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이체르 소나타 (반양장) 펭귄클래식 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기주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릴 때 읽은 러시아 문학은 재미없었다. 지루하고 계몽적이라는 느낌이 퍽 강했다. 이 작품에서도 살짝 계몽적(?) 냄새가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닌데,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너무 궁금해서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어릴 때에 비해 이해하는 폭, 공감하는 폭이 넓어져서 그런지, 구구절절 고개를 끄덕이면서 보게 되더라.

이 책은 좀 두꺼운 편인데 ‘가정의 행복’, ‘크로이체르 소나타’, ‘악마’, ‘신부 세르게이’ 이렇게 4개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네 작품 모두 흥미롭다. 공통된 주제라면 사랑과 성(性), 결혼. 그리고 그로 인해 갈등하고 파멸하는 인간의 욕망 이런 것들이다. 이 책에 소개된 작품만 보자면 톨스토이는 사랑도 믿지 않았고 결혼 생활에 대해서도 상당히 비관적이었고, 인간의 성적인 욕망이 악의 씨앗, 죄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네 작품 모두 암울하고, 우울하다. 신랄하기까지 하다.


‘가정의 행복’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어떤 남녀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사랑이라고 생각조차 못하다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그 사랑 때문에 세상이 달라 보이는 경험까지 하며 행복에 충만한 결혼을 시작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 가지 않는다. ‘권태로움’이라는 감정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충만했던 시절, 그토록 아름답고 달라보이던 세상이, 사물이 권태에 찌들더니 별것도 아닌 것으로 보이게 되는 장면에서는 엄청 웃었다. 톨스토이는 인물의 심리 상태를 서술하는데 정말 탁월한 듯하다. 놀랍다. 정말.

남편도 양미간의 주름살이 깊어지고 관자놀이 부근에 흰 머리칼이 많아진 것 말고는 크게 변하지 않았으나, 그 진지하던 눈빛은 항상 먹구름에 덮여 있었다. 나 역시 변한 것이 없었지만 마음속에 사랑도 없었고 사랑하려는 마음도 없었다. 또한 일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만족감도 없었다. 종교적 감흥도, 남편에 대한 예전 같은 사랑도, 예전 같은 삶의 충만함도 아주 멀리에 있어 다시는 가질 수 없어 보였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살고 싶지도 않은데 다른 사람을 위해 살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이 들어서였다. (가정의 행복, 153쪽)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정말 강렬했다. 이렇게 결혼과 성, 사랑에 대한 신랄한 독설은 처음이다 싶을 정도다. 기차 여행에서 만난 어떤 남자(자신의 아내를 살해했다는)가 또 다른 남자에게 그 사연을 털어놓는 액자 소설식 구성인데, 그 내용이 무척 놀랍다. 아내가 불륜을 저지른다고 의심하여 살해하게 되는 과정은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이긴 하지만, 톨스토이는 마치 처음 이런 이야기가 세상에 공개되는 것처럼 흡인력 있게 묘사하고 있다. 사랑이나 성, 결혼 제도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정말 쓰다. 


‘악마’ 역시 위에서 언급한 주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결혼 전에 관계를 맺던 여자가 있던 주인공은 결혼 후 이 여자를 정리하고 행복하게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우연히 다시 눈앞에 나타난 과거의 여자로 인해 서서히 파멸하기 시작한다. 부인에게 만족하고 부인을 한없이 사랑하던 남자가 눈앞에 나타난 옛 여인을 보고 다시 끓어오르는 욕정을 참지 못하는 장면이 퍽 우습기도 한데, 가장 크게 웃었던 장면은 현재의 부인과 다른 매력(건강한 매력)을 지닌 옛 여인을 보고 나더니 지금 부인이 너무 못생겨 보인다고 서술한 장면이었다. 이런 식으로 인간 심리 묘사가 정말 탁월하다.

마지막 작품인 ‘신부 세르게이’는 유혹과 욕정을 참지 못하던 젊은 남자가 수도사가 되고 다시 시험에 오르자 스스로 부랑자가 되어 떠돌이 생활에 오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덕망 높은 수도사 ‘세르게이’로 이름을 날리고 있을 시절, 이 수도사를 유혹하고자 크게(?) 마음먹고 나타난 여자가 있는데, 이 여자의 유혹에 안 넘어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에서도 미친 듯이 웃었다. 하나님을 찾는 것도 모자라 결국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는 일을 감행하더니 겨우 정신을 차렸는데…. 나는 이렇게 웃고 있지만 본인은 얼마나 괴로우랴 싶기도 했다. 인간에게 욕망이란 참 거추장스러운 존재구나 싶었다.

