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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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같은 것을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사치가 아닐까. (74쪽)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은 픽션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니 에르노, 그녀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실이 아니면 글을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소설 <단순한 열정>은 ‘아니 에르노’ 그녀 자신의 경험담이다. 이 작품은 불륜의 사랑 이야기이며, 한 남자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한 여자의 ‘열정’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위의 저 구절은 <단순한 열정>의 마지막 문장으로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사치’라고 말하는 아니 에르노의 정의에 나는 깊이 공감했다. 어떻게 보면 열정을 퍼부을 수 있는 대상이 주어지는 것도 사치이며 그런 대상이 주어졌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단순히’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마음도 사치가 아닐까? 자기 자신은 사라지고 오로지 사랑하는 대상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듯한 그런 상태. 그럴 정도로 정신 못 차리고 상대에게 빠져들어 뜨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사치’이고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토록 ‘사랑하기’를 열망하는 것은 아닐까.

‘연하의 유부남을 사랑한 불륜 이야기’임에도 이 작품은 묘하게 공감 가는 구절이 많다. 사랑하는 동안은 사랑하는 대상 밖에 보이지 않는 열정적인 상태와 그녀의 그 뜨거움도 어떤 면에서는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이 작품이 사랑을 해 본 이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치열하고 진실된 사랑의 기록이기 때문은 아닐까? 사랑하는 대상이 어떤 사람인지도 그녀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아니 에르노는 ‘그 사람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내 온 몸으로 남들과는 다르게 시간을 헤아리며 살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그와 헤어진 후 그가 존재하지 않는 부재의 시간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와의 일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기록한다. 그의 부재를 잊기 위해서? 고통을 견디기 위해서? 아니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던 그때에 머물고 싶기 때문에 글을 쓴다. 끝내고 싶지 않았던 ‘삶이 가장 아름다웠던 그 시절‘의 영원한 반복을 나타내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다. 사랑은 끝났지만 그녀의 열정은 어떤 의미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뜨겁게 사랑했고 사랑한 만큼 상처입고 고통 받은 그녀는 ‘언젠가 그 사람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겠지’라며 이별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뜨거웠던 사랑을 통해 ‘그 사람 덕분에 나는 남들과 나를 구분시켜주는 어떤 한계 가까이에, 어쩌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한 인간에게 선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아니 에르노’는 경험했던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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