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
마르탱 파주 지음, 용경식 옮김 / 열림원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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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라고 했던가. 마르탱 파주의 <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를 읽고 있으면 내내 정희진의 저 말이 떠오른다. 이 책은 주인공 앙투안이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도저히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 수 없어 스스로 바보가 되는 길을 선택하면서 어떻게 이 세상에 적응하게 되는가를 그려나간 작품이다.

앙투안은 스물다섯의 대학 시간 강사로 많은 책을 읽고, 예술 작품에도 조예가 깊고,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많은 이른바 '지성인'이다. 그런데 그는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세상에 쉽게 융화되지 못한다. 늘 모든 행동을 하기 전에 사회적으로 성찰하는 버릇이 습관처럼 몸에 배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지성은 곧 질병'이며 구약성서에 나온 '학문을 많이 쌓은 사람에게는 고통도 쌓여간다'는 말이 곧 진리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맥도날드는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의 소굴이며, 기름기와 설탕 공급자이며 생활패턴의 획일화를 상징하는 곳'이기 때문에 가난한 앙투안이지만 결코 갈 수 없는 곳이었으며 '고급 백화점은 사회 상류층 냄새인 사향 냄새가 은은히 풍기는 부르주아 사육장'이기 때문에 고급 백화점도 갈 수 없고, 옷을 사더라도 혹시 '이 옷이 아시아의 어느 나라에서 아동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만들어진 옷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사기를 주저하고, '헬스클럽은 찌르는 듯하고 최면을 거는 듯한 음악에 맞춰 근육질의 갤리선 노예들이 노를 젓는 곳'이기 때문에 또 가서는 안되는 곳이다. 때문에 그는 가난한데도 자기의 수입이 허락하는 한 유기농 식품을 사먹고, 옷은 최대한 소비하지 않으며 현대인의 재앙이라고 생각하는 자동차는 절대로 소유하지 않으며(때문에 운전면허증도 없다), 헬스클럽 같은 곳에서 운동을 해서 자신의 몸을 과시하느니 체력 약하고 빼빼마른 몸으로 그저 산책을 하는 일 등이 전부인 삶을 살아 간다. 그러다보니 계속 평범한 사람들과의 평범한 일상을 사는 것에 애를 먹게 되고 결국 '너무 많이 알아서 괴롭고 불행한 삶'을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바보가 되기로 한다.

사회에 융화되기 위한 극단적 선택으로 알콜중독자가 되어보려다 실패하기도 하고, 자살을 하기로 했다가 마음을 고쳐먹기도 하고, 불행을 느끼는 대뇌피질 제거 수술을 받으려다 실패하고, 정신과 의사로부터 '에로작'이라는 약을 받아 먹으면서 서서히 바보가 되어간다. 따지고 질문하기 보다는 눈앞의 현실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책과 음반 예술품 등등을 다 내다버리고, TV를 사고 헬스클럽에 등록해서 몸을 가꾸고, 회사를 들어가 떼돈을 벌면서 그 돈으로 고급 백화점을 들락날락 거리면서 소용도 없는, 사용도 하지 않는 물건을 사기 시작한다. 그리고 포르셰 승용차도 장만하며...

그런데 이렇게 점차 그냥 평범한 바보가 되어 가고 있는 앙투안을 보며 안타까워하던 친구들이 그에게 최후의 수단으로 폭탄을 배달하는데, 폭탄은 바로 앙투안이 '바보'가 되기 이전에 가장 좋아했던 문학 작품 플로베르의 서한집이었다. 플로페르의 서한집을 받아든 앙투안은 정말, 마치 폭탄을 맞은 사람처럼 원래의 그로 서서히 돌아가기 시작한다. 이런 장면을 보면 정말 문학과 음악 그림 같은 예술 창작품들이 사람을 정화시켜 주는 기능을 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좀 더 해보게 된다. 영화 <타인의 삶>에서의 비즐러가 그러했듯이.

예전에 본 <잔잔한 호수 위의 파문 : The Rage In Placid Lake> 도 좀 비슷한 내용이다. 물론 주인공 플라시드는 앙투안처럼 많이 배운 사람은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개방적이고 좀 남다른 부모 밑에서 자란 탓에 사회적 규범에 익숙치 않은 사람으로 자라나는데, 그러면서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너무 어려운 나머지, 스스로 가장 사회적인 인물이 되고자 피나는 노력을 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보험회사에 일부러 취직을 하고, 가장 전형적인 회사원이 되어가면서... (플라시드 부모는 아들이 보험 회사에 취직했다고 하니까 막 운다; 애를 버렸다고. ㅋㅋㅋ)

암튼 이런 류의 책이나 영화들을 보면 사회라는 곳, 사회의 규범이라는 틀 안에서 사람이 조금 남다르게 사는 것은 참 힘들고 피곤한 일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라는 말이 대단한 진리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를 보면 많이 아는 사람들이 그다지 상처받고 사는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더 뻔뻔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렇다.


생각 없이 행복(?)하게 살 것이냐, 또는 많이 알면서 불행(?)하게 살 것이냐 조금 극단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 책. 나는 생각 없이 살면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융화하는) 삶이 딱히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차라리 많이 알고 상처 받더라도 고독한 지성의 숲에서 살고 싶다. 그리고 나는 그 삶이 더 행복할 것 같다.


인간들은 묘하게도 자기 자동차를 닮았다. 어떤 이들은 옵션이 전혀 없는, 그저 굴러가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그러니까 속력을 낼 수 없음은 물론이고 아예 멈춰버려서 종종 수리가 필요한 그런 인생을 산다. 그것은 싸구려 인생으로, 견고하지 못해서 사고가 났을 경우 탑승자를 보호해주지 못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인생은 가능한 모든 옵션을 다 갖추고 있다. 돈, 사랑, 미모, 건강, 우정, 성공까지. 마치 에어백, ABS, 가죽 커버, 보조방향조정장치, 16기통과 에어컨을 갖춘 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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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6-07-13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리뷰도 좋고 책은 읽어보고 싶네요 ㅎ 이겨도 병신 져도 병신이면 이기는 병신이 되어라는 이 병림픽 시대와 걸맞는 책인 듯 싶어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ㅎ

잠자냥 2016-07-14 10:51   좋아요 0 | URL
네, 분량도 그리 많지 않고 쉽게 읽히는 책이라(물론 그에 비해 던지는 질문은 쉽지 않지만 ^^) 금세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즐거운 독서가 되길 바랍니다!

루쉰P 2016-07-15 00:16   좋아요 0 | URL
흠 질문이 쉽지 않다라...구미가 당기는 군요 훗 전 모험가 체질이라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