이 작품들을 보면 결국 톨스토이는 세상에 사랑이란 없다(특히 영원한 사랑은)고 믿었던 듯하다. 사랑은 없고 단지 사랑을 가장한 성욕과 추한 섹스만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때문에 결혼도 결국 ‘신성한 결혼’, ‘사랑하는 두 영혼의 결합’ 등등 온갖 미사여구로 장식되지만 결국 인간의 추한(톨스토이 입장에서 보자면) 성적 본능을 합리화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이며, 때문에 성욕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 또 다른 새로운, 상대에게 눈을 돌리는 추악한 일이 반복될 뿐이라고 믿었던 듯하다. <첫사랑>의 투르게네프하고는 정반대되는 사랑관이다. 투르게네프가 <첫사랑>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밝혔듯 톨스토이의 작품에도 결국 자전적 경험 및 생각이 투영되어 있다고 보인다. 그렇게 보면 톨스토이는 사랑이나 결혼생활에서는 행복하지는 않았던 듯. 아름답고 낭만적인 사랑이 아니라, 욕망으로 끓어 넘치는, 그래서 쓰디쓴 사랑 이야기를 읽어보고 싶다면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만나보시라.

 
“그건 항상 거짓말이 되기 때문이죠. 사람이 사랑한다는 게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됩니까? 마치 방아쇠를 당기듯 철커덕, 사랑한다, 라고 내뱉습니다. 그 말을 내뱉자마자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야만 하고, 그 어떤 대단한 의미들이 총구에서 일시에 발사되는 것만 같겠죠. 내 생각엔, 사람들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장엄하게 입에 올리자마자 자기 자신을 기만하게 되거나, 더 나쁜 경우, 남들을 속이게 됩니다.” (가정의 행복, 64쪽)

“정말 끔찍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사람들에게는 몇 달이나 몇 해가 아니라 평생을 가는 사랑이라 불리는 감정이 있지 않나요?”
“아니, 없습니다. 어떤 남성이 한 여인을 평생 선호하는 경우가 있다 쳐도 그 여자는 아마도 틀림없이 다른 남자를 선호하게 될 겁니다. 이런 일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담배를 꺼내 피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로 평생을 사랑하는 경우도 있을 수는 있습니다.” 변호사가 말했다.
“그럴 리 없습니다.” 신사는 반박했다. “그건 완두콩 깍지 속에 훌륭한 완두콩 두 알이 나란히 들어 있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게다가 이것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문제만이 아니라 권태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평생을 한 여자 또는 한 남자만 사랑한다는 것은 양초 하나가 평생 탄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크로이체르 소나타, 183쪽)

미(美)가 선(善)이라는 완벽한 환상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아름다운 여인이 바보 같은 소리를 해도 사람들은 그 말 속에서 어리석음보단 현명함을 보게 되지요. 그녀가 추잡한 소리를 하거나 행동을 해도 사람들은 예쁘다고 합니다. 그녀가 어쩌다 바보 같지도 추잡하지도 않은 예쁜 말을 하면, 사람들은 그녀가 현명하고 도덕적인 기적의 여인이라고 확신합니다. (크로이체르 소나타, 196쪽)

 

  “그런데 저 불행하고 천대받는 여인들과 고위 상류층 여성들을 비교해 보십시오. 양쪽 모두 똑같은 패션으로 옷을 입고, 똑같은 향수를 뿌리고, 팔, 어깨 가슴과 히프 선을 드러내는 것도 똑같지 않습니까? 게다가 보석과 비싸고 휘황찬란한 물건이면 사족을 못 쓰는 점과 오락, 춤과 음악, 노래를 좋아한다는 점 등은 다를 게 전혀 없습니다. 모든 수단을 다 사용해서 남자를 유혹하는 것도 다를 게 없습니다. 아무런 차이도 없단 말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짧은 기간의 창녀는 경멸을 당하고, 긴 기간의 창녀는 존경을 받는 거지요.” (크로이체르 소나타, 20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