게 저자는 물론 이렇게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맵시 나는 옷을 입고, 훌륭한 음식을 먹고, 고급 스테레오로 음악을 듣는 일에서 큰 기쁨을 느낀다. 나는 그 기쁨에 반대하지 않는다. 같은 값이면 최대한 기쁨을 누리며 살라. 그러나 나의 주장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거나 극심한 고통을 막을 수 있는 데도 그런 ‘가치 있는 것들’에 돈을 쓰는 일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201쪽)

저자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기부할 것을 종용한다. 나중에 돈을 좀 벌어서 하겠다고 생각하면 이미 늦었다고 한다. 그 사이 아이들은 매일 죽어가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부자들이 사치를 부리는 행위도 비난한다. 물론 그들도 기부금을 내기는 하지만 저자는 그들 소득에 비해 한 없이 부족한 액수라고 일침을 가한다. 미국인들이 기부를 많이 한다고 하지만 그 기부금은 대체로 교회와 같은 종교단체로 들어가는 일이 많고, 미국 정부 역시 기부금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정말로 필요한 국가의,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부금을 주기보다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굶어 죽지는 않는 사람들에게 원조가 되고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한국에서도 기부를 한다며 교회 등 종교단체에 기부금을 내거나 대학교 장학금으로 돈을 내는 경우가 많은데, 그 보다는 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도 죽어가고 있는 저 먼 나라의 아이들에게 기부를 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솔직히 나는 종교단체나 대학교에 기부하는 것만큼 아까운 돈이 없다. 평생 김밥을 팔아 몇 십억을 모은 할머니가 자신이 못 배운 게 한이 되어 돈이 없어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쓰라며 전액을 대학교에 장학금을 냈다는 이런 기사를 보면 ‘아 그 돈을 굶어 죽어 가는 애들을 위해 쓰면 더 좋으련만’ 싶어진다. 피터 싱어도 그렇게 이야기 한다. 종교단체나 자기 지역의 발전을 위해 기부금을 내기 보다는 당장 죽음 앞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잘 사는 국가에서는 가난한 나라에 원조를 하는 것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기부하는 행위에 의문을 품기도 한다. 빈곤 국가가 가난한 것은 그들 책임이라며 기부할 의무가 없다고까지 이야기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부유한 국가가 부유해지기까지는 가난한 나라의 풍부한 자원이나 값싼 노동력 덕을 본 경우가 많다. 게다가 온실효과 등 선진국의 산업화로  피해를 보는 이들은 결국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다. 선진국이 ‘우리는 빈곡 국가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닌 것이다. 저자는 ‘우리는 우리가 한 행동이 우리가 사는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평가하고, 그에 따라 그 사람을 평가하는 윤리 문화를 일굴 필요가 있다.’(215쪽)며 부를 가진 만큼 남에게 베풀어야 함을 강조한다.

나는 아직 기부할 만큼 여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 기부란 특별한 사람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기부하는 사람을 보고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어서 하는 것이라 색안경을 쓰고 보는 사람,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그때 기부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종교단체에 기부하면서 ‘나는 기부를 한다.’는 만족감에 빠져 있는 사람, 기부금을 내고 싶어도 어떤 단체에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 지 잘 모르는 사람, 먼 나라의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기부를 하느니 우선 우리나라의 가난한 이부터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기부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라고 믿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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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24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사람은 사회가 기부 문화를 권하는 일을 (열심히 돈을 번) 개인의 자유를 개입하는 것이라고 하던데, 이러다가 기부 좀 하자는 말 한 마디 했다간 좌빨, 종북 소리 듣게 될지도 모릅니다... ^^;;

잠자냥 2017-01-24 15:04   좋아요 0 | URL
요즘 우리나라에선 뭐 조그만 다른 사람들 생각하고 살자고만 말해도 좌빨, 종북이라고 하니까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