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오늘날 문명국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난하다”라고 이 책은 시작한다. 이 문장만 보면 근래에 쓰인 책인가 싶은데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세상에 선을 보인 문장이다. 정확히는 1916년 9월부터 12월까지 '오사카아사히신문'에 소개된 글로, 1917년에 책으로 묶여져 나온 <빈곤론(貧乏物語)>의 서두이다.
가와카미 하지메는 일본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다. <빈곤론>은 그가 본격적으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기 이전에 세상에 선을 보인 책이었고 때문에 몇몇 오류도 보인다. 책을 읽다 보면 이렇게 해서 세상의 빈곤이 해결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상주의적인 모습이 종종 보인다. 그럼에도 그 이상주의자의 모습을 보면서 울컥하는 것은 그의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이 책에서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빈곤론>은 크게 3장으로 나뉜다. 가와카미는 첫 번째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가를 따져본 뒤 두 번째로 왜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지 연구한다. 끝으로 어떻게 해야 가난을 근본적으로 퇴치할 수 있는지에 대해 결론을 내린다. 100년 전의 경제학자들에게 가와카미의 이론이 비판받은 것은 마지막장인 ‘빈곤을 퇴치하는 방법’이 제도적인 방법보다는 인간의 마음에 호소하는 지나치게 도덕적, 윤리적인 면을 강조한 태도 때문이었다.
가와카미는 가난한 사람을 세 가지로 구분했다. 첫 번째는 부자에 비해 가난한 사람으로 경제상의 불평등에서 비롯된 가난을 꼽았다. 두 번째는 구휼을 받는 사람(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다른 사람의 자선에 의지하여 생활하는 사람)으로 이는 경제상의 의존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생존에 필요한 만큼의 물질을 갖지 못한 사람으로 경제상의 결핍에 해당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가난한 사람’이란 세 번째 의미의 사람을 말한다.
이 책에 따르면 100년 전에도 부의 불평등은 심했다. 가와카미는 영국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데 당시 영국은 세계 최강의 경제력을 지녔음에도 도시 빈곤층의 비율이 30%에 달했다(경제적 의존과 경제적 결핍에 해당하는 이들). 이는 부의 분배가 공평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불과 2%에 지나지 않는 최고 부유층이 부의 72퍼센트를 소유했다(프랑스는 60%, 독일 59%, 미국 57% 100년 전 기준).
가와카미는 열심히 일을 해도 노동자는 낮은 임금밖에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파헤침으로써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개인의 근면 성실한 태도와 노력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비판한다. 그는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세상의 부자들이 자발적으로 사치스러운 소비를 하지 않는 것과 현격한 빈부 격차를 줄이고 사람들의 소득 격차를 줄이는 것, 마지막으로 각종 생산업을 개인의 돈벌이에만 맡겨두지 말고, 군비나 교육처럼 국가가 직접 담당하도록 경제 조직을 개편할 것을 제안한다.
당시 대부분의 학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의 사치 근절을 빈곤의 대안으로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며 이 책을 폄하했다. 학자들의 비판처럼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와 사회 빈곤을 폭로한 이 책은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 빈곤의 해결이 단순히 ‘사치 근절’처럼 인간의 마음, 윤리적 소비와 윤리적 생산에 호소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와카미 역시 그런 사실을 인정하고 당시 30판이 넘게 팔렸던 이 책을 스스로 절판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많은 경제학자들이 그의 영향으로 경제학자가 되었고 일본의 출판사에서는 그가 스스로 절판한 책을 다시 출판하여 40만부 이상 팔렸다고 한다.
부르주아 경제학자였던 가와카미는 <빈곤론> 이후 점차 마르크스주의자로 변모했으며 결국 일본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가 되었다. <빈곤론>에서의 오류를 수정하여 후에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에 입각하여 인류의 경제사적 발전과정을 설명한 <빈곤론 2>를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많이 읽혔고, 지금도 여전히 많이 읽히고 있는 책은 이론적으로 완벽한 <빈곤론 2>보다 <빈곤론>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빈곤론>에서 가와카미 하지메의 가난과 가난한 사람들을 대하는 뜨거운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자발적 가난이 아니라 결핍의 공포를 동반하는 진짜 가난한 사람들의 극빈한 삶을 그는 진심으로 걱정한다. 가난이 인간의 존엄성을 헤치는 상황을 진심으로 우려한다. 그리고 그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인간의 연대와 도덕성 회복을 주장한다. 그런 그의 주장이 담긴 <빈곤론>은 학자들에게는 ‘이상주의적’이라고 비판을 받았을지언정 나 같은 사람에게는 더 절실하게 와 닿는다.
가와카미 하지메라는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졌다. 구제원에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다 벗어주고 온 사람. 그것도 모자라 자기 집으로 돌아가 입고 있는 옷을 제외하고는 모든 옷을 기부하고 온 사람. 마지막에는 영양실조와 노쇠로 죽어간 사람. 교토대의 교수로 남부럽지 않게 살던 그가 사회주의자로 찍혀 사상의 전향을 강요받고, 감옥살이까지 하면서도 꺾이지 않았던 이유는 인간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가와카미 하지메의 <빈곤론>이 세상에 선을 보인지 100년이 지난 지금, 세상에는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이 더 넘쳐난다. 부의 불평등은 말할 것도 없다. 가난으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이 세계에서 넘쳐난다. 100년 전의 학자들이 ‘이상주의적’이라고 비판했던 그의 주장은 여전히 바보 같은 소리일까. 그래도 나는 인간을 살릴 수 있는 것은 사회 제도 보다도 그 제도를 만들어냈고, 그렇기에 그 제도를 고칠 수 있는 인간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그의 외침은 100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이 책에 따르면 1906년 영국에서는 빈곤 계층 아이들의 학습 능력 및 열악한 신체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식사공급조례를 만들어 의회에서 통과했다고 한다. 가와카미 하지메는 이 역시 의회에 있는 이들이 빈곤한 계층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한국은 선거를 앞둘 때마다 무상급식을 비롯해 가진것 없는 이들을 위한 복지를 화두로 여야가 싸움을 벌인다. 그들이 정말 빈곤한 계층의 마음을 헤아린 것인지, 그저 표를 얻기 위한 쇼를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모든 이들이 차별 없이 복지를 누릴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하지만 이땅에 과연 그러한 날이 올지........
학교에 다니는 아동은 몇 명이라도 자유롭게 식사를 제공받을 수 있다. 다만 무료로 식사를 제공받는 아동에 대해서는 위원회에서 그 아동의 가정 실태를 조하하고 그 사정에 따라 무료 제공을 허락하거나 식비의 일부 내지 전부를 납부하게 한다. 아동은 그 사회계급에 상관없이 모두가 같은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한다. 무료로 제공받는 아동과 식비의 일부나 전부를 부담하는 아동을 차별하기 않고 모두 똑같이 대우한다. 따라서 아동들은 서로 그런 사정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다. (100년 전 영국에서 식사제공 조례가 통과한 뒤 블랫포드 시에서 시행된 내용. 가와카미 하지메, <빈곤론>, 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