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 열린책들 세계문학 104
줄리언 반스 지음, 신재실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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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둔지는 꽤 되었는데 이제야 읽었다. 예전에 사서 바로 읽지 않았던 이유는 제목에 들어간 ‘세계 역사’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꽤 두꺼운 분량인데 왠지 ‘역사’와 관련된 좀 지루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실제로 이 작품은 처음 출간되었을 때 ‘역사’ 코너에 꽂혀있는 웃지 못 할 사연도 있었단다.


걱정(?)과는 달리 이 작품은 정말 재미있다. 픽션과 논픽션이 어우러진 작품으로 어떻게 보면 그 기법상 줄리언 반스의 또 다른 작품인 <플로베르의 앵무새>와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는데, 재미와 기발함, 그리고 왠지 모를 감동까지 두루 평가한다면 나는 <플로베르의 앵무새> 보다 이 작품에 더 손을 들어줄 것 같다.


읽는 내내 줄리언 반스의 해박함과 재치, 위트에 경탄했고 정말 ‘잘 쓴다’는 존경심까지 솟구쳤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까? 싶기도 하고. 암튼 줄리언 반스, 그는 현존하는 영어권 작가 중 매 작품 감탄이 쏟아지고 신작이 나오길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작가임에 틀림없다. 책 뒤표지에 어떤 이는 ‘당신은 이 책을 거듭 읽고 싶을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정말 그렇다. 책을 다 읽고, 당장 다시 어느 구절을 펼쳐 읽어도 재미있고, 문장을 읽고 나서 음미하고 생각하는 과정도 즐겁다. 언젠가 한 번은 또 다시 읽어보고 싶은 작품이다.


이 작품의 ‘줄거리(?)’를 소개한다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제목처럼 10 1/2장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들은 서로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면서도 알고 보면 교묘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1장을 살펴보자. 1장은 성경 속 ‘노아의 방주’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런데 어딘가 좀 다르다. 아니 많이 다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노아의 방주’와는 전혀 딴판이다. 어라? 1장의 화자는 다름 아닌 ‘나무좀’이다. 그것도 노아의 방주에서 살아남은 ‘나무좀’이란다. 이 작은 벌레가 전해주는 ‘노아의 방주’의 실상은 굉장히 재미있고 유머러스하지만 열렬한 기독교신자라면 좀 불쾌(?)할 수도 있으리라.

계속 ‘나무좀’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가 전개될까 싶은데, 그 후 매 장은 다른 화자가 등장해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게다가 내용도 앞서 이야기했듯 ‘노아의 방주’와 얼핏 보면 상관없는 것 같으면서도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상관있는’ 이야기들이다. 어떤 장은 예술 작품에 대한 비평서 같기도 하고, 어떤 장은 심지어 줄리언 반스의 에세이다(아마도 이 에세이를 1/2장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그리고 마지막 장은 또 다른 기막힌 우화로 끝을 맺는다.


400페이지에 달하는 긴 이야기를 통해 세계 역사(?)를 전하고자 한 반스의 야심찬(?) 계획에서 내가 얻을 수 있던 것은 인류의 역사란 결국 그것을 전달하는 자의 취사선택에 따른 픽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누가 그 사건을 보느냐에 따라 역사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진실인 역사가 누군가에게는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역사는 처음에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소극으로 되풀이 된다(241쪽)’는 반스의 말처럼 전혀 다른 것 같지만 닮은꼴을 한 과거의 역사가 현재도, 그리고 미래에도 비슷하게 반복되고, 될 것이다.

그 옛날 노아의 방주는 히틀러의 압제를 피해 다른 대륙으로 떠난 유대인 난민들을 실은 배일 수도 있고, 신대륙을 발견하고자 떠났지만 난파에 시달려 침몰하다 구조된 뗏목일 수도 있고, 이 험난한 세상을 견뎌내기 위한 ‘사랑’일 수도 있다. 왜 갑자기 사랑이냐고? ‘순진한 처녀들은 사랑이 약속의 땅이고, 둘이서 대홍수를 피해 살아남을 수 있는 방주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방주일지도 모르나, 인육식 관습이 만연하고 있는 방주이고, 잣나무 막대기로 머리통을 때리고, 어느 때라도 당신을 물속으로 집어던져 버릴 수 있는 흰 수염의 미친 노인이 선장으로 있는 방주이다. (316쪽)’라는 반스의 에세이에 절대적으로 공감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이야기구조에 익숙해진 독자들에게는 조금 당혹스러운 소설일 수도 있겠으나, 하나의 퍼즐을 맞춘다고 생각하면서 읽다 보면 ‘읽는 재미’는 물론 ‘아!’하는 감탄까지 터져 나오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그래서 어찌어찌한 주제를 말하고자 했다고 섣불리 결론 내리기는 뭐하다. 게다가 읽는 사람에 따라 워낙 다양한(?) 해석이 나올 여지가 많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어떤 역사를 믿을 것인지는 사랑의(곧 믿음의) 문제라고 조심스레 나만의 결론을 내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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