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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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서점에서 서서('사서'가 아님) 읽은 책이다. 선뜻 사서 보기엔 조금 아깝고 안 읽자니 궁금하고, 도서관에서 빌려 읽자니 항상 그녀의 모든 책은 대여 중이다. 내 차례까지 오기 한참 걸린다. 이런 이야기를 구구절절 하는 까닭은 사강의 소설에 대한 내 생각을 표현하기에 딱 적당한 표현이라고 해야 할까.


사강의 작품은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다(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려면 한참 기다려야 하듯!). 대부분 남녀 관계를 다룬 연애소설이기 때문이다. 읽다 보면 꽤 공감 가는 매혹적인 문장도 많다. 하지만 사기엔 어쩐지 돈이 아까운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아예 외면하기도 뭐하다. 단순한 연애소설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남녀관계와 연애 사랑, 결혼 등을 통해 인간에 대한, 삶에 대한 통찰이 꽤 날카롭기 때문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사강이 스물넷에 발표한 작품이다. 스물넷에 이런 작품을 쓰다니! 프랑스 문단에서 그녀에게 천재 운운한 것도 그럴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 프랑수와즈 사강은 대중적인 통속 연애소설 작가에 스캔들 메이커에 지나지 않는다고 악평을 한 이들도 많다(그러나 이런 평가만을 내리기엔 그녀의 재능이 아깝다).


어떻게 보면 줄거리는 참 단순하다. 서른 아홉의 실내장식가인 폴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온 연인 로제에게 완벽하게 익숙해져 이제 다시는 그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을 거라고 믿고 있다. 로제 역시 폴을 무척 사랑하지만, 그는 폴이 헌신적으로 로제에게만 충실한 것과는 달리 다른 여자와의 관계를 끊지 못하는 약간은 나쁜 남자의 기질을 지니고 있다. 폴과의 안정적인 관계도 중요하지만, 다른 여자와의 하룻밤, 정열적인 밤을 끊지 못하는 그런 남자다.


게다가 폴은 로제와 조금 더 안정적인 유대관계를 원하지만, 로제는 폴과 결혼을 한다든지 하는 ‘안정적인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폴을 사랑하는 것만큼 자기만의 시간도 사랑한다. 때문에 로제가 부재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혼자 남은 폴은 깊은 고독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 그녀 앞에 어느날 눈부신 외모의 젊은 남자 시몽이 나타난다. 스물 다섯의 시몽은 첫눈에 폴에게 반해 맹목적인 애정공세를 퍼붓기 시작한다. 폴은 자신이 약혼자가 있음을 시몽에게 주지하지만, 시몽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뒤를 쫓는다. 자신에게 고독감을 안겨주는 로제와 달리 자신을 위해서 모든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시몽에게 점점 끌리는 것을 발견한 폴- 그녀는 결국 로제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시몽과 함께 잠들고 함께 일어나는 삶을 시작하게 된다.


그래서 시몽과 폴이 영원히 행복했을까? 사강의 다른 작품 속 주인공들이 그렇듯 폴과 시몽도 그렇지는 못한다. 폴은 시몽의 애정공세를 즐기면서도 이 사랑 역시 영원하지 않을 것임을 문득문득 상기한다. 인생의 모든 것이 그러하듯, 이 사랑 또한 영원히 곁에서 머무르지 못하고 스쳐지나 가리라… 하는 태도로. 폴의 이런 태도에서 사강의 다른 작품 <한달 후, 일년 후>의 유명한 구절이 떠오르기도 한다.


"일 년 후 혹은 두 달 후,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 조제는 사랑의 짧음에 대해 말했다. "언젠가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겠죠. 그리고 우리는 다시 고독해지겠죠. 그리고 한 해가 또 지나가겠죠." "나도 알아요." 조제가 말했다. "조제, 이건 말이 안 돼요. 우리 모두 무슨 짓을 한 거죠? 이 모든 것에 무슨 의미가 있죠?" 조제가 상냥하게 대답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러면 미쳐버리게 돼요."

-프랑수와즈 사강, <한달 후 일년 후>


로제에게서 시몽으로 다시 로제에게 돌아간 폴의 경우처럼 <한달 후 일년 후> 속 주인공들의 사랑 또한 여기서 머물다 다시 또 다른 이에게 옮겨간다. 프랑수와즈 사강은 이런 주인공들을 통해 사랑의 유한함, 인생의 덧없음을 이야기 한다. 그렇다고 사랑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러면 미쳐버리게 돼요.”라는 조제의 말처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제목은 사강이 일부러 물음표가 아니라 말 줄임표 세 개를 꼭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프랑스인들은 브람스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브람스 공연에 초청하기 전에는 꼭 이 질문을 해야 한다고 한다. 소설 속에서는 시몽이 폴에게 브람스 공연에 함께 가기를 요청하면서 이런 질문을 한다. 브람스를 좋아하든 말든 함께 갔으면 좋겠다는 시몽의 마음 상태를 나타내기도 하며,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다 싫어하는 것이지만, 그 통념을 한번 깨보지 않겠느냐는 의미(폴이 사회적인 통념-약혼자가 있는 여자로서 나이 차이가 열 네 살 나는 연하의 남자를 만나보지 않겠느냐는-을 깨보기를 권유하는), 게다가 실제로 평생 독신으로 지낸 브람스가 열 네 살 연상인 클라라 슈만을 수 십년 간 마음에 두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면 이 소설의 제목은 제법 위트 있다는 생각도 든다.


세상에 존재하는 연애소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모든 연애소설이 고전으로 읽히게 되지는 않는다. 사강의 소설은 발표 당시 통속적인 연애소설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고전으로 남아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읽힌다. 아직 사강의 작품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직접 체험해 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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