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스퀘어 을유세계문학전집 21
헨리 제임스 지음, 유명숙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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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꽤 통속적인 내용으로 무척 흥미진진하다. 캐서린이라 불리는 여주인공이 있다. 그녀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뉴욕 상류층과 어울리며 자신의 아버지가 죽은 뒤에는 많은 유산을 물려받을 것이 확실하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한 남자가 다가온다. 파티에서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캐서린에게 엄청난 호감을 표현하더니 급기야 그녀에게 반했다며 열렬히 구애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이 남자, 모리스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 하지만 캐서린은 돈이 많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딱히 볼품없는 여자다.  

독자는 궁금하다. 모리스는 정말 캐서린을 사랑하는 것일까? 정말 그의 말대로 그녀의 평범한 매력 속에 숨어있는 진가를 발견했고, 반한 것일까?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저, 돈이 필요해서, 그녀의 유산이 탐나서 접근하는 거겠지 등등 수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작품 초반에는 모리스가 정말 돈 때문에 캐서린에게 접근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캐서린은 좀 독특한 여주인공이다. 보통 소설 속 여주인공은 이른바 ‘여주인공적인 특질’- 빼어난 외모를 자랑하든가, 외모가 좀 떨어진다면 그를 보충할만한 영민함 혹은 재치나 재능을 겸비하고 있다.

그러나 <워싱턴 스퀘어>의 캐서린은! 정말 그 무엇도 아니다. 한 가지 장점이 있다면 건장한 체격! 그때문에 건강하다는 것! 정도? 이런 여주인공 같지 않은 여주인공이라는 설정이 이 작품을 독특하게 만든다. 작가인 헨리 제임스가 캐서린의 ‘평범함’을 묘사하는 방식에서 절로 웃음이 나기도 한다. ‘소설의 여주인공에 대해서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은 좀 거북하지만, 식탐이 약간 있었다고 덧붙여야 하겠다. 내가 알기로 찬장에서 건포도를 훔쳐 먹은 적은 없었지만, 용돈을 크림 케이크 사먹는 데 탕진하곤 했다.’(16쪽) 이런 부분에서는 푸핫! 웃게 된다.

캐서린과 모리스 외에 한 사람 더 중요한 인물이 있다. 바로 캐서린의 아버지, 의사인 슬로퍼 씨다. 그는 인성과 학식과 재능을 겸비한 의사로 뉴욕 상류층에서도 칭송받는 사람이다. 아내 또한 그에 걸맞게 재능과 미를 겸비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아름다운 아내는 캐서린을 낳은 지 1주일이 지나자 죽고 말았다. 외동딸인 캐서린이 예쁘고 똑똑한 아내의 재능을 좀 물려받았으면 좋았으련만 그 어느 것 하나 엄마와 닮은 구석이라고는 없다. 늘 딸을 낮게 평가하던 슬로퍼 씨는 모리스라는 아름다운 청년이 캐서린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지 않는다. 아니 그 마음이 절대 순수하지 않으리라 믿고 둘의 교제를 반대하기 시작한다.

<워싱턴 스퀘어>는 캐서린과 모리스, 캐서린의 아버지, 그리고 또 한 사람, 로맨스라면 사족을 못 쓰는 캐서린의 고모 이 네 명의 등장인물이 이끌어간다. 캐서린을 묘사하는 문장에서 살펴볼 수 있듯 이 작품은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인데, 헨리 제임스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충분히 잘 활용한다. 적절한 개입이라고 해야 할까? 완급조절이 뛰어나다. 평소 나는 소설에서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은 어쩐지 작품 수준을 떨어뜨리고, 자칫 유치한 느낌까지 들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은 그런 편견을 완벽하게 깬다. 전지적 작가 시점도 잘만 활용하면 퍽 매력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더 모리스에게 빠져들고 급기야 결혼을 감행하려는 캐서린, 그들에게 반대하는 아버지- 허락 없이 결혼할 경우 유산은 한 푼도 물려줄 수 없다는 아버지- 옆에서 로맨스를 구경하는 재미에 흠뻑 빠져서 제대로 오지랖질 하는 고모- 캐서린과 모리스는 어떻게 될까? 읽는 내내 흥미진진하다.

결국 이 작품을 읽고 나면 모리스도, 아버지 슬로퍼 씨도 자신들의 시선으로만 캐서린을 판단했을 뿐이지, 진짜 그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랐다는 생각이 든다. 잘난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탁구공처럼 왔다 갔다 하던 캐서린- 작가인 헨리 제임스는 그런 캐서린을 잘 대변한 듯한데…. 책을 덮고 나니 문득 자신의 여동생 앨리스 제임스 대해서는 어땠을까 궁금해졌다. 잘난 아버지, 잘난 오빠들 틈바구니에서 그저 여자라는 이유로 온전하게 평가받지 못했던 그녀, 앨리스 제임스가 캐서린의 모습에 살짝 오버랩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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