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빗 열린책들 세계문학 169
싱클레어 루이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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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클레어 루이스의 <배빗 : Babbitt>을 읽다 보면 익숙한 도시,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인물이 떠오른다. 1920년대 미국의 중서부, 중년의 부동산 업자 ‘배빗(Babbitt)’이 살고 있는 (가상의 도시) ‘제니스’는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의 ‘위스테리아’와 닮았고 배빗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중산층의 표본이다. 배빗은 중산층으로서의 ‘표준화’된 삶을 가히 ‘모범적’으로 따르고 있지만 꿈속에 나타나는 아름다운 소녀와의 일탈을 꿈꾸기도 한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영화 아메리칸 뷰티의 ‘레스터 버냄(케빈 스페이시)’과 닮은 인물이기도 하다.

소설 <배빗>의 주인공 ‘배빗’은 일반 명사가 되어 영어 사전에 올라 있다고 한다. ‘Babbitt’이란 ‘스스로 중산층인 체하는 저속한 실업가’ 혹은 ‘중산 계급의 교양 없는 속물’이라는 의미이다. 이름만으로 하나의 명사가 되어 사전에 오른 이 남자 ‘배빗’- 배빗을 읽고 있노라면 정말 끔찍할 정도로 속물적이고 현실적이며, 표준화된 한 남자의 모습에 혐오감과 함께 짜증이 솟구쳐 오른다. 그러나 이 혐오감과 짜증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바로 그 모습이 현대인의 자화상이 아닌가 싶어 씁쓸해진다. 


‘그는 기계 장치들을 칭송했지만 그것들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했다. 기계 장치는 그가 신봉하는 진리와 아름다움의 상징이었다. 새롭고 복잡한 기계들- 금속 절단기, 2중 분사식 카뷰레티, 기관총, 산소 아세틸렌 용접기-을 존경의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아주 실용적인 인물이라는 느낌을 풍길 수 있는 용어를 배웠고, 그것을 되풀이하여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기술적이면서도 전문적인 사람이라는 기분을 만끽했다. (91쪽)’

 ‘전국 규모의 대형 광고 회사들이 그의 대외적 생활 혹은 그의 개성을 결정했다. 이 표준적인 광고 제품들- 치약, 양말, 타이어, 카메라, 순간 온수기-은 그의 상징이자 그의 탁월함을 증명해 주는 물건이었다. 처음에 이런 물건들은 그가 느끼는 즐거움과 열정과 지혜를 가리키는 기호였으나, 곧 신분의 대용품이 되었다. (123~124쪽)’


위와 같은 구절을 보면 1920년대 제니스에 사는 중년 남자가 아니라 2016년 이땅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보통 사람들’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복잡한 기계들의 종류는 달라졌지만 새롭게 나오는 전자 제품을 계속 업데이트해가며 그런 기계를 소유함으로써 마치 자신이 스마트해진다고 착각하는 얼리어답터들, 광고에서 제시한 규격화된 삶을 고스란히 살면서 ‘나는 개성 있다’는 착각 속에 사는 수많은 현대의 속물들…. 어찌나 표준화된 삶을 살고 있는지 죽어서 가는 천국조차 ‘개별 정원이 딸린 고급 호텔’ 같으리라고(260쪽) 생각하는 빈약한 상상력의 소유자들. ‘배빗’은 거의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돈과 사회적 명예와 성공을 가장 큰 가치로 여기고 표준적인 생각, 표준적인 종교, 표준화된 상품, 사회의 주류라고 여겨지는 생각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 물론 때로 이런 삶에 ‘돈을 버는 것이 별로 즐겁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를 키우면 그 아이가 다시 아이를 키우고, 이어 그 아이가 또다시 아이를 키우는 것이 과연 가치 있는 일일까? 이 모든 게 도대체 무엇일까?(341쪽)’ 라며 회의를 느끼고 일탈을 꿈꾸기도 하지만 결국은 주류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두려워, 그 따돌림과 배척이 무서워 끝내는 포기하고 마는 이 남자. 이 남자의 삶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뭐 이런 재수 없는 놈이 다 있나!’ 하며 욕을 하다가도 결국 그 욕하는 손가락이 나를, 또는 우리를 가리키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배빗>은 바로 그런 속물들의 삶이 지나치리만큼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씁쓸한 웃음은 그 끝이 아프고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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