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버린 지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1
아베 고보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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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사람들은 왜 뒤쫓을 권리가 있다고 믿어버릴까요…. 딱히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잖습니까…. 자기 의지로 도망친 인간을 당연히 붙잡을 권리가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저로서는 도무지 납득이 안 갑니다.” - 아베 고보, <불타버린 지도>, 173쪽


이따금 사회. 직장이라고 부르는 곳에 적을 두지 않을 때가 있다. 견디다 못해 튕겨져 나오는 것이다. 나는 사회에 그다지 맞지 않은 사람인데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아니 그럴 수 있다고 최면을 걸면서 그 속에서 머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회의감도 들고 염증도 커져간다. 그러다 보면 그냥 그 안에서 벗어나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은 그 사회 속에서 머물러야만 제대로 인간답게 잘, 살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분명 있다. 가끔 그들은 내 걱정을 하는 거라면서 자신들의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다. 언제까지 그렇게 쉬고만 있을 거니, 어떻게 벌어서 먹고 살 거니, 나이 들어 돈도 없고 병까지들면 어떡하려고 하니 등등. 그들은 나를 걱정해주는 거라고 하면서 내가 다시 그 사회 속으로 들어가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내가 다시 행복할 수 있을 것이며 그들 또한 행복할 것이라고 여긴다.

이 세상에는 마땅히 인간이 누려야 할 자리가 있다고. 가정 안에서도 사회 안에서도 인간은 머물 자리, 마땅한 자기 자리가 있다고. 그리고 그 자리에 머물러야만, 머물렀을 때 제대로 잘 살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낙오자. 패배자. 쓰레기. 잉여라고 한다. 지도 안에서 자기 자리를 굳세게 지키라고 한다.

하지만. ‘불타버린 지도’- 이 사회에서 자기가 있어야 할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다시 그 지도 안에 들어가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찌할 것인가? 보통은 다들 강제로 그 지도 안으로 끌어들여 놓으려고 하겠지? 그래야만 ‘우리’ 모두가 다 같이 지도 안에서 한자리씩 차지하고 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갈 테니까.

그런데 왜, 스스로 지도 안에 있기를 거부하고 지도 밖으로 탈출한 사람을 강제로라도 찾아서 그 안으로 끌어들여다 놔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일까? 지도 밖에서도 얼마든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왜 구태여 지도 안에서만 머물러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모두가 다 그렇게 사니까, 너 혼자 괜히 튀지 말라고? 혹시라도 내가 그 지도 안에 없기 때문에 언젠가 당신에게 짐이 될까 두려워서는 아닌가?

아베 고보의 <불타버린 지도>는 스스로 지도 안에서 사라져 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다. 평범한 회사에서 과장 자리에 있던 한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된다. 그리고 남자의 부인은 6개월 동안 그를 찾다 못해 흥신소에 의뢰를 한다. 흥신소 직원 ‘나’는 이 남자를 찾는 작업에 착수한다. 그런데 사실 이 탐정(?) ‘나’도 사회에서 일탈한 사람이긴 마찬가지다.

그 또한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아내와도 이혼하고 구린 일을 한다며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흥신소에서 남의 뒷조사나 하면서 살아간다. ‘나’는 이 ‘남자’를 찾으면서 이런저런 사건에 휘말리기도 하고 실종된 남자와 얽힌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 남자는 대체 왜 사라진 것일까? 그를 찾을 수 있을까? 그런데 이상하다. 이 탐정 ‘나’에게서 종종 실종된 남자의 모습이 엿보인다. 그리고 ‘나’는 추적을 할수록 이 실종된 남자를 어쩐지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모래의 여자>나 <상자인간> 등을 통해 인간의 존재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온 아베 고보는 <불타버린 지도>를 통해 다시 한 번 이 사회에서 인간은 어떻게 존재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결코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스스로 지도 안에서 사라져버린 사람. 스스로 지도를 불태우고 사라져버릴 수밖에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을 과연 이곳이 당신이 원래 있던 자리니까, 돌아오라고! 라면서 강제로 끌어다 놔야할 권리가 다른 인간(들)에게 있을까? 그것이 설령 가족이라 할지라도?

주인공처럼 실종은 아니지만 나 또한 때때로 사회적 지도 안에서 벗어난 삶을 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지도 안으로 이제 다시 들어가라고, 누군가는 걱정해준답시고 내 삶의 방식에 간섭을 한다. 하지만, 그래서 만약 내가, 지도 안에서 미쳐버리면 그때는 어떤 책임을 져 줄 것인가? “세상 사람들은 왜 뒤쫓을 권리가 있다고 믿어버릴까요…. 딱히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잖습니까…. 자기 의지로 도망친 인간을 당연히 붙잡을 권리가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저로서는 도무지 납득이 안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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