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찰스 부코스키의 <우체국>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작품은 허구이며 아무에게도 바치지 않는다.’ 아무에게도 바치지 않는다! 이 문장은 어쩌면 찰스 부코스키 작품의 모든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보통의 작가들은 책 서문에서 자신에게 특별했던 사람을 언급하며 이 작품을 누구누구에게 바친다... 와 같은 문장을 쓰기 마련이다. 물론 이런 서문을 쓰지 않는 작가들도 많지만, ‘서문’을 통해 어떤 비장함 혹은 경건한 분위기를 잡는 작가들도 꽤 있다.

그러나 부코스키는 ‘아무에게도 바치지 않는다’며 작품을 시작한다. <우체국>을 읽다 보니  누군가에게 이 작품을 바쳤다면(?) 어쩐지 그 사람이 머쓱했을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에 경건함, 비장함, 숭고함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문장 빼어난가? 그렇지도 않다. 이야기가 특출한가? 그렇지도 않다. 주인공이 매력적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찰스 부코스키의 분신이라 볼 수 있는 ‘헨리 치나스키’!  찌질해도 이렇게 찌질할 수가 없다. 술과 여자(정확히는 여자와의 섹스)만 있으면 이 세상에서 더 바랄 것이 없을 이 남자는 세상의 잣대로만 보자면 ‘루저 중의 루저’, ‘쓰레기 중의 쓰레기’다.

<우체국>은 이 찌질한 남자 ‘헨리 치나스키’가 어쩔 수 없이 우체국에서 일한 10여 년 동안의 기록이다. “자기, 그건 초등학생 같은 생각이야. 어떤 바보 멍청이라도 구걸하면 일은 얻을 수 있어. 일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거지. 세상에서는 이런 사람을 요령 있다고 하지. 나는 요령 있는 훌륭한 백수가 되고 싶어.” (77쪽)라고 말하는 치나스키는 일하지 않고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같이 사는 여자들의 요구 때문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우체국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치나스키는 일터에서 생지옥을 경험한다. 

<우체국>은 부코스키가 ‘이 작품은 허구’라고 말했지만 허구이기는커녕 자전적 소설이나 마찬가지다. 찰스 부코스키가 우체국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부코스키는 30~40대 시절 10여 년간 우체국에서 집배원으로 일했다. 우체국 시절 간간이 단편을 발표했던 그에게 출판사 측이 ‘글쓰기에 전념하면 매달 100달러를 주겠다.’고 제안을 했고 부코스키는 ‘우체국에서 미쳐 가느니 작가가 돼 굶기로 결심했다’며 전업 작가로 돌아섰다고 한다(이렇게 매력적인 제안을 받은 걸 보면 작가적인 소질은 다분했나보다).

부코스키의 그 미쳐버릴 것 같은 경험이 <우체국>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치나스키는 우체국에서 10년 넘게 일하면서 서서히 망가져간다. 물론 사회적 잣대로 보기에 그는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사람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우체국은 아예 그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우체국에서 헨리 치나스키는 인간이 아닌 노동하는 기계일 뿐이며, 하루 종일 감시받다 언제든지 버림받을 존재다. 노동이 과연 신성한가? <우체국>은 비합리적이고 비인간적인 조직 생활을 비판하고(더 나아가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노동의 쓸모없음을 고발한다. 우체국이라는 획일적이고 위계질서로 짓눌린 공간을 통해 부코스키는 노동하는 인간, 노예처럼 사는 인간의 삶을 비웃는다.

부코스키의 분신인 ‘헨리 치나스키’는 술꾼에 호색한이고 도박꾼이며 끊임없이 놀기 좋아하는 방탕아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그 방탕아의 삶이 오히려 노동에 짓눌린 인간들의 삶보다 한결 행복해 보인다. 어떤 부분에서는 낄낄낄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또 어떤 구절에서는 앗, 하는 울림이 전해지기도 한다. 물론 부코스키가 여자를 묘사하는 방식과 쉴새없이(?) 쏟아지는 비속어 등등은 읽고 있으면 조금 불쾌하기도 하지만 한 번쯤은 읽어볼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거 봐. 당신 촌 출신이잖아. 나는 직장을 쉰 개, 아니 백 개는 넘게 거쳤어. 한 군데서 오래 버틴 적이 없다고. 내말은 말이지. 미국 전역 사무실에는 일종의 놀이가 있다는 거야. 사람들이 지겹거든.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러니까 사무실에서 로맨스 놀이를 하는 거지. 대부분 시간 죽이는 것 말고는 별 의미가 없어. 가끔은 부수적으로 한두 번 붙어먹기도 하지. 하지만 그때도 볼링이나 텔레비전, 신년 파티처럼 되는 대로 여가를 즐기는 식이야. 그게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상처받지 않을 거야. 내 말 알겠어?” (106~107쪽)

“염병, 그런 데서 일하는 사람들은 남이 인생을 즐기며 사는 꼴을 못 봐. 그렇지 않아? 항상 쳇바퀴에 묶여 일하길 바란다니까.” (119쪽)

“바다 좀 봐.” 나는 말했다. “저기서 철썩이며 올라왔다 내려가는 것 좀 봐. 그 밑에는 물고기들, 불쌍한 물고기들이 서로 싸우고 서로 잡아먹지. 우리도 그 물고기들과 같아. 단지 뭍에 있다는 것만이 다를 뿐. 발을 잘못 디디면 끝장이야. 챔피언이 되는 게 좋지.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할지 알아 두는 게 좋다고.” (176쪽)

나는 조이스가 길렀던 빌어먹을 잉꼬들과 다를 게 없었다. 새장 안에 갇혀 살다가 문이 열리자 날아올랐던 것이다. 마치 천국으로 쏘아 올린 총알처럼. 그런데 빠져나간들 천국일까? (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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