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 여행하는 법>이라! 어허, 이건 사실 어쩌면 내가 잘하는 일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다만 자신의 방에서 칩거하는
것을 ‘여행하는 법’이라 이름 붙인 것이 기발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18세기 사람인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는
히키코모리의 원조(元祖)가 아닐까? 그런데 사실 그의 은둔은 처음에는 자발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 무렵 금지된 결투를 벌인 죄로
42일 동안 가택연금형을 받았다. 어쩔 수 없이 집안에 갇히게 되니 너무나도 심심한 나머지 ‘방 안’ 여행을 떠나게 된다.
방을 그래서 끊임없이 돌아다니느냐? 그런 것은 아니다. 그는 방에서 이제까지는 그냥 지나쳤던, 그의 세계를 둘러싼 물건들을 바라보며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읽었던 책이나, 들었던 음악, 벽에 걸린 온갖 회화들도 이제 그의 눈에는 새롭다. 그에 얽힌 지나간
추억을 불러와 곱씹으며 의미를 되새기기도 한다. 침대도 새롭고 의자도 새롭다. 그 안에서 철학을 하며 하인 조아네티나 애견 로진에
대한 전에 없던 사랑 혹은 잊고 지냈던 고마움을 다시 발견하기도 한다. 놀랍게도 이 ‘내 방’ 여행에는 모든 여행이 그러하듯
위험 또한 도사린다. 꽈당! 의자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다! 이토록 위험천만하다니! 그는 이렇게 온갖 발견과 추억과 위험(?)을
맞닥뜨리면서 이제껏 가지 못했던 새로운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모든 여행에는 끝이 있다. 아무리 즐거운, 돌아오고
싶지 않은 여행이라도 돌아와야 한다. 그렇기에 ‘여행’이리라. 만일 돌아올 곳이, 돌아와야 할 이유 없이 계속 떠돈다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방랑’이 되리라.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도 드디어 여행을 마친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그의 여행은
가택연금이 풀려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됨을 뜻한다. 그리고 그때가 오자 그는 오히려 구속을 느낀다.
상상력이 넘치는 매혹의 세계여, 그대는 자애로우신 그분께서 현실의 인간을 위로하기 위해 보내 준 존재였다. 이제 그대를 떠날 시간이 된 것 같다.
오늘은 내 운명을 쥐고 있던 사람들이 내게 나의 자유를 돌려주는 날이다. 그들이 정말 내게서 그것을 빼앗기나 했다면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나의 자유를 박탈하고 내 앞에 항상 드넓게 펼쳐진 이 넓은 세상을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한 것을 두고 순간이나마
좋아했다면 말이다. 그들은 내게 어떤 곳도 가지 못하도록 했다. 대신 그들은 내게 이 우주 전체를 남겨 놓았다. 무한한 공간과
영원한 시간이 내 뜻에 좌우되었다.
오늘 나는 자유다. 아니 다시 철창 안으로 들어간다. 일상의 멍에가 다시 나를
짓누를 것이다. 이제 나는 격식과 의무에 구애받지 않고는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변덕스런 여신이 있어
내가 경험한 이 두 세계를 다시는 잊지 않도록 해 주고, 다시는 이 위험한 연금에 연루되지 않도록 해 준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내 여행을 끝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을까? 나를 방에 가두는 게 벌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간직한 이 멋진 공간에서 말이지? (183~184)
그가 가택연금이 풀려나 사회로, 일상으로 돌아감은 곧 상상의 세계가 끝남을 뜻한다. 발견의 세계 또한 끝나는 것이다. 이제 그는 두
발로 이곳저곳 돌아다닐 수는 있지만 그저 ‘기계적인 돌아다님’에 그치리라. 씻지도 않고 잠옷 바람으로 널브러져 있을 수도 없고,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격식을 차리고 자기의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마치 우리가 여행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와 똑같지
않은가!
42일 동안의 가택연금 속에서 이뤄진 ‘내 방 여행’은 이렇게 우리에게 진정한 ‘여행’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여행은 그저 어딘가로 떠났다가 돌아옴을 뜻하는 게 아니다. 제아무리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곳에 가더라도 그곳에서 어떤
새로운 발견이나 상상을 할 수 없다면 그 여행은 떠나지 않은 일상의 연장과 마찬가지이다. 반면 기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거나 배를
타거나 등등 수고를 들여 멀리 떠나지 않더라도 그 어느 곳에서라도 새로운 발견과 상상을 할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여행’이
된다. 때문에 ‘내 방’ ‘내 집’ ‘내가 사는 동네 골목길’ ‘이 도시’ 등등도 얼마든지 여행 장소가 될 수 있다.
여행은 ‘떠남’이 아니라 ‘상상이며 발견’인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는 이 단순한 진리를 잊고 그저 떠났다가 되돌아옴을 반복하면서,
그리고 그곳에서 어떤 증거 또는 흔적(사진 찍기, 여행 가방에 나라별 입국 스티커 붙이기, 여권에 온갖 나라 도장 찍기 등등)을
남기기에 급급해하면서 ‘여행’을 다녀왔다는 공허한 만족감만을 누린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한다.
자, 이제 당신도 새로운 의미의 진정한 여행을 떠나보지 않겠는가? 오늘 지금 바로, '내 방'부터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