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무엇인가 해야 할까 - 성과 중심 사회, 목적에 얽매이지 않는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고쿠분 고이치로 철학 강의 시리즈
고쿠분 고이치로 지음, 박영대 옮김 / 유유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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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처럼 예외상태일 때 자유와 권리의 제한은 과연 정당한가?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자유의 의미를 묻는다(아감벤 <얼굴 없는 인간> 먼저 읽는 것 추천). “목적을 위해 수단이나 희생을 정당화하는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 인간은 자유롭다. 거기에 인간답게 사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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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6-11 11:1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자유를 추구하는 듯하면서도, 자유로워지면 한가해지고, 한가하면 지루하기 때문에 한가함을 싫어하게 되며, 따라서 자유를 거부한다는 이 모순된 사실이죠. 이때 제가 내린 처방전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잊고 있는 것은 즐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가만히 내버려 둔다고 해서 무언가를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다. 인간은 넓은 의미의 공부를 하지 않으면 즐길 수 없다. 공부를 해서, 즉 즐기는 방법을 배워서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 이 모순을 극복하는 열쇠다.
이것은 ‘거대 서사’가 없는 시대와 사회에서 삶의 방식 하나를 제시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에서 쓴 것을 철회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조금 다른 방향에서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드는 생각은 ‘믿는다’는 것의 중요성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히틀러의 등장을 준비하게 된 바이마르 시기의 독일 대중사회를 분석합니다. 아렌트는 대중사회에서 대중은 아무것도 믿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든 믿게 되지만, 속았다는 것을 알고도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며 태연하다고 썼습니다. 즉 가치관이라는 확고한 것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프로파간다도 점점 더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초에 신념이 없으니까 속아도 아무렇지 않은 것입니다.


자주 떠올리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 있습니다. “당신이 하는 대부분의 일은 무의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한다.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에 의해 자신이 바뀌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