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여행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배정희.남기철 옮김 / 이숲에올빼미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표지부터 두근두근 낭만적이 이 책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국내 초역 두 작품이 실려 있다. 하나는 ‘이별여행’, 또 다른 하나는 ‘당연한 의심’이다. 츠바이크의 다른 작품도 그랬듯이 이 두 작품도 한번 손에 들면 읽기를 마칠 때까지 내려놓을 수가 없다. ‘이별 여행’은 표지처럼 낭만적이고 쓸쓸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당연한 의심’은 찌릿찌릿한 공포스릴러(적어도 내게는 그랬다)다.

인간 심리의 대가인 슈테판 츠바이크는 ‘이별 여행’에서 가진 것 없는 젊은 청년이 부잣집에서 가정교사를 하면서 받는 상처, 그로 인해 생긴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 그 과정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사랑과 이별 등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츠바이크 소설이 대부분 그렇듯 큰 사건이 있어 그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보다는 소소한 사건 가운데 시시때때로 변하는 인물의 감정선을 느끼는 일에 더 큰 재미가 있다. ‘이별여행’에서도 가난 때문에 느낀 상처와 굴욕감, 그로인해 더욱 커진 자존심은 물론 사랑의 열정, 욕망, 고통, 그리움, 재회의 어색함, 이별의 쓸쓸함 등이 굉장히 섬세하게 묘사된다. 어찌나 두근두근하고 애잔하고 쓸쓸한지, 참 짧은 분량의 소설인데도 읽고 나면 가슴 한구석이 헛헛해진다.

그러나 ‘이별여행’보다 더 놀라웠던 작품은 두 번째로 수록된 ‘당연한 의심’이다. 이 작품은 한 편의 스릴러로도 탁월하다. 은퇴한 노부부가 살고 있는 전원마을에 이웃으로 한 젊은 부부가 이사 오면서 시작된다. 소설의 첫 시작부터 ‘살인’사건이 언급되기 때문에 이 아름다운 전원마을에 범상치 않은 사건이 벌어졌으며 그 범인을 노부인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독자는 곧바로 알게 된다. 과연 누구일까 궁금증을 멈출 수 없어 읽어나가다 보면, 대단히 놀랍고 예측 불허인 스토리에 기가 탁 막혀온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당연한 의심’에서도 진저리쳐질 정도로 인간의 심리를 묘사한다. 특히 열정과 에너지가 지나치게 넘치는 사람이 주변에 끼치는 피해를 무척 공감 가게 그리고 있다. 새로 이사 온 젊은 부부 중 남편이 바로 그런 인물인데, 이 남자를 보고 있으면 책 속에 있는 사람인데도, 이런 사람이 마치 곁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듯해서 내가 다 피곤해질 지경이다. 이런 인물에 대한 묘사는 물론 이 남자를 바라보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심리까지도 츠바이크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이 작품에는 사람 외에 개 한 마리가 등장하는데, 이 개의 행동 및 심리까지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도 개를 참 오래 키워봐서 알지만, 정말 작가가 개를 철저하게 관찰했구나 싶어져서 존경스러워지기까지 한다. 츠바이크도 개를 오래 키워본 게 아닐까 추측을 해본다. 만약 개를 키운 적도 없으면서 그저 '관찰'만으로 이런 소설을 썼다면 정말 그는 '천재'다. 대단한 작가다.



    인간은 추억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다. 식물만이 아니라 모든 창조물에는 자기 고유의 색을 유지하고, 꽃과 줄기가 시들어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땅속의 새로운 자양분과 하늘의 새로운 빛이 필요하다. 하물며 인간의 꿈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언뜻 보기에 지상의 것이 아닌 듯한 꿈조차도 현실적인 감각에서 양분을 얻어야 하고, 가시적이고 실질적인 징표의 도움이 필요하다. 만약 그런 것이 없다면 추억의 잎도, 열매도 매말라버리게 마련이다. (49쪽, '이별 여행')



    그를 알기 전에 우리 두 노인네는 선량함, 호의, 솔직하고 따듯한 감정 같은 것들이 지나칠 때에는 사람을 못 견디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98쪽, '당연한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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