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들 - 윌리 로니스의 사진 그리고 이야기들, 개정판 내 삶의 작은 기적
윌리 로니스 지음, 류재화 옮김 / 이봄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수식이나 과장, 꾸밈이 많은 사람이 싫다. 글도 마찬가지고 사진은 더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나는 윌리 로니스의 사진을 참 좋아한다. ‘사진’하면 떠오르는 수많은 거장의 이름이 있겠지만 누구보다도 내가 좋아하는 사진작가는 윌리 로니스, 아니 그의 사진들이다. 그의 사진은 정말 꾸밈이 없다. 굉장한 기교도 없고 어떤 특별한 순간을 찍은 사진도 그다지 많지 않다.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들의 일상, 그뿐이다. 그토록 담백하고 소박할 수가 없다. 그런데 보고 있노라면 한없이 미소가 지어지고 어떤 사진은 뭉클하고 또 어떤 사진은 숭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물씬 전해온다. 때로는 한없이 마음 아파오는 사진도 있다.

윌리 로니스의 <그날들>은 그가 찍은 사진과 그에 얽힌 에피소드가 담겨 있는 사진집이다. 윌리 로니스가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직접 글로 썼다하니 조금 더 궁금해진다. 예상대로였다. 그의 글은 사진처럼 정말 소박했다. 딱 그의 사진처럼 담백하다. 문장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사진에 얽힌 이야기들도 어찌 보면 특별할 것이 없다. 그런데도 그의 글과 사진을 보고 있는 내내 행복했다. 그런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참 괜찮은 사람일거야, 라는 생각을 막연히 하고 있었는데 글을 보니 어쩐지 정말 따뜻한 사람이구나 싶어졌다.  글도 사진처럼 무척이나 진실하다.

거장들의 사진이 대부분 그렇듯이 로니스의 사진에도 어떻게 저런 순간을 포착했을까 싶은 사진이 많다. 윌리 로니스는 사람과 그들이 거니는 거리를 좋아했으며 그 거리와 사람이 만나 발생하는 이야기의 ‘순간’에 집중했다. 어떤 이야기가 발생할 것 같은 분위기가 감지되면 그는 한없이 기다린다. 미술관에서 지루해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나 연인들의 은밀한 만남을 담은 사진들은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그는 사진을 찍기 위해 자기 자신을 숨기지는 않지만 ‘아무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이런 그의 자세랄까, 마음가짐이 사진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진 안에 있는 인물들은 평범하고 소박하지만 일상의 한 장면 장면에서 행복하고 즐거운 이들이다.

그의 사진 속에는 아이들도 많이 등장한다. 이 책에도 아이들이 무척이나 귀여워서 ‘으음~’하는 신음소리가 절로 나는 사진들이 많다. 개구쟁이 꼬마도 있고, 떼쓰는 꼬마도 있으며, 자기들만의 놀이에 빠진 아이들도 있다.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귀엽다. 평소 그의 사진을 볼 때마다 아이들을 이렇게 사랑스러운 존재로, 아이 특유의 행동을 놓치지 않고 잘도 찍는 사람이라면 왠지 좋은 사람일 거야, 라고 막연하게 생각해왔다. 그리고 그런 막연한 기대는 ‘역시 그렇군.’하는 확신으로 돌아온다.

윌리 로니스는 아들 뱅상을 카메라에 많이 담기도 했다. 뱅상 역시 한없이 귀엽다. 평소에는 아들 사진만 많이 봤는데 이 사진집에는 아내 사진도 꽤 많다. 그는 아들뿐만 아니라 아내 역시 무척이나 사랑했던 것 같다. 그가 찍은 가족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사랑이 절로 전해져 마음이 따스해져 온다. 그러다가 급기야 나는 어떤 사진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보다가 눈물이 핑 돌고 말았다. 윌리 로니스가 아내 ‘마리안’을 멀리서 찍은 1988년 작품으로 ‘공원의 노부인’이라는 사진이다. 사진 속에서 아내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그렇게 찍은 이유를 알고 나면 마음이 무척 아프다. 아내는 알츠하이머였고 그보다 먼저 죽음을 준비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 사진은 그런 아내와 윌리 로니스의 이야기가 담긴 사진이라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사진에 얽힌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46년을 함께 살았다.’


                        

                        사진은 이렇다.... 사진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은 이 책을 읽어보시라.....

사진집이고 글도 많지 않아 책장은 쉽게 넘어가서 금세 마지막장에 이른다. 그런데 글도 사진도 무척이나 좋아 다시 앞으로 돌아가게 된다. 사진이 좀 더 많이 실렸으면 좋았을 텐데, 그저 아쉬울 뿐이다. 내 트위터 배경 화면은 윌리 로니스의 사진 중 하나다. 혹 그에 얽힌 이야기를 혹시 알 수 있을까 싶어 기대를 했는데 그 사진은 실리지 않아 그것도 못내 아쉽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그 사진을 보며 계속 혼자만의 상상을 할 수 있어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모든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나면 왠지 비밀이 깡그리 사라진 것 같아 섭섭하지 않겠는가.

요즘은 좋은 카메라도 많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무척 많다. 그런데 ‘이야기’를 상상하게끔 하는 사진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윌리 로니스의 사진은 굳이 그가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글로 써서 보여주지 않아도 그저 사진 한 장만으로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떠올려진다. 느낌이 있고 진심이 있다. 피사체의 마음뿐만 아니라 사진을 찍은 작가의 마음까지도 전해진다. 윌리 로니스의 <그날들>은 볼수록 마음이 뭉클해지고 행복해진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분명 그의 사진이 한층 더 좋아지리라. 그리고 윌리 로니스라는 사람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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