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소개된 너새네이얼 웨스트 소설 전집은 단 3권으로 끝난다. <미스 론리하트>, <거금 100만 달러>, <메뚜기의 하루>가
전부이다. <거금 100만 달러>안에는 그의 첫 작품인 ‘발소 스넬의 몽상’이라는 짧은 단편이 하나 더 들어있다.
그가 살아 남긴 소설은 이렇게 얼마 되지 않는다.
그가 작품을 쓴 기간은 고작 몇 년 되지 않기 때문이다. 1903년에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1931년에 첫 작품을 쓰고 그 이듬해 <미스 론리하트>를 출간했는데 출판사의 도산으로 널리
알려지지는 못했다. <거금 100만 달러>, <메뚜기의 하루>를 차례로 발표했지만 거의 무명이었던 그는 결국
서른 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부인과 함께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그러던 그는 죽은 뒤에 프랑스에서 작품이 번역되면서
성공을 거두고 1957년, 미국에서 전집이 출간되면서 비로소 영미문학사에서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평론가는 그를
피츠제럴드, 헤밍웨이와 더불어 20세기 미국 문학의 3대 봉우리로 평가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20세기 미국 산문 문학에서 그와
비견될 작가는 포크너 단 한 사람뿐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그의 전집 중 <미스 론리하트 Miss
Lonelyhearts>를 첫 번째로 읽었는데 그냥 무명으로 파묻혔으면 왠지 억울했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은
굉장히 짧다. 그런데 술술 쉽게 읽기는 힘들다. 상징이나 숨어있는 의미 등을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여러 번 더 읽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숨은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니 골치 아픈 책은 아닐까, 편견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흥미진진하다.
'미스 론리하트'는 독자들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신문 칼럼을 쓰는 사람이다. 미스 론리하트 앞으로 일주일에
30통이 넘는 편지가 배달된다. 고민상담녀, 절망녀, 절름발이 등등 갖가지 익명으로 날아오는 편지에는 그들 나름의 고통스러운
사연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미스 론리하트에게 묻는다. ‘저는 어떡하면 좋죠?’- 미스 론리하트는 나름대로 칼럼을 통해
그들에게 위안을 주고자 한다. 그러나 그리 쉽지는 않아 보인다.
‘미스 론리하트’라는 이름을 쓰고 있기에 칼럼 쓰는
사람이 여자이려니 하겠지만 그는 남자다! 그의 생활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정신과 상담을
소재로 다룬 드라마 <In Treatment>에서 남들의 상담을 들어주는 의사도 결국 다른 곳에서 상담을 받는 것처럼 이
책의 주인공 미스 론리하트 역시 아프다. 정확히 어디가 아픈지 나오지 않지만 독자는 그에게도 상담이 필요할 정도로 마음의 병이
깊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왜 그렇지 않겠나. 고통으로 범벅 된, 사람들의 온갖 쓰레기 같은 사연을 매일 같이
접하다 보면 제정신으로 온전하게 살 수 있을까? 그러기는 쉽지 않으리라. 미스 론리하트는 점점 자신의 일에 환멸을 느끼고 다른
직업을 찾아볼까 생각해보지만 그 조차도 쉽지 않다. 그는 병든 마음을 위악적인 방식으로 해소한다. 점점 더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굴고 술에 취하고, 자신의 여자에게 상처를 주고, 간통을 일삼는다. 그래도 나아지지 않는다. <미스 론리하트>를 보면 이
세상에는 구원도 존재하지 않고 희망이란 어디에도 없을 듯하다.
피츠제럴드 작품과 비교해보면 피츠제럴드의 작품 속
인물들은 물질만능주의 세상에서 꿈이 부서져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묘하게 낭만이 있었다. 그러나 너새네이얼 웨스트의
작품에는 그런 낭만이 낄 틈이 없다. 잔혹하리만큼 삶은 고통스럽다고 증언하고 있을 뿐이다. 1930년대 황폐한 미국 사회의 피폐한
인간상을 다루고 있는데, 이상한 것은 현재 우리의 삶과 그 모습이 너무나도 닮았다는 점이다.
“어쩌면 당신을 이해시킬 수 있을지도 몰라. 자, 처음부터 다시 한번 짚어보자구. 어떤
남자가 어떤 신문의 독자들에게 상담과 조언을 해주는 일을 맡게 되었어. 그 일은 발행 부수를 늘리기 위한 판촉 행사의 하나였지만
신문사의 모든 직원들은 그 일을 그저 하나의 농담으로 취급했어. 하지만 그는 그 일을 환영했어. 그걸 맡다 보면 가십 칼럼으로
옮겨갈 수도 있고, 아무튼 그는 외판원 일이 지겨웠던 차야. 그도 처음에는 그 일을 농담으로 생각했지. 하지만 그 일을 몇 달
하다 보니 농담이라는 생각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어. 그는 인생 상담 편지들 대부분이 도덕적, 정신적 조언을 구하는 애절한
호소이면서, 정말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진실한 표현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 그는 편지를 보내오는 사람들이 그의 조언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 난생처음으로 자신이 추구해온 가치를 반성해보게 되었지. 그 결과 그는 자신이 농담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농담의 희생자임을 알게 되었어.” (79쪽)
‘인생이란. 불평 불만을 받아주지 않는 클럽 같은 곳입니다.
카드 패는 딱 한 번만 돌아가고 당신은 싫든 좋든 그 게임에 참가해야 합니다. 그 카드 패가 별 볼일 없고 운명의 손에 의해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하더라도 신사처럼 씩씩하게 카드 게임을 해야 하는 겁니다. 자, 마음껏 취하고 테이블 위에 있는 것을 마음껏
드시고 이층에 있는 여자애들과 즐겁게 사귀십시오. 하지만 당신이 최고의 패를 잡은 바로 그 순간에 게임을 끝내는 검은 휘장이
내려온다 해도, 절대 불평 불만을 말해서는 안됩니다…. (84쪽)
인간은 늘 꿈을 가지고 자신의 비참함과 싸워왔다.
과거에 꿈은 아주 막강한 것이었지만 그 꿈은 이제 영화, 라디오, 신문 때문에 유치한 것이 되어버렸다. 인간의 꿈을 배신한 사례가
무수하게 많았지만 최근의 이런 매체들은 정말 최악이었다. (95쪽)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이 빌어먹을 다리를 이끌고
지저분한 거리와 냄새 나는 지하실을 들락거려봐야 결국은 그게 뭐냐는 겁니다. 힘든 다리를 끌고 억지로 다니다 보면 다리가 너무
아파 퇴근 무렵에는 거의 미칠 지경이 됩니다. 그런데도 집에 가면 듣는 얘기라고는 그저 돈, 돈, 돈 얘기뿐입니다. 그런 집은 나
같은 사람에게 집이 아닙니다. 내가 알고 싶은 건 말입니다. 이를 악물고 이런 다리를 끌면서 세 구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빨이
너무 아파오는데, 과연 이런 아픔과 고통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겁니다. 병원에 가보니 의사는 나보고 앞으로 6개월 정도는 쉬어야
한대요. 하지만 내가 놀고 있으면 누가 돈을 줍니까. 하지만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물어보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은 나보고 직장을
바꾸라고 조언할 테니까요. 하지만 직장을 바꾸기가 어디 쉽습니까. 이런 직장이나마 잡고 있는 게 여간 다행이 아닙니다. 하지만
내가 불평하는 것은 직장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정말 알고 싶은 것은 이런 지랄 같은 인생이 도대체 뭐냐는 겁니다.
(1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