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중학생 때였나. 독후감 숙제였을 것이다. 아무런 책이나 선택해서 읽고 쓰는 과제였다. 나는 <이방인>을 읽고 숙제를 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렀다. 교무실에서 나눈 그 대화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방인>을 볼 때면 언제나 그 장면이 떠오른다. 선생님은 그때,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야, 너, 이 책이 이해가 되니?”
“네” 라고 나는 당돌하게 대답했다.
선생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물었다.
“뫼르소가 왜 살인을 했는데?”
“태양 때문에요.”

선생님은 말없이 빙그레 웃기만 하셨다. 나는 그때 열 네살이었고, 선생님은 나보다 두 배 조금 더 많은 나이였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물론,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방인’이 이해가 되느냐고 물었던 선생님도 이 작품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으리라. 아, 선생님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확실히 그렇다.

<호밀밭의 파수꾼>에 이어 예전에 읽은 작품 중 <이방인>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 책을 들었다. 카뮈 번역으로는 최고(?)로 대접받는 김화영 선생의 번역본이었다. 상황이나 분위기에 따라 뫼르소가 ‘엄마’ 혹은 ‘어머니’라고 말하는 부분이 예전과는 달라졌다. 훨씬 자연스럽고 생생하다. 예전에 내가 읽은 번역본에서는 모든 부분이 ‘어머니’로 통일되어 표기되었던데, 뫼르소의 성격상 ‘엄마’라고
부르는 게 어쩐지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잘 알다시피 <이방인>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엄마의 죽음 소식을 들은 뫼르소는 장례 준비를 위해 엄마가 머물던 요양원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는 철저한 ‘이방인’이다. 부모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기이한 ‘이방인’. 그는 너무도 담담해 보이고, 심지어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시는 등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오열은커녕 눈물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런 그가 보통의 평범한 이들에게는 한없이 낯선 이방인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뫼르소는 심지어 엄마의 장례식이 있은 다음날 새로운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고, 그녀와 영화(그것도 코미디)를 보기도 한다. 뫼르소는 엄마의 장례 이후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엄마의 장례식도 이제는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겠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32쪽)' 그의 이런 평범치(?) 못한 태도는 나중에 결정적으로 불리한 작용을 하게 된다.

우발적으로 ‘아랍인’을 살인하게 된 뫼르소는 법정에 서게 되고 검사를 비롯하여 그에게 유죄를 선언하고자 하는 이들은 모두 뫼르소의 이방인적 태도-엄마의 장례식에서 슬퍼하지 않고, 엄마의 죽음 이후에 여자친구를 사귀어 영화를 보고, 정사를 벌인 점 등등-를 짚어가며 그가 냉혈한, 감정도 없는 살인자임을 증명코자 한다.

그러나 뫼르소는 모든 게 그저 낯설 뿐이다. 법정에서 그를 변호하는 변호사의 웅변도 자신이 알지 못하는 자신의 어떤 부분을 마치 잘 아는 듯이 이야기 하는 것이 그저 기이하고 놀라울 뿐이다.
결국 그는 ‘사형’을 선고 받고 독방에 갇혀 자신의 사형 집행일을 기다린다. 뫼르소는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결국, 서른 살에 죽든지 예순 살에 죽든지 별로 다름 없다는 것을 나도 모르는 바 아니었다. (126쪽)'라며 담담히 죽음을 기다린다.

뫼르소가 ‘이방인’처럼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그가 사회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삶의 규범을 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지 않고(그러나 단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혼하자는 여자친구의 말에 결혼의 필요성을 잘 못 느끼겠다고 말하고, 법정에서는 다른 사람(죄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항변하지 않는다. 직장에서도 성공을 향한 의미가 도대체 모르겠다며 ‘안주’를 선택한다.

사람이란 결코 생활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쨌든 어떤 생활이든지 다 그게 그거고, 또 이곳에서의 내 생활에 조금도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고 나는 대답했다. 그가 불만스러운 눈치를 보이며 하는 말이, 나는 대답을 한다는 것이 언제나 딴전이고 나에게는 야심이 없는데 그건 사업하는 데는 아주 좋지 못한 점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을 하려고 자리로 아왔다. 나는 사장의 비위를 거스르고 싶지는 않았으나, 나의 생활을 바꿔야 할 하등의 이유도 찾아낼 수 없었다. 곰곰 생각해 봐도 나는 불행하진 않았다. 학생 때는 그런 종류의 야심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학업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면서 그러한 모든 것이 실제로는 아무런 중요성이 없다는 것을 나는 곧 깨달았던 것이다. (51쪽)


그런 그는 사회에서 영원한 ‘이방인’일 뿐이다.

예전에는 깨닫지 못했는데, ‘뫼르소’가 그리 낯설지 않다. 그는 모두가 마땅히 여기는 사회적 가치나 척도에서 조금 물러나 있을 뿐이다. 그런 그가 과연 ‘이방인’인 것인가. 아니면 그러한 사람을 이방인으로 내모는 사람과 사회가 ‘낯선’ 것일까?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뫼르소의 행동이 열네살 그즈음에는 쉽게 공감하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그가 왜 그랬을지 이해가 간다. 사회 속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뫼르소를 보며 공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보면 결코 기뻐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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