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팔기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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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읽으면 슬퍼진다. 우울해진다. 인간이란 결국 이런 존재인가? 삶이란 결국 이런 것인가 싶어 쓸쓸해진다. 나쓰메 소세키가 죽기 직전 쓴 최초이자 최후의 자전적 소설인 <한눈팔기 : 道草>을 읽고 있자면 더욱 그런 고독감과 우울함에 휩싸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집 막내로 태어나 양자로 보내졌던 나쓰메 소세키는 스무 살이 넘어 다시 본가로 돌아오기는 하지만 친부모에게서도 양부모에게서도 사랑보다는 환멸을 먼저 느꼈다. 그리고 그런 환멸과 생에 대한 쓰라린 시선이 <한눈팔기>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친부모에게서 환영받지 못했던 어린 겐조(나쓰메 소세키의 분신)는 양부모의 세속적인 모습을 보며 비틀어진 욕망에 끌려 다니는 인간의 추악한 모습을 먼저 배운다. 성인이 되고 나서 친가에 복적이 되기는 하지만, 어느 날 그에게 양부와 양모가 번갈아 나타난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요구하는 것이 없는 듯 다가오지만, 겐조와 그의 부인은 그들의 저의가 의심스럽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서서히 경제적 궁핍함을 호소하며 '옛정'을 생각하라며 손을 내밀기 시작한다. 돈의 액수도 점점 불어난다.

겐조는 누군가에게 돈을 줄 정도로 경제적으로 풍족한가? 그렇지도 않다. 나쓰메 소세키가 영국 유학 이후 일본으로 돌아와 근근이 가정을 이끌 정도의 수입만을 올릴 때가 배경이기 때문에, 주인공 겐조의 궁핍함도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그러나 사방에서 그에게 손을 내민다. 그의 누이도, 그의 형도, 그의 부인과 처가도. 단지 그가 많이 배우고 유학을 다녀온 식자층이고 어딘가에 글을 쓰며 강의를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입이 많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고 '가족'이라는 굴레로 당연한 듯 그에게 손을 내민다.

그렇다고 겐조가 그의 가족을 사랑하는가? 이 작품에서는 도무지 그런 시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의 형과 누이는 물론 매형에 대한 겐조의 시선은 연민을 떠나 경멸감에 가깝다. 부인에 대해서도 말할 것이 없다. 한 번도 따뜻한 말이나, 따뜻한 시선을 건네지 않는다. 그저 불만투성이다. 자기 아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갓난아이에게도 '저렇게 못생겼을 수가'하면서 한탄을 한다. 어릴 때 잠시 키워주었다는 이유만으로 느닷없이 나타나 당당하게 돈을 요구하는 양부모에 대한 시선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부인 또한 겐조를 답답하고 고집불통인, 무능력한 남자의 전형으로 바라볼 뿐이다. 걸핏하면 서로 생각이 옳다고 말싸움을 벌인다. 그러다 부인은 히스테리성 발작을 일으키며 돌아눕기 일쑤다. 도저히 사랑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부부의 풍경이다. 커다란 싸움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지만 화해불가의 평행선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서로 갉아먹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함께 살아간다.

그냥 외면해 버리면 될 텐데, 겐조는 그렇게 하지도 못한다. 따뜻한 사람이 아닌데도 그들에게 끌려 다닌다.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벗어날 수도 없다. 그것이 바로 겐조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탐욕스럽게 늙어버린 양부 시마다를 바라보며 자신의 인생도 '이 욕심투성이 노인의 인생과 별로 다를 게 없을 거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기도 한다.

'나 자신은 결국 어떻게 되는 걸까.'하며 부르짖기도 한다. 그는 또 늙어가기는 해도 의외로 변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보며 좌절한다. 양부에게 나름대로 큰돈을 쥐여주고 이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는 부인에게 "세상에 매듭지어지는 일은 거의 없어. 한번 일어난 일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 다만 여러 가지 형태로 변하니까 남들도 자신도 알 수 없을 뿐이야."라고 그가 마지막으로 읊는 말은 인생의 모든 것을 압축한 듯하다.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굴레 같은 가족 관계, 무능력하고 불만족스러운 자기 처지,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인간에 대한 경멸감, 그런 인간들이 아옹다옹 살아가는 사회에서 자기도 그렇게 닮아가는 것에 대한 모멸감, 미래와 현실에 대한 불안감 등등 <한눈팔기>는 인생의 쓰디쓴 모든 면이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삶'이라는 길 위에 뿌려진 한 포기 풀이라면 다시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렇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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