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제목 중 ‘처음 읽는’이라는 말은 참 많은 것을 시사한다. 처음이지만 처음이 아닌, 혹은 처음은 아니지만 처음인
‘아프리카 역사’라고 해야 할까. 중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온갖 역사를 배웠지만 아프리카에 대한 설명은 늘 많아야 몇 페이지,
보통은 몇 단락으로 마무리되는 게 고작이었다. 그것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종식, 제3세계의 독립운동 등을 다루는 장에서
‘서구열강의 오랜 식민 지배를 받던 아프리카의 국가들도 속속 독립을 하고 있다’ 등의 짧은 서술로 끝나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세계사를 배우다 보니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 지배를 받기 이전의 아프리카는 존재하지 않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때문에 아프리카
역사는 처음 읽는 것이 아니면서도 처음 읽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처음 읽으면서도 처음 읽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은 상태가 된다.
‘아프리카의 역사’라는 제목을 보면서 불현듯 ‘아! 아프리카에도 역사가 있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섣불리 구매욕이
들지 않았던 이유는 이 책의 저자가 네덜란드계 독일인이기 때문이다. 백인 남성이 서술한 아프리카의 역사라…. 그럴듯해 보이지만
왠지 서구중심 세계관을 벗어나기는 어렵지 않을까 이런 의심이 들었다.
책을 덮을 즈음, 나의 그런 편견은 기우였음을
깨닫게 된다. 객관적인 역사란 존재할 수 없는 게, 서술하는 역사가의 관점이 어떤 식으로든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 루츠 판 다이크는 자신의 관점을 최대한 배제하고 있다. 대신 현재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는 주민, 살다 사라져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 등을 통해 최대한 반영한다. 이런 독특한 접근 때문에 일반적으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역사책과는
조금 느낌이 다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흘러나오는 각계각층 사람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사진이 아닌 아프리카 출신 화가의 삽화도 색다른 느낌을 전달하는 데 한몫한다. 게다가 이 저자는 남성들로 쓰인 역사의 폐해를
끊임없이 지적하며, 아프리카 여성들의 정치 참여 및 여성들로 만들어진 새로운 아프리카 역사가 탄생하기를 누차 강조한다.
거의 모든 문화의 역사는 권력과 부유함을 차지하려는 욕망에서 자신의
민족을 극히 고약한 방식으로 착취했던 남자들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 식민 지배에서 해방되고 처음 10년 동안 아프리카에는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지배자들이 압도적이었다. 첫째, 그들은 이전의 식민 지배 세력의 적극적인 후원이나 적어도 묵인 아래서
권력을 차지하였다. 둘째, 적어도 처음에는 각 국민의 보수적 엘리트 계층의 지원을 받거나 묵인되었다. 셋째, 남자들이었다.
(195쪽)
그러고 보면 참 어이없다. 이집트는 분명히 아프리카의
한 국가인데, 우리가 접하는 이집트 관련 영화(피라미드, 파라오 등을 다룬)에서 파라오는 거의 백인에 가깝게 그려져 왔다.
이집트 여왕이었던 클레오파트라 역시 거의 백인에 가까운 외모를 자랑했다. 하지만 실은 ‘흑인’아닌가? 이 책을 읽다 보면 최초의
원시인이 존재했던,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아프리카 땅을 만나게 된다. 어쩌면 우리 인류의 가장 오래된 조상은
‘흑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 잘난 서구는 아프리카인을 열등한 존재로, 동물보다 못한 취급을 하며 노예로
삼아왔다.
제국주의 얼굴을 하고 남의 땅을 제 땅처럼 침략한 유럽 국가들, 아프리카의 그 수많은 종족적 특성은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주인도 없는 자리에서 자기들끼리 서로 땅을 나눠 갖고 국토를 분할한 그들. 그 모든 것이 지금 아프리카에서
수없이 내전과 내란이 일어나도록 한 원흉임에도 그들은 하등의 책임도 없는 듯 아프리카의 내전과 내란을 바라보며 ‘역시 저들은
미개해서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냉소와 조롱 섞인 시선을 보낸다. 그들이 저지른 악행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구호물자를 보내고
원조를 하면서 온갖 생색은 다 내고 있다. 서구사회는 아프리카에 몇 백 년이 지나도 다 갚을 수 없을 정도로 빚을 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프리카의 엄청난 자원을 탐내며 강탈은 끝나지 않고 있다.
아프리카에는 정말로 희망이 없을까?
그러나 이 책의 몇몇 아프리카 국가의 사례를 보면 희망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넬슨 만델라가 이끌었던
남아프리카공화국도 그렇지만 이 책에서 새롭게 발견한 국가는 아프리카의 체 게바라라 불렸던 ‘토마 상카라(Thomas Sankara
1949~1987년)’가 이끌던 시절의 부르키나파소(‘정직한 사람들의 나라’라는 의미)다. 그가 이끌었던 시절의 부르키나파소를
보면 제대로 된 지도자와 그를 뒷받침할만한 세력만 존재한다면 아프리카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는
안타깝게도 쿠데타로 총살당했다. 상카라 뿐만 아니라 세네갈의 대통령 레오폴드 셍고르나 탄자니아의 줄리어스 니에레레처럼 권력을 쥔
자가 그 권력을 민중을 위해 제대로 작동시킬 때 아프리카에 희망이 빛은 조금 더 빨리 찾아올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아프리카 내에서 자성의 목소리도 많이 나오고 있다. 아프리카에도 식민 지배를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그들의 목소리는
자신들을 바라보는 데 좀 더 냉정하다. 그들은 한때 아시아 국가보다 더 풍요로운 생활을 했던 아프리카의 몇몇 나라들이 오히려 더
추락하고 있는 이유로 아프리카 국가들이 연대하는 방법을 잊었기 때문이라고 꼬집기도 하고, 고급인력의 두뇌 유출을 꼬집기도 한다.
이런 새로운 목소리가 민주적인 대화를 통해 자신들의 개인적인 자기 결정권을 실현할 때 아프리카에도 새로운 희망의 역사가 쓰일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저자는 또 아프리카에 대한 선입견 ‘이국적인 원시림과 비참함만을 생각하는 일’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완전히 ‘다른 꿈을 바라볼’ 자유를 허용해야 할 시간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의 이런 제안을
따르자면 이런 책을 읽어보는 것도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을 벗는데 작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도 서구 사회가 아프리카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해야 하며, 그 오랜 세월 동안 아프리카 땅을 착취해왔던 것에 어떤
식으로든 보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아프리카 국가에 대한 부채탕감 이런 것도 가능하지 않나!). 또한 다국적 기업의 가면을 쓰고
자행하고 있는 21세기의 또 다른 약탈 행위도 이제는 제발, 멈춰야 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진심으로 호감을 느낄만한 아프리카의 몇몇 지도자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남아프리카의 ‘우분투(Ubuntu)’ 이념은 다음과 같다. “한 인간은 다른 인간들을 통해 인간이 된다.” (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