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오닐의 희곡 <느릅나무 아래 욕망 : Desire Under the Elms>은
꽤 짧은 분량인데 마치 영화를 보듯 장면 하나하나가 생생하다. ‘느릅나무 아래 욕망’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원초적인 ‘욕망’
때문에 파멸해가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유진 오닐의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처럼 이 작품 역시 한 가족의
이야기다.
탐욕스럽고 전형적인 가부장의 모습을 한 아버지 ‘캐벗’과 그의 세 아들 ‘시미언’, ‘피터’, ‘에벤’,
그리고 이 남자들로만 이루어진 집에 어느 날 느닷없이 등장하는 한 여자 ‘애비’- 이렇게 다섯 인물을 중심으로 극은 흘러간다.
주인공은 캐벗의 셋째 아들인 ‘에벤’이라고 볼 수 있다. 에벤에게 있어 시미언과 피터는 이복형이다. 캐벗이 두 번째 결혼을 통해
낳은 아들인 에벗은 자신의 어머니를 캐벗이 학대하다 죽였고 원래 어머니 소유였던 농장마저 아버지가 빼앗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언제든 아버지에게 복수하고 어머니의 농장을 되찾을 꿈만 꿈다.
그러던 어느 날 ‘캐벗’은 세 번째 부인이라며
‘애비’를 데리고 나타난다. 캐벗보다는 오히려 에벤과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애비’는 전형적인 팜므파탈형 여인으로 에벤이
다시 되찾고자 하는 ‘농장’에 대한 탐욕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캐벗이 죽으면 ‘이 농장은 내 것’이 될 거라며 에벤을 마음껏
조롱한다. 농장을 둘러싼 캐벗과 에벤, 시미언과 피터, 그리고 애비의 욕망의 대결이 시작된다. 이 욕망의 대결에서 최후의 승자는
누구일까?
줄거리는 흔하게 볼 수 있는 내용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계속 책장을 넘기다보면 좀 충격적인 전개로
흘러간다. 아버지를 증오하고 죽이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오이디푸스 신화’도 느껴지고 애비와 에벤의 관계에서는 ‘페드라’도
느껴진다. 영화 <Desire Under the Elms>는 소피아 로렌과 앤서니 퍼킨스 주연으로 만들어졌던데, 앤서니
퍼킨스는 공교롭게도 영화 <페드라>에서도 남자 주인공을 맡았던 인물이다(아주 오래 전에 <페드라>를 보면서
앤서니 퍼킨스는 고뇌하는 미남형이라 느꼈는데 거의 비슷한 역을 맡았다. 아마도 이 배우 얼굴이 좀 이런 역에 어울리는
얼굴인지도).
이
작품은 가장 가까운 가족이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는 점에서 <밤으로의 긴 여로>와 비슷하지만 욕망으로 끈적끈적한
분위기와 조금은 더 충격적인 내용으로 한층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비극적이면서도 슬프고 강렬하면서 아름답다. 혹시라도 이
작품을 이 책으로 읽을 사람이 있다면 책 뒤표지는 읽지 않는 편이 좋을 듯하다. 작품의 모든 줄거리가 나와 있다. 물론 이
리뷰도 이 작품을 전혀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스포일러겠지만…. 그래도 낱낱이 밝히지는 않았다....
작품을 다 읽고
유진 오닐 연보를 읽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유진 오닐의 딸이 18세의 어린 나이로 찰리 채플린과 결혼을 하자(당시 채플린의 나이는
54세로 유진 오닐보다 고작 한 살 어렸다고 한다), 유진 오닐은 그의 딸 우나와 평생 인연을 끊었다고 한다. 가족으로 인해 큰
상처를 받고 살았던 그가 결국 자신의 딸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상처’를 준 것을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가족’이란 존재는 결국
존재 자체가 ‘상처’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