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치는 여자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
엘프리데 옐리네크 지음, 이병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에 사두었던 책을 뒤늦게 읽었다. 처음 살 때는 의욕에 불탔는데 이 책은 읽기 힘든 구석이 꽤 있다. 그러다 보니 계속 미루게 되었다. 드디어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를 손에 들게 된 이유는 마찬가지로 최근에 본 영화 <피아니스트>의 영향이 꽤 크다(‘피아니스트’라는 제목을 가진 영화는 두 편이 있다. 하나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 그리고 또 하나는 오늘 이야기 할 미하엘 하네케의 <피아니스트 : La Pianiste / The Piano Teacher>).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영화 <피아니스트>가 어떤 분위기일지 대충 짐작할 수 있으리라.

이 영화는 굉장히 불편하고, 당혹스럽고, 폭력적이다. 그러면서도 무척 강렬하다. 그리고 미하엘 하네케 <피아니스트>의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배우 ‘이자벨 위페르’는 눈부시다.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정말 매혹적이다. 끔찍한(?) 영화 <피아니스트>의 소문은 익히 들어 대충 어떠리란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영화가 그토록 당혹스러울 줄은 몰랐다. 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멍했다. 이자벨 위페르가 연기했던 ‘에리카’ 그녀의 심리가 너무나도 궁금해서 드디어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영화만으로도 대충 ‘에리카’ 그녀의 마음을 헤아릴 수는 있으나 책은 영화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기에 이 당혹스러운 작품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졌다. 영화와 책은 거의 비슷하다. 책을 읽는 내내 에리카에 ‘이자벨 위페르’를 대입해 상상했다. 정말 완벽한 조화였다.

피아노 교사인 ‘에리카’는 삼십대 중반임에도 아직 엄마와 산다. 특별하게 사귀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직장과 집을 오가는 생활이 거의 전부다. 그런데 이 모녀 관계는 좀 특이하다. 엄마는 에리카의 일상을 감시하고 조종한다. 엄마는 에리카가 어릴 때부터 자신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에리카에게 음악 교육을 시켰고, 특별한 재능이 없는 딸인데도 천재로 치켜세우며 ‘피아니스트’를 만들고자 ‘에리카’에게 거의 모든 쾌락을 금지한다. 남자를 사귀는 것은 물론, 친구를 만나는 것조차 ‘관리’한다. 더 좋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려면 돈을 모아야 한다며 쇼핑도 금지한다. 그리고 이 모녀는 한 침대에서 잔다! 마치 부부처럼! 엄마의 지나친 억압과 구속 때문에 그 안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에리카, 그러나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구속과 억압에 길들여져 있다.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안에서 평온함을 느낀다.

이렇게 키워진 에리카는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는 온갖 행태를 한다. 그녀는 자신에게 금지된 물건을 훔친다. 그렇지 못하면 남들도 갖지 못하도록 파괴해버린다. 엄마와의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대중교통을 타고 타인에게 은밀한 폭력을 행사한다(꼬집기, 발로 짓밟기 등등). 때로는 면도칼로 자해를 한다. 그러나 그녀는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무엇보다 엘프리데 옐리네크 <피아노 치는 여자>와 미하엘 하네케의 <피아니스트>가 ‘외설’ 혹은 ‘음란물’ 취급을 받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에리카는 여자임에도 남자들이 가득한 포르노샵에 들러 포르노물을 즐겨본다(영화와 책에선 굉장히 충격적인 장면이 있는데 그건 차마 말 못하겠다). 뿐만 아니다. 그녀는 숲에서 사랑을 나누는 커플을 찾아 훔쳐보는 것도 즐긴다(영화에서는 자동차극장에서 섹스하는 커플을 훔쳐보는 장면으로 나옴).

그녀는 엄마가 이성 관계조차 금지하다 보니 성에 굶주린 것일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에리카는 엄마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몇몇 남자와 사귀어왔고 그들과 당연히 섹스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정상적인 관계에서는 쾌락을 느끼지 못한다. 마치 자신의 몸을 자해해도 아무런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그런 그녀에게 음악 교습소 제자 중 하나인 발터 클레머가 다가온다. 당연히 에리카와 그녀의 엄마는 클레머를 경계하고, 그 둘만의 기이하지만 평온한 일상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밀어낸다. 그러나 집요한 클레머의 구애는 드디어 성공! 에리카와 키스를 하고 그 이상을 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러나 에리카는 그 순간 이른바 ‘정상적’이라고 할 만한 반응이 아닌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그 이후에도 에리카는 클레머에게 ‘편지’를 써 ‘편지’안에 쓰인 대로 자신을 대해주길 바란다. 영화에서는 이 편지의 내용이 자세하게 나오지 않고 관객이 그저 추측할 수 있게 해줄 뿐이다. 반면 책에서는 구구절절 그 내용이 소개된다. 편지 속 에리카의 요구는 참 당황스럽다. 그녀는 클레머가 그녀를 학대해주길 바란다. 채찍을 휘둘러 구타해주길 바란다. 그런 에리카 잎에서 망연자실한 클레머. 과연 이들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아니, 이 여자 에리카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한다. 그녀는 실제로 아버지가 정신병원에서 일찍 생을 마감하자 엄마와 단둘이 살았고, 어릴 때부터 ‘음악가’로 성장하길 바라는 엄마로부터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어디까지가 자전적인 이야기일지는 가늠되지 않는다. 만약 이 책에 담긴 모든 내용이 ‘자전적’ 내용이라면 엘리네크 그녀는 정말 자신의 ‘상처’를 폭로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간절히 치유되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싶어진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영화도 마찬가지) 결코 정상이라고는 할 수 없는, 기이한 여자 에리카에게 한없는 연민이 느껴진다. 평생을 억압에 시달려왔고,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엄마에게 아버지의 역할(남성성의 대리)까지 강요받은 여자. 정상적인 관계를 꿈꾸면서도 이제는 그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방법을 잊어버린 여자. 그래서 가학/피학의 도착적인 성적 일탈로 억압된 상태를 벗어나고자 꿈꾸는 여자. 그 여자의 서늘한 삶이 오래도로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 장면이자 영화의 엔딩장면이, 그 장면 속의 이자벨 위페르의 처절한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미하엘 하네케 감독 <피아니스트>의 한 장면


댓글(3)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7-01-17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리카의 자녀 교육법이 사드와 정반대입니다. 사드의 소설에 나오는 변태 백작은 딸에게 쾌락을 즐기는 것의 장점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그래서 딸을 거의 감금하다시피 키우고, 결국 아버지와 딸의 비정상적인 관계가 형성되고 맙니다. 제가 언급한 사드의 소설과 옐리네크의 이 소설을 비교해보고 싶군요. ^^

잠자냥 2017-01-17 12:41   좋아요 0 | URL
어떤 관계든 비정상적인 인간 관계가 한 사람에게 불러오는 피해는 엄청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신 소설은 사드의 <소돔 120일> 인가요?

cyrus 2017-01-17 13:14   좋아요 1 | URL
제가 언급한 사드의 소설은 단편입니다. 제목이 ‘외제니 드 프랑발‘입니다. 《사랑의 범죄》에 수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