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훅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
벨 훅스 지음, 이경아 옮김 / 모티브북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벨 훅스를 만난 것은 <사랑의 모든 것>이 처음이다. 보통 지적 수준이 높은 이들(흔히 우리는 '학자'라고 부르는)은 그들의 박식함이나 많이 알고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혹은 일부러 '글'을 어렵게 쓰는 경향이 있다. 내가 처음 만난 벨 훅스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쉽고 간결하면서도 매혹적인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결코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가볍지 않았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벨 훅스- 그녀를 조금 더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어느덧 내개 그녀의 저작은 나오는 족족 찾아봐야 할 그런 책이 되었고 <벨 훅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 또한 그렇게 만났다. '계급'이라는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주제를 그녀는 역시 쉬운 언어로 우리에게 말을 건다. "지금 당신은 어디에 서 있나요?"라고 입을 뗀다. 계급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잘 알다시피, 벨 훅스는 흑인이며, 여성이다. 영문학을 전공했는데 젠더, 인종, 계급, 문화와 관련한 다수의 비평서를 집필하면서 문화비평가로 흑인 페미니스트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흑인이며, 여자로 페미니스트 운동을 하고 있다면 그녀가 속한 위치가 어느 정도일지 대충 짐작은 갈 것이다. 그녀가 1952년 미국 남부 켄터키 주의 흑인 분리 구역에서 태어나, 1973년 스탠퍼드 대학을 졸업했다는 이력을 보면서 흑인 분리 구역에서, 그것도 여자로 태어나 스탠퍼드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얼마나 험난한 세월을 보냈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 그녀의 고군분투기는 이 책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좌절하고 상처를 무수히 받을만한 상황인데도, 그녀는 우뚝 지금의 자리에 서 있다.

전형적인 노동 계급의 가난한 흑인 집안에서 태어나 현재는 '풍요로운 세상'으로 이동한 벨 훅스- 그녀는 '계급'문제와 맞닥뜨렸을 때 어떤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그녀는 그 문제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이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음을 이야기한다. 모두가 '흑인이기‘때문에 라는 인종 문제와, '여자이기'때문에 라는 젠더의 문제로 계급 문제를 희석할 뿐이었지, 그 문제를 정면으로 언급하는 것은 꺼려해 왔고, 그녀 역시 자신이 속한 세계가 흑인이고, 여자이기 때문에 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대학에서 인종과 성의 문제보다 '계급'문제가 가장 뼈아프게 자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단적으로 부자 흑인 집안 출신의 아이들은 가난한 집안 출신 흑인 아이들과 연대하려 하지 않으며 부자 백인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차라리 백인 빈민층과 흑인 빈민층이 연대하는 경우가 더욱 많음을 벨 훅스는 지적한다). 그러나 미국 사회 어느 곳에서도 ’계급‘이 존재한다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이런 사정은 우리나라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얼마든지 노력하고,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부’를 창출하는 능력을 단순히 개인의 문제(근면, 성실한 태도 등)로 치부하며 흑인은 게으르고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가난할 수밖에 없다는 이념을 전파한다. 게다가 그런 가난한 자들은 부자들의 안락한 생활을 위협하는 존재(약물에 취해, 총기를 소지하고)로 설파하기까지 한다. 흑인도 노력하면, 여자도 노력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는데, 정상에 다다를 수 있는데 단지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벨 훅스는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당신도 성공해서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 속의 ‘그 정상’이라는 위치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반문한다.


그녀에 따르면 ‘지배 계급은 가난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할까봐 약물 중독을 심고, 노동 계급에게는 쇼핑 중독을 심었다.’ 노동 계급이 계속해서 가난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그녀는 광고의 악영향을 이야기한다. 물건을 사면 그만큼 당신의 지위가 향상된다는 거짓말로 가난한 사람들을 현혹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가난하기 때문에 재테크라는 말 자체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악순환으로 모든 인종의 여자들과 흑인 남성들이 빠른 속도로 가난하고 혜택을 박탈당한 계급으로 유입되고 있음을 벨 훅스는 지적한다. 이 상태를 계속 두면 머지않아 미국은 계급투쟁의 장이 될 것이라는 깊은 우려와 함께.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는 우리가 ‘계급 문제를 직시하고, 더 많은 사실을 깨달아 경제적 정의를 위해 제대로 투쟁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계급 없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면 제일 먼저 공정한 경제 체제부터 만들어야’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우리가 모두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직시하고, 그 계급과 연대해야 할 것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벨 훅스는 자신이 충실하게 연대해야 할 계급은 물론 '노동 계급'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며 책을 마친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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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1-17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이너 리그에서서 열심히 노~~오력하면 매이져 리그로 편입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의 매이져와 마이너라는 이 리그 시스템 자체로써의 계급적 고찰을 묻는 질문이었네요.. 지금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묻는듯합니다. 결국 리그의 자각을 통하여 투쟁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 읽어 볼만한 책이네요..참고하겠습니다.

잠자냥 2016-11-18 10:04   좋아요 1 | URL
지금의 우리 사회도,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 사회도 계급간 불평등은 더 심화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 평등사회라고 착각한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연대해야 할 계급끼리 인종 또는 젠더 갈등으로 오히려 더 첨예하게 대립하지요. 암튼 여러모로 답답한